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릭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의 단점인 ‘짧은 수명’을 개선할 새로운 연구가 나왔습니다. 킴리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칼 준 교수가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과학에서 산업찾기] ‘킴리아’의 아버지 칼 준 교수, CAR-T 번아웃 막을 방법 찾았다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는 CAR-T치료제. 노바티스의 ‘킴리아’는 치료가 더 이상 어려운 혈액암 환자의 수명을 크게 늘렸습니다. 하지만 주입하고 한 달 정도가 지나면 효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 큰 단점으로 꼽혔습니다.

학계에서는 ‘CAR-T 세포 고갈(CAR-T cell exhaustion)’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번아웃’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은 CAR-T가 고형암으로 적응증을 확장하는 데 있어 아주 큰 장애물입니다.

때문에 CAR-T 후발주자들은 번아웃 없는 CAR-T치료제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연구 단계에서는 면역을 억제시키는 골수유래억제세포(MDSC·Myeloid-Derived Suppressor Cell)를 제거하거나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번아웃된 T세포에서 많이 발현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등의 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과학에서 산업찾기] ‘킴리아’의 아버지 칼 준 교수, CAR-T 번아웃 막을 방법 찾았다
번아웃된 CAR-T, NK세포와 비슷해져
그런데 최근 CAR-T의 고갈 현상과 관련해 재미있는 논문이 국제학술지 <셀> 12월 9일 자에 실렸습니다. CAR-T가 번아웃되면 또 다른 면역세포인 NK세포와 유사한 성질을 띤다는 것입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칼 준 미국 펜실베이니아 교수는 T세포를 이용한 항암치료 연구로 이름난 석학입니다. 킴리아를 개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칼 준 교수팀은 번아웃이 가까워진 T세포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 메조텔린 타깃의 CAR-T(M5CAR-T)를 제작했습니다. 메조텔린은 고형암세포의 표면에서 많이 발현돼 있는 단백질로 CAR-T치료제의 주요 타깃 중 하나입니다. 연구진은 M5CAR-T에 항원인 메조텔린을 지속적으로 장기간 노출시켰습니다.

20~35일이 지나자 기능을 하는 M5CAR-T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마저도 번아웃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증식의 빈도가 줄고 사이토카인의 생성도 줄었죠. 면역억제 수용체의 발현은 증가하고, T세포 표면에 CAR 단백질의 발현은 되레 줄어들었습니다.

연구진은 항원에 장기 노출된 M5CAR-T의 RNA 전체를 시퀀싱했습니다. 그 결과, T세포의 고갈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중에 상당수는 또 다른 면역세포인 NK세포의 특징적인 유전자(KLRC1, KLRC2, KLRC3, KLRB1, KLRD1, KIR2DL4 등)였습니다.

연구진은 NK세포의 ‘시그니처’ 유전자가 CAR-T 치료에서 효과를 보지 못한 환자, 췌장암이 재발한 쥐에서 회수한 CAR-T에서도 발견됐다고 밝혔습니다.

논문에 따르면 이런 NK세포 시그니처 유전자는 모두 NK세포의 활성을 막는 억제성 수용체였습니다. 이들은 T세포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역치를 높여, T세포의 공격력을 떨어뜨립니다. 연구진은 “NK세포의 일부 유전자가 T세포의 고갈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일종의 ‘바이오마커’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ID3, SOX4… 번아웃 늦추는 핵심 인자로 밝혀져
연구진은 NK세포 시그니처 유전자를 포함해 번아웃 CAR-T의 여러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전사인자로 눈을 돌렸습니다. 좀 더 상위 조절자를 찾아 나선 것이죠. 그 결과 ID3, SOX4 등 2개의 전사인자가 T세포의 고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연구진은 두 전사인자의 역할을 확인하기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CAR-T의 유전자에서 ID3, SOX4 유전자를 없앴습니다.

초반에는 아무 조작도 가하지 않은 CAR-T(WT)와 유전자 편집을 한 CAR-T(KO)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24일간 항원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자, WT세포는 NK세포와 유사한 특징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전사인자를 제거한 KO세포에서는 이런 변화가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번아웃 T세포에서 발견되는 유전자 30개의 평균 발현 수준을 반영한 ‘기능 장애 점수(dysfuntion score)’를 개발했습니다. 그 결과, KO세포에 비해 WT세포의 기능 장애 점수는 1.5배 이상 높았습니다. 그만큼 T세포가 번아웃에 가까운 상황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ID3만 제거해도 SOX4의 발현까지 억제되는 것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즉 ID3가 SOX4의 상위 조절자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입니다. 기능 장애 점수에서도 ID3만 제거한 T세포와 ID3, SOX4를 모두 제거한 세포가 비슷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칼 준 교수는 논문에서 “이번 연구를 통해 CAR-T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자들을 발견했다”며 “다만 ID3, SOX4의 연구는 모두 실험실 조건의 세포 단계에서 진행됐기 때문에, 실제 생체 내에서도 같은 작용이 일어날지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최지원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