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폐암 면역항암제가 어떤 환자에게 효과가 있을지 예측하는 새로운 ‘바이오마커(생체표지자)’를 개발했다.삼성서울병원은 이세훈·박세훈 혈액종양내과 교수, 최윤라 병리과 교수, 김효진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 옥찬영 루닛 최고의학책임자(CMO) 연구팀이 종양침윤성림프구(TIL)를 활용해 미국 머크(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의 치료 효과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TIL은 암 조직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다. 항암 치료의 성패를 예측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로 학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TIL이 암 조직 안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일일이 살펴보기 어려워 실제 의료현장에서는 바이오마커로 쓰이지 못했다.연구팀은 루닛의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TIL이 암 조직에 얼마나 분포돼 있는지 자동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했다. 이를 바탕으로 환자 518명을 TIL의 밀도·분포에 따라 ‘활성’ ‘제외’ ‘결핍’ 등 세 그룹으로 나눈 뒤 면역항암제 치료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활성 그룹은 전체 생존기간의 중앙값이 24.8개월로 제외(14개월), 결핍(10.6개월) 그룹보다 길었다. 무진행 생존 기간도 활성 그룹이 4.1개월로 가장 길었다.이 교수는 “새 바이오마커를 보조수단으로 삼는다면 더 많은 환자가 보다 나은 치료 결과를 기대할 수 있고, 자칫 소외될 수 있는 환자에게도 치료 기회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세계적 암 관련 학술지인 임상종양학회지에 실렸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사진)이 화학 항암제에 내성이 있는 두경부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미국 피츠버그대병원(UPMC) 힐만 암센터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14일자에 이와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두경부암은 구강암, 후두암, 인두암 등 머리와 목에 발생하는 악성종양을 통틀어 일컫는다. 구강암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절제술이나 방사선 치료를 표준 치료법으로 한다. 시스플라틴이 1차 치료제로 주로 처방되지만 간혹 내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연구진은 먼저 시스플라틴의 내성 원인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앞선 연구에서 ‘TMEM16A’라는 단백질에 의해 시스플라틴 내성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히기도 했다. 당시 연구에선 두경부암 환자의 약 30%에서 이 단백질이 과발현돼 있었다. TMEM16A는 세포막에 발현되는 단백질로 여러 물질이 세포 안팎을 이동하게 해주는 통로다. 하지만 이 단백질이 어떻게 시스플라틴의 내성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연구진은 이번 연구에서 TMEM16A가 시스플라틴을 세포 내 작은 주머니인 리소좀에 가둬 약물이 제 기능을 못하게 하는 것을 확인했다. 리소좀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불리는 세포 소기관이다. 필요 없는 단백질을 분해해 세포 밖으로 내뱉는다. 리소좀 안에 들어온 시스플라틴 역시 다른 단백질처럼 분해돼 세포 밖으로 배출된다. 시스플라틴은 세포 안에 있는 DNA에 결합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약물이기 때문에, 세포 밖으로 배출되면 제 작용을 하기가 어렵다.연구진은 이런 메커니즘에 착안해 리소좀의 기능을 억제하는 항말라리아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떠올렸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리소좀이 불필요한 단백질을 처리하는 메커니즘을 저해한다. 연구진은 시스플라틴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될 것으로 판단했다.연구진은 사람의 암세포를 이식한 닭의 배아에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시스플라틴을 처리했다. 그러자 시스플라틴만 처리한 배아보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함께 처리한 경우 암세포를 더 많이 제거하는 것을 확인했다.국내 두경부암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환자 수는 2만1223명이다. 2016년에 비해 23% 증가한 것으로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
말라리아 치료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화학 항암제에 내성이 있는 두경부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피츠버그대병원(UPMC) 힐만 암센터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이달 14일자에 이와 같은 결과를 발표했다. 두경부암은 코 구강 안면 후두 침샘 등 머리와 목에 발생한 악성종양을 말한다. 절제술이나 방사선 치료가 표준치료로 이용되고 있으며, 시스플라틴이 1차 치료제로 처방되고 있다. 하지만 간혹 항암제에 내성이 생기는 환자들이 발생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연구진은 먼저 시스플라틴 내성의 원인을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전 연구에서 ‘TMEM16A’라는 단백질에 의해 시스플라틴 내성이 발생한다는 것을 밝혔다. 당시 연구 결과 두경부암의 약 30%에서 이 단백질이 과발현돼 있었다. TMEM16A는 세포막에 발현되는 단백질로 여러 물질이 세포 안팎을 이동하게 해주는 통로다. 당시만 해도 이 단백질이 어떻게 시스플라틴의 내성을 불러일으키는지는 불분명했다.이번 연구에서 TMEM16A가 시스플라틴을 세포 내 작은 주머니인 ‘리소좀’에 가둬, 약물이 제 기능을 못하게 하는 것을 확인했다. 리소좀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불리는 세포 소기관이다. 필요 없는 단백질을 분해해 세포 밖으로 내뱉는다. 연구진은 리소좀 안에 들어온 시스플라틴 역시 다른 단백질처럼 분해돼 세포 밖으로 배출된다고 밝혔다. 시스플라틴은 세포 안에 있는 디옥시리보핵산(DNA)에 결합해 암세포의 증식을 막는 약물이다. 때문에 세포 밖으로 배출되면 작용하기 어렵다.연구진은 이런 메커니즘에 착안해 리소좀의 기능을 억제하는 항말라리아제인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떠올렸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은 리소좀이 불필요한 단백질을 처리하는 ‘오토파지’ 과정을 저해한다. 즉 시스플라틴의 오토파지 현상도 막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연구진은 사람의 암세포를 이식한 닭의 배아에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시스플라틴을 처리했다. 그러자 시스플라틴만 처리한 배아보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을 함께 처리한 경우 암세포를 더 많이 제거하는 것을 확인했다.시스플라틴 내성을 가진 인간 암세포를 이식한 쥐 모델에서도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두 약물을 함께 투여했을 때 종양의 성장 속도가 현저히 느려지는 것을 확인했다. 시스플라틴이 제 기능을 하는데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역할을 했다는 의미다. 우맘마헤쉐르 듀부리 UPMC 힐만 암센터 박사는 “이번 실험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두경부암의 내성을 막는 용도로 새롭게 승인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진은 두경부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시스플라틴의 병용 치료의 임상 2상 시험을 설계하고 있다. 국내 두경부암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환자 수는 2만3691명으로 2015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최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