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선진 플랫바이오 대표
[김선진의 바이오 뷰] 바이오 업계의 ‘깐부’, 현명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법

최근 K-드라마의 위상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려놓은 <오징어 게임>이라는 화제작이 있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스토리 전개뿐 아니라 출연 배우들의 실감나고 탁월한 연기의 합작 품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라마는 여러 화제의 장면과 함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게임과 유행어를 소환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깐부’다.

요즘같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놀이감이 없던 시절에는 어린아이들이 동네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노는 놀이가 대세였다. 딱지치기, 구슬놀이, 팽이치기 등 사치스러운 도구를 쓰는 놀이부터 망까기, 돌치기 등 굴러 다니는 돌을 다듬어 사용하던 저렴한 놀이가 있었다.

다방구, 집지키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놀이들을 지겨워하거나 싫증 내지 않고 땀으로 꼬질꼬질해지고 땟국물이 뚝뚝 떨어질 때까지 거의 매일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만일 운이 좋아 엄마한테서 탄 용돈이 있던 날에는 조그만 앉은뱅이 파라솔 밑의 연탄불에서 달고나 국자를 나무젓가락으로 열심히 저어서 먹었다. 뽑기에 찍혀 있는 도형을 혼신의 힘을 다해 원형 그대로 뜯어내려고 했던 것은 또 한 개의 뽑기를 공짜로 얻어먹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의 가장 큰 라이벌은 나보다 성적이 좋았던 같은 반 급우가 아니라 나보다 고급 버전, 즉 최신 만화의 주인공이 그려진 딱지나 현란한 무늬나 색깔을 띠는 구슬을 갖고 있는 동네 친구였다. 물론 탁월한 실력으로 동네의 딱지와 구슬을 싹쓸이해서 산같이 쌓아놓고 있는 친구 도 타도의 대상이었다.

이렇게 다양한 놀이에서 패자가 되는 것은 썩 기분 좋지 않은 일이라 가능하면 승자가 되려 고 나름의 전략을 수립해 피나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있다. 이때 등장하는 가장 흔한 형태가 팀을 결성하는 것이다. 즉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동맹을 맺어 힘을 합쳐 상대를 공격하고 우리를 방어하는 것이다.

어릴 때는 ‘깜보를 맺는다’고 했는데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친구, 짝꿍 등의 은어로 ‘깜보’, ‘깜부’, ‘깐부’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

바이오 기업의 ‘깐부’, 시너지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바이오 업계에서도 깐부를 맺는 것은 지혜롭고 현명한 전략이라 생각된다. 물론 재원과 인력이 풍부하고 완벽한 인프라를 갖고 있는 글로벌 제약사나 시류를 제대로 잘 타서 어마어마한 투자를 유치한, 혹은 상장에 성공해 충분한 개발비를 확보한 벤처는 필요한 인력과 인프라를 갖춰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물질이나 기술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큰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깐부를 맺는 의미는 욕심을 버리고 각 회사가 갖고 있는 남보다 잘할 수 있는 주특기를 발휘해 시너지를 내려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는 일종의 매너리즘 극복이다. 즉 현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각도와 방향이 천편일률적이거나 비슷해 어느 범주를 벗어 나는 혁신성이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협업은 이런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같은 과정과 결과를 경험과 지식의 배경이 다른 주체들이 새로운 접근 방식과 해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을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깐부의 한 종류로 본다면, 개발과정에서 각 기능을 나누어 담당하는 것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깐부를 맺는다고 할 수 있다. 깐부를 통해 자신들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행착오를 줄인다면 깐부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그런데 깐부는 영원한 것인가. 드라마는 깐부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 맺어져 이번 게임의 깐부가 다음 게임의 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나의 생존을 위해 깐부로서 함께 생존한 상대를 속이는 살벌하고 파렴치한 비양심적인 냉혈한으로 만들어냈다.

바이오 업계의 깐부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생각보다 많은 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단독 개발보다는 월등하게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반면 의도했던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좌초한 협업도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치부들 사이에 많이 존재한다.

깐부와 잘 헤어지는 법
어떤 이유와 원인이 깐부를 깨는 기분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가장 상식적으로 먼저 함께 개발하고자 했던 물질이 예상했던 효능을 내지 못했거나 독성이 발생한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당연히 임상개발을 시도할 적응증을 못 찾고 개발을 지속할 동력을 잃었으니 양측의 합의 아래 평화로운 깐부의 파기 결정이 내려질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명확한 이유가 없는 경우, 예를 들어 개발을 계속할 건지 중단할 건지 결정을 내리기 애매한 경우가 지루하게 계속되는 경우는 어떠할까. 포기하지 않고 개발 노력을 계속할 수도, 더 개선되고 가능성 있는 물질을 찾을 때까지 잠시 깐부의 밀월 관계를 미뤄둘 수도, 깐부 관계를 정리할 수도 있다.

깐부를 정리하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시간이다. 상호 간에 서두르지 말고 충분한 숙고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토론과 고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벽한 합의하에 각자의 길로 가야 한다.

항상 계획하거나 기대하던 수준에 못 미치는 결과라고 판단을 하는 과정에는 어쭙잖은 아마추어와 훈수꾼이 똥파리같이 끼기 마련이다. 당연히 일방적인 통보나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강요하며 파기를 주장하는 어리석은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본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면 사생결단을 하고 싸움을 할 원수를 만드는 것이다.

전문 영역은 생각보다 좁다. 언제 어디서 다시 조우할지 모르고 백만의 원군보다 소수의 적군에 의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곳이다. 드라마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주인공이 가족도 후배도 잃고 의미 없는 막대한 부를 외롭게 차지하는 마지막 모습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무엇보다도 목숨을 걸고 엄청난 상금을 차지 하기 위한 게임 과정에서 본인이 가진 정정당당함, 정의로움, 정직함과 바꾸며 중간에 탈락한 하류 인생들과 다를 바 없이 전락해가는 안쓰러운 주인공이 되는 어리석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저자 소개>

[김선진의 바이오 뷰] 바이오 업계의 ‘깐부’, 현명하게 만나고 헤어지는 법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 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연구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