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미국과 함께 세계 모든 제약·바이오 기업이 뛰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로 통한다. 시장 규모(2018년 2783억달러)가 한국(161억달러)의 17배에 달하는 데다 허가 문턱도 높아 유럽의약품청(EMA)의 ‘커트라인’만 넘기면 중·후진국은 사실상 ‘프리 패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 '유럽 1호' 코로나 항체치료제 예약…이젠 美시장 간다
11일(현지시간) 셀트리온의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가 EMA 산하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로부터 허가 권고를 받은 것은 ‘토종기업의 메이저리그 입성’을 의미한다. 국내 기업이 신약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 3상에 이르기까지 ‘나홀로’ 개발한 바이오 의약품이 선진국 허가를 받은 것은 렉키로나가 처음이다. “대한민국 바이오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먹는 약 나와도 승산 있다”

렉키로나가 ‘유럽 1호 코로나19 항체치료제’ 타이틀을 예약한 것은 안전성과 약효를 검증받은 덕분이다. 먼저 안전성. 지난 5일 기준 국내에서 2만1366명이 맞았지만, 사망 사례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다른 심각한 부작용도 보고되지 않았다.

약효도 입증됐다. 경증 및 중등증 코로나19 환자 13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임상 3상 결과 렉키로나를 맞은 환자가 중증으로 나빠질 확률은 가짜약을 맞은 사람보다 70~72% 낮았다. 임상적 증상 개선 시간 역시 고위험군 환자에게서 4.7일 이상 줄었다. 전체 환자 기준으론 4.9일 감소했다.

셀트리온은 ‘먹는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와도 승산이 있다고 자신한다. 효능과 부작용, 편의성을 두루 감안할 때 렉키로나가 뒤진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MSD의 ‘몰누피라비르’의 중증 악화 억제 효과는 50% 안팎으로 렉키로나에 못 미친다. 심각한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은 렉키로나와 달리 “유전자 발현에 오류를 일으켜 암 발생, 기형아 출산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복용 편의성은 몰누피라비르가 앞선다. 200㎎ 캡슐 4정을 하루에 두 번, 5일 동안 총 40알 복용하면 된다. 렉키로나는 정맥주사로 60분간 투여해야 한다. ‘원샷 원킬’이다. 셀트리온 관계자는 “환자별 상태와 입원 여부 등이 먹는 약과 주사제 선택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자는 자체 개발 중인 경구용 코로나19 치료제가 입원·사망 확률을 최대 89% 낮춘다고 발표했지만 아직 세부 데이터는 공개하지 않았다.

○미국 시장에도 도전장

셀트리온의 다음 목표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입성이다. 셀트리온은 올 2월 국내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뒤 렉키로나의 해외 타깃을 유럽으로 정했다. 미국은 자국 기업인 일라이릴리와 리제네론의 항체치료제가 이미 긴급사용승인을 받은 것을 고려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제 1차 목표를 달성한 만큼 화력을 미국 시장을 뚫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셀트리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품목허가 신청 전 미팅’을 하고 있다. 여기에 다른 30여 개국과도 허가 및 판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

렉키로나 ‘업그레이드 버전’ 개발에도 나섰다. 흡입제형을 개발해 호주에서 임상 1상을 하고 있다. 입을 통해 몸 안에 들어간 약물이 기도 점막에 붙어 폐에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다. 먹는 약처럼 환자가 집에서 손쉽게 투약할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셀트리온은 렉키로나 수요가 충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여파로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가 재유행해서다. 독일에선 연일 사상 최다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프랑스에선 이틀 연속 1만 명을 넘겼다. 미국에서도 리제네론과 일라이릴리 치료제가 거의 모두 선구매되는 등 사실상 공급 부족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렉키로나 판매가 늘면 셀트리온의 수익성도 좋아진다. 셀트리온이 렉키로나 판매가를 한 병에 150만~250만원 정도인 경쟁 제품보다 낮게 책정하더라도 현재 주력인 바이오시밀러보다는 마진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렉키로나가 셀트리온의 중장기 수익성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먹는 약과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있는 데다 백신 접종이 늘면서 고위험군 경증 및 중등증 환자의 입원 비율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상헌/한재영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