기업공개(IPO) 시장 ‘대어(大魚)’로 기대를 모았던 보로노이가 상장을 철회했다.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 실패하면서다. 기술수출을 4건이나 해낸 보로노이가 수요예측 실패로 상장 계획을 접자 업계는 당혹스러운 분위기다.

보로노이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변수와 일부 회사의 임상 실패, 부정회계 여파로 투자업계 분위기가 악화하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바이오벤처가 늘고 있다.

○기관 외면에 수요예측 실패

'바이오 유니콘' 보로노이, 전격 상장 철회
16일 업계에 따르면 보로노이는 이날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제출했다. 보로노이는 몸속에서 각종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단백질인 인산화 효소를 저해하는 정밀표적치료제 개발 바이오벤처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보로노이는 이달 30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4~15일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계획한 기관투자가 대상 공모 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보로노이는 공모가 희망밴드를 주당 5만~6만5000원으로 제시했지만 기관투자가의 참여가 기대에 못 미쳤다. 공모가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상장을 강행하는 방안도 고민했지만, 투자자 보호 등을 고려해 일단 상장 철회를 결정했다. 김대권 보로노이 대표는 “시장 상황을 고려해 상장에 재도전하겠다”고 했다. 보로노이는 한국거래소의 상장 승인을 받은 올 1월로부터 6개월 내에 재심사를 받지 않고 상장을 다시 시도할 수 있다.

보로노이는 ‘유니콘 특례 1호’ 상장 가능성에 업계 관심을 받아 왔다. 유니콘 특례 상장은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에 한해 외부 전문평가기관 한 곳에서만 기술성 평가를 받으면 상장에 도전할 수 있는 제도다. 보로노이는 기술수출 4건을 성사시키면서 기술력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수출 성과가 있는 보로노이가 기관투자가 외면에 상장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은 의외”라고 했다.

○자금 조달 어려움 겪는 바이오

보로노이 상장 철회는 최근 바이오업계의 자금 조달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대내외 악재가 터지면서 바이오 투자는 극도로 위축돼 있다. 최근 들어 기술이전과 임상에서 성과가 나오는 몇몇 바이오벤처 중심으로 분위기가 회복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냉골’이라는 평가가 많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지난해 유상증자를 통해 3164억원을 유치하려 했지만, 시장 분위기가 악화하자 자금 조달 규모를 애초 계획의 절반 수준인 1685억원으로 줄였다. 이마저도 흥행에 실패하며 실권주를 모두 떠안은 주관사 KB증권이 최대주주(28%)에 오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업계에서는 창업주인 손기영 회장 지분율이 4% 수준에 불과해 KB증권 보유 지분의 향방에 따라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도 제기된다. 회사 관계자는 “KB증권은 유상증자를 주관한 우호 세력이기 때문에 적대적 M&A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업계에선 제2, 제3의 보로노이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보로노이와 함께 대어급 평가를 받는 지아이이노베이션과 디앤디파마텍 등은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상장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지아이이노베이션은 지난해 하반기 성장성 특례로 상장을 추진했지만, 보로노이와 같은 유니콘 특례로 방향을 바꿨다.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업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점이 보수적으로 변화하면서 상장은 물론 신약 개발에 필요한 투자금 유치도 여의치 않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