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기의 RNA 세계] 중심원리부터 RNA 바이러스까지, RNA란 무엇인가
3년 전만 하더라도 제약·바이오에 관심이 많은 투자자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항상 듣는 말이 있었다. “제가 공부를 해서 이제 DNA는 좀 아는데 RNA는 너무 어렵네요”라는 이야기였다.

최근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mRNA 기술을 이용한 백신이 개발, 사용되면서 이제는 일반인도 RNA의 개념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 mRNA 백신을 전달하는 기술인 지질나노입자(LNP)에 대한 지식을 가진 일반인도 있어 격세지감을 느낀다.

인류가 감염성 질환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서 자리매김한 mRNA 기술 외에도 질병 유발 단백질을 코드하는 mRNA를 표적으로 삼아 아예 이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하는 RNA간섭(RNAi·RNA interference)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2018년 첫 승인 이후 현재까지 4종이 출시됐다.

중심원리와 RNA
RNA에 대해 다루기 위해선 먼저 중심원리(Central Dogma)에 대해 소개할 필요가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 정보이면서 자손에게 전달되는 정보인 유전정보는 DNA에 기록돼 있다.

예를 들어 생체 내 화학 작용을 촉진하는 생체 촉매 역할을 하는 물질인 효소라든지 단위세포나 개체 수준의 골격을 구성하는 뼈대 역할을 하는 물질들은 대부분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가 이러한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시하는 컨트롤타워는 DNA에 코드된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집행하게 된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규명한 인류사적 사건 이후 현대 생물학이 꽃을 피웠다. 1958년 크릭은 중심원리라는 학설을 제시했다. 이는 DNA에 코드된 유전정보 흐름의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다.

즉 DNA에 코드된 유전정보는 ‘전사’라는 과정을 통해 DNA와 유사한 구조이지만 두 가닥이 아닌 한 가닥으로 이루어진 핵산 물질인 RNA를 만들게 되며 이후 이 RNA는 세포 내 단백질 합성 공장인 리보솜과 결합한 뒤 ‘번역’ 과정을 통해 단백질을 만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RNA는 중간 전령(메신저)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분자라고 할 수 있다.
중심원리는 세포핵 속 DNA를 거쳐 RNA, mRNA를 통해 단백질이 생성되는 유전정보 흐름의 방향을 설명해주는 이론이다.
중심원리는 세포핵 속 DNA를 거쳐 RNA, mRNA를 통해 단백질이 생성되는 유전정보 흐름의 방향을 설명해주는 이론이다.
mRNA 발현 패턴의 변화가 중요한 이유
전통적인 생명과학 교과서는 세포 내에 존재하는 RNA를 기능에 따라 mRNA, rRNA, tRNA 등 세 종류로 나누고 있다.

mRNA는 전령RNA(messenger RNA)로 불리는데, DNA의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단백질 합성의 코드로서 사용되는 RNA다. 리보솜 RNA(rRNA·ribosome RNA)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세포 내 공장인 리보솜의 주된 구성 요소다.

운반DNA(tRNA·transfer RNA)는 mRNA가 갖고 있는 코돈(mRNA상에 연속된 3개 염기)을 인식한 뒤 그에 해당하는 아미노산을 짝지어줌으로써 단백질 사슬을 만드는 과정에서 ‘번역기’ 역할을 한다.

그 외엔 세포 내에서 각각 고유한 기능을 하고 있는 snRNA, snoRNA와 같은 작은 RNA들이 있다. mRNA는 단백질을 만드는 코드를 갖고 있어 ‘코딩RNA’라고도 불린다. 반면 단백질을 코드하지 않는 다른 세포 내 RNA는 ‘논코딩RNA’로 불린다.

특히 mRNA는 단백질을 코드하는 역할이 있어 많은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돼왔다. 모든 세포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DNA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뇌세포와 근육세포가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걸까. 그 이유는 동일한 DNA가 갖는 유전정보에서 서로 다른 종류의 mRNA가 발현되고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만들어져 기능을 하는 단백질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포 수준에서 총체적인 유전자 발현 패턴을 연구하는 학문이 전사체학(Transcriptomics)이다. 세포 내 RNA를 분리, 분석하는 다양한 기술의 발전과 함께 특정한 mRNA 발현 패턴의 변화가 다양한 질병과 관련 있다는 게 속속 발견됐고, 이에 따라 특정 mRNA 발현을 제어해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는 개념으로 신약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게놈 프로젝트 및 다양한 논코딩 RNA의 발견
2000년대 초반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료 선언과 함께 30억 개에 달하는 인간 DNA 염기 서열의 해독이 상당부분 이뤄졌다. 이를 통해 발견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전체 DNA 중 단백질을 코드하는 부분은 약 1~2%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나머지 98~99%는 처음엔 소위 쓰레기 DNA, 혹은 정크DNA로 명명됐다.

하지만 후속 연구를 거쳐 단백질을 코드하지 않는 DNA의 상당부분에서 RNA를 만들고, 이 RNA들은 단백질로 번역되지 않는 논코딩RNA이지만 세포 내에서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이러한 논코딩RNA들의 종류로는 마이크로 RNA(miRNA), 피위-인터렉팅RNA(piRNA), 긴 논코딩RNA(lncRNA) 등이 있다. 이들은 세포 내에서 다양한 유전자 발현 조절 기능을 수행하면서 고등생물 세포 속에서 복잡한 유전자 제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유전자 조절 기능 역할은 새로 발견된 논코딩RNA와 전통적으로 알려져 있던 논코딩 RNA인 tRNA, rRNA 사이에서 나타나는 큰 차이다.

인간 게놈에서 논코딩RNA의 중요성은 수치적으로 쉽게 드러난다. 학자들은 단백질을 코드하는 유전자의 개수를 현재 약 2만 개로 유추하고 있다. 그런데 단백질을 코드하지 않지만 유전자 발현 조절 기능을 할 것으로 추정되는 논코딩RNA를 코드하는 유전자를 포함하면 이 수가 약 4만7000개로 늘어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약 2300개의 miRNA가 더해진다.

특히 miRNA는 ‘RNA간섭(RNAi)’이라고 하는 고등 세포 내에 존재하는 기전을 통해 mRNA에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억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RNAi 기전으로 작용하는 또 다른 RNA인 작은간섭RNA(siRNA·small interfering RNA)와 함께 현재 다양한 치료제 개발에 쓰이고 있다.

RNA의 구조적·기능적 특징
DNA와 RNA는 ‘핵산’이라는 동일한 분자군에 속하며 유사한 구조적 특징을 갖고 있다. 구조상 DNA는 유전암호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화학구조인 염기(base)가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시토신(C)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RNA는 T 대신에 유라실(U)이 존재한다.

T와 U의 염기 구조를 비교해보면 메틸기(-CH3) 하나의 존재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RNA는 전사 과정에서 DNA의 유전암호를 충실하게 반영한 합성이 가능하다. 핵산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당·인산·염기 중에서 RNA는 당의 2’ 위치에 알코올기(-OH)가 존재하나 DNA에는 알코올기가 없다는 점도 또 다른 차이점이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 외에도, 세포 내에 존재하는 DNA는 대부분 이중나선 구조로 존재하기 때문에 단단한 막대기 같은 구조를 갖게 된다. 이와 달리 RNA는 단일 가닥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RNA 분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화학적 상호작용을 통해 특이적이고 복잡한 3차원 구조를 가질 수 있다. 한 가닥으로 된 실타래가 꼬여서 복잡한 모양을 만드는 모습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분자과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원리 중 하나는 ‘구조가 기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막대기같이 생긴 구조를 가진 물질은 건물을 지을 때 쓰이는 철근처럼 세포의 구조를 지탱하는 기능 이외의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건을 쥐려면 여러 개의 손가락이 있는 손 모양을 가져야 하듯 말이다.

한 가닥으로 이뤄진 RNA가 꼬임을 통해 복잡한 3차원 구조를 만든다는 사실은 RNA도 마치 단백질처럼 효소로서 작용하거나 항체의 항원결합부위와 같이 표적 물질에 매우 특이적이고 높은 친화도로 결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RNA만으로 특정 화학반응에서 효소 작용을 하는 리보자임(ribozyme)의 발견, 그리고 특이적인 3차원 구조를 갖는 RNA가 마치 항체처럼 항원에 결합하는 압타머(aptamer)의 개발로 규명됐다.
[이동기의 RNA 세계] 중심원리부터 RNA 바이러스까지, RNA란 무엇인가
‘RNA 월드’ 가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DNA에 비해 RNA는 뉴클레오티드를 구성하는 당에 2’-OH기를 갖고 있다. 이 화학 구조의 존재 여부는 RNA가 DNA에 비해 훨씬 불안정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최초의 유전정보 저장소로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RNA로부터 점차 그 역할을 이어받은 DNA가 현재 일부 바이러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생명체에서 유전정보 저장소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주요한 이유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RNA가 유전정보의 저장 역할 외에도 생체 내 화학반응을 촉진시키는 RNA 효소(리보자임)로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RNA 월드’ 가설이 제시된 바 있다. 이는 최초의 생명체는 DNA나 단백질이 아닌 RNA로 구성돼 있었으며, RNA가 유전정보의 저장 및 다음 세대로의 전달뿐 아니라 유전정보 복제 및 기타 세포의 생존에 필수적인 효소 작용까지 스스로 수행했다는 가설이다.

이후 진화 과정에서 유전정보 저장소 역할은 보다 안정적인 구조를 갖는 DNA가 넘겨받았으며, 효소 작용은 4개의 염기로 구성된 RNA에 비해 20개의 아미노산을 활용해 보다 다양한 구조를 형성할 수 있는 단백질이 수행하게 됐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시드니 올트먼과 토머스 로버트 체크는 RNA 만으로 효소 작용을 수행할 수 있는 리보자임을 발견해 198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이 외에도 잭 쇼스택 등이 시험관 내 인공 진화 실험을 통해 다양한 리보자임을 발견한 사례는 RNA 월드 가설을 강하게 뒷받침하는 증거로 쓰이고 있다.

RNA 바이러스
일부 바이러스는 DNA 대신 RNA를 유전정보로 사용한다. 이러한 바이러스들 중 후천성 면역결핍증(에이즈)을 유발하는 HIV와 같은 레트로바이러스들은 바이러스가 증식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RNA 게놈을 주형으로 하는 역전사효소 작용을 통해 DNA를 만들고, 이 DNA가 다시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사용할 RNA를 생성하게 된다.

이렇게 RNA가 DNA를 만드는 이 역전사 과정은 앞서 크릭이 제시한 중심원리와는 방향성이 맞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러한 역전사 현상을 발견한 하워드 마틴 테민과 데이비드 볼티모어는 197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RNA 바이러스들 중 또 다른 바이러스들은 DNA를 중간 경유하지 않고 RdRp(RNA-dependent RNA polymerase)라는 효소를 이용해 바로 자신의 RNA 게놈을 증폭시켜 바이러스 증식을 하게 된다.

C형 간염 바이러스(HCV)나 코로나19 바이러스(SARS-CoV-2) 등이 이러한 종류에 속한다. 이렇게 RdRp를 사용하는 RNA 바이러스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이는 RdRp라는 효소가 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하는 교정(proofreading) 기능이 없거나 이 기능이 매우 약하게 작용해서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기 바이러스부터 출발해 델타 변이를 거쳐 최근 오미크론 변이까지 빠르게 변이를 일으키면서 인류가 어렵게 만들어낸 백신의 효과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도 RNA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mRNA 백신이 지금까지 만들어낸 코로나19 백신 중에서 가장 높은 방어력을 갖는 걸 생각하면 우리는 RNA 기술을 바탕으로 RNA 바이러스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 소개>

[이동기의 RNA 세계] 중심원리부터 RNA 바이러스까지, RNA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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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화학과를 졸업한 뒤 코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2008년 포항공대 조교수를 역임한 뒤 2008년부터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5년 RNA 간섭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기업 올릭스를 창업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2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