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세포 억제'가 생명 연장의 관건…특이약물 활용한 치료제 개발 치열
현대 의학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개척하지 못한 영역이 있다. 바로 ‘노화’다. 오랜 시간 동안 과학자들은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지만 이렇다 할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유전학, 세포 생물학 분야에서 획기적인 연구들이 연이어 발표되며, 수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노화로 인해 몸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변화를 구체화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며, 노화의 타깃을 ‘개체’에서 ‘세포’로 좁혀가고 있다.

○노화세포 치료 가능성 대두

우리 몸은 세포로 이뤄져 있으며, 나이가 듦에 따라 세포도 늙는다. 세포는 나이가 들면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는 노화세포로 변한다. 노화세포는 죽음에 이를 정도의 손상을 입었지만,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세포로서 자신이 원래 수행하던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주변 세포를 노화세포로 변형할 수 있는 분비 물질을 배출한다.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주변 세포를 노화세포로 변형시키는 특성 때문에 노화세포는 흔히 ‘좀비 세포’라고 불린다.

노화세포는 나이가 들수록 여러 장기에 점점 축적된다. 노화세포의 분비물은 혈관을 타고 여러 장기로 퍼져나가 노화세포의 축적을 촉진한다. 노화 세포의 축적은 만성 신장 질환, 퇴행성 관절 질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 감소,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다양한 노인성 질환을 불러일으킨다.

실제 노화세포를 특이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이 노인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명도 연장할 수 있음이 생쥐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제약업계에서는 약물 스크리닝을 통해 노화세포를 특이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을 개발하고 있으며, 노화세포만이 특이적으로 가지고 있는 표면 단백질을 인지하는 ‘키메릭 항원 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도 연구되고 있다. 학계에서도 노화세포의 분비물만을 억제해 노화세포를 제어하거나 노화세포를 정상세포로 되돌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노화 치료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노화 치료제 개발 전쟁의 시작

의료 서비스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인류의 기대수명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노화세포 치료제를 선점하기 위한 골드러시는 시작됐지만, 우리가 실제 노화세포 치료제를 처방받기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고령(old age)에 대한 질병코드(MG2A)를 부여하면서, 노화를 대상으로 하는 여러 치료제의 임상시험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노화가 치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하는 데도 사회적, 윤리적 제약이 존재한다. 노화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모든 인류에게 차별 없이 치료제를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아직까지는 노화를 정확히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노인성 질환 개선을 지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화세포의 축적 여부, 노화 속도 등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지표 마련이 시급하다. 추가적으로 장기마다 노화세포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노화세포 치료제가 정확히 표적 장기에 전달하고 이를 확인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최근 영국을 필두로 여러 나라가 노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해 노화 연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가 노화 치료제 개발 전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기초 연구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전 주기적인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