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면역학 강의] 후천성 면역의 멀티플레이어 T세포
지난 호에 주로 언급한 항체를 분비하는 후천성 면역세포는 B세포다. 주로 림프관을 따라 이동하는 세포라 ‘B 림프구(B lymphocyte)’라고도 부른다. 항체가 분비되는 닭의 기관인 파브리치우스 낭(Bursa of Fabricius)의 앞글자를 따 B세포가 됐다고 한다. 인간의 경우 B세포가 만들어지는 일차 면역 조직인 골수(bone marrow)의 앞글자를 따른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오늘의 주제인 T세포(혹은 T 림프구)의 이름도 세포가 분화하는 기관인 흉선(thymus)의 앞글자를 따라 ‘T’일뿐 별 의미는 없다.

지금의 지식으로 후천성 면역을 대표하는 이 두 세포의 이름을 작명한다면 B세포는 고기능 항체를 만들어 미사일처럼 날리므로 정밀 타격에 능한 스나이퍼(sniper), T세포는 후천성 면역의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와도 같으니 리베로(libero)가 어떨까.

까칠한 T세포
T세포도 B세포와 마찬가지로 개별적인 수용체를 가진 클론들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T세포 수용체(TCR)는 생긴 형태나, 체세포 재조 합으로 만들어지는 방식이나 주로 단백질 항원에 반응한다는 점에서 B세포 수용체 (BCR·항체)와 매우 유사하다.

TCR도 항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항원을 인식하는 가변 부위와 기능을 담당하는 불변 부위로 구분된다. TCR의 가변 부위도 항체처럼 분절된 유전자의 랜덤한 조합으로 만들어져 최종 단백질은 이론적으로 약 1018의 경우의 수를 갖는다. 하지만 인간이 얼마나 다양한 레퍼토리의 후천성 면역 수용체를 갖고 있는지 정확히 규명되진 않았다.

최근 발전한 생명과학기술은 단일 세포 수준에서 전사체(transcriptome)-DNA 상태의 유전자가 mRNA로 전사된 기록으로 특정 단백질의 발현 정도를 예측하는 지표로 사용-를 분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기술을 통해 인간의 TCR 재조합도 분석해보니 가변 부위를 구성하는 분절된 유전자 조각이 모두 같은 확률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인간 개인 혹은 어떤 집단에서 주로 사용되는 TCR 가변 부위 조각이 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아직 연구 초기 결과지만 과학은 후천성 수용체 레퍼토리 생성의 비밀에 점점 다가서고 있다.

B세포와 T세포의 반응 방식 차이
TCR과 항체 두 후천성 면역세포 수용체는 같은 조상으로부터 기원해 지금의 형태로 분기됐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두 수용체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T세포 수용체는 항체와 달리 세포 밖으로 분비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이 T세포 작용 방식의 큰 차이를 불러오고, 기능적인 면에서 B세포와 차별성을 갖게 한다.

면역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B세포와 T세포가 단백질 항원에 반응하는 방식의 차이를 설명할 때마다 드는 비유가 있다. 사과를 단백질 항원이라 생각하자. B세포 수용체인 항체는 사과를 직접 보고 맛있는 부분을 깨무는 식으로 반응한다. 즉 세포 표면에 있거나 체액에 떠다니는 단백질을 보고 항체가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식이다.

반면 T세포는 항원에 같은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다시 사과가 항원이라고 한다면, 사과가 조각조각 잘려서 접시에 차려져 있을 때만 T세포의 관심을 불러올 수 있다. 그것도 아무 접시에나 대충 차렸을 땐 흥미를 보이지 않고, T세포에게 친숙한 접시에 일정한 크기로 올려져 있을 때 비로소 반응한다. 그래서 나는 까칠한 T세포라고 부른다!

사과(단백질 항원 조각)가 차려진 접시로 비유한 물질이 그 유명한 ‘주조직적합성복합체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라는 세포 표면 단백질이고, 인간 MHC의 경우 특별히 ‘HLA(Human Leukocyte Antigen)’라고 부른다.

인간은 6개의 대표적인 HLA 분자(HLA-A, -B, -C, -DR, -DQ, -DP)를 갖고 있다. 장기 이식을 할 때 공여자와 수혜자가 이식거부 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리 표현형을 맞춰야 하는 단백질이다. HLA는 인간의 유전자 중에 가장 다형성을 가진다고 알려진 유전자다.

항원제시세포의 T세포 교육
까칠한 T세포를 고분고분하게 만드는 특별한 세포가 있다. 바로 T세포에게 잘 차려진 항원 밥상을 제공하는 항원제시세포(APC·Antigen Presenting Cell)다. TCR은 항체와 달리 MHC 접시 위에 올린 항원만 인식한다고 했다. 단백질과 단백질 사이의 결합을 미시적인 수준으로 규명하는 학문이 구조생물학이다. TCR-MHC 복합체의 구조 분석을 통해 TCR 가변 부위의 일부는 MHC 접시와, 또 다른 일부는 MHC에 올린 항원과 접촉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백문이 불여일견, 과학에서도 눈으로 직접 관찰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것은 별로 없다. 따라서 T세포가 항원에 반응하는 건 필연적으로 MHC 단백질을 표면에 많이 가진 APC와 접촉할 때에만 가능하다.

생물학에서 세포 간 소통은 대부분 세포 표면에 노출된 수용체를 자극하면서 시작한다. 수용체의 자극은 수용체와 친화력을 갖고 결합할 수 있는 단백질인 리간드가 담당한다. 수용체-리간드의 결합은 세포 내부에서 특정 생화학적 신호를 만들고, 이는 세포핵에서 특정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식으로 세포의 생물학적 반응을 만든다.

TCR에 대한 리간드는 APC의 MHC다. MHC에는 특정 단백질 항원 조각(전체 단백질의 일부분으로 비교적 짧은 길이의 아미노산 서열로 ‘펩타이드’라고 부름)이 올려 있으므로 TCR은 엄밀하게는 MHC-peptide 복합체(줄여서 pMHC)를 인식하는 것이다.

APC는 세포의 다양한 소기관에서 항원 펩타이드들을 만들고 MHC 접시에 올려서 세포막으로 운반함으로써 비로소 특정 항원을 T세포에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항원제시세포의 요건
그렇다면 어떤 세포들이 APC로 작용할 수 있을까. 우선 MHC 단백질을 표면에 다량 갖고 있어야 하고, 감염균의 항원을 세포 소기관에서 잘 가공해 MHC 위에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 조직에 감염된 균의 항원을 포획해 T세포가 많이 모여 있는 림프절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몸 대부분의 세포들은 앞의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그래야 조직 세포에 침투한 감염균을 T세포가 인식해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포 종류별로 이들 기능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특히 항원을 가공해서 pMHC를 다량 표면에 노출하는 세포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또한 세 번째 기능은 극히 일부 세포만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세 가지 기능을 모두 다 잘할 수 있는 세포들이 APC의 역할을 보다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그래서 이러한 세포들을 ‘프로페셔널 APC’라고 부른다. 우리가 항원제시세포라고 부를 때 대부분은 이들 세포를 지칭한다.

대표적으로는 수지상세포가 있다. 수지상세포는 대식세포와 함께 대표적인 선천성 면역 세포로 분류된다. 평소 조직 내부에 거주하 다가 감염균 항원을 포획해 림프절로 이동한다. 림프절은 항원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T세포가 가득 모여 있는 곳이다.

대식세포가 조직을 떠나지 않고 조직의 염증을 유도하고 관리하는 보안관이라면, 수지상세포는 후방인 림프절로 이동해 후천성 면역세포인 T세포를 교육하는 교관으로 그 역할을 비유할 수 있다. T세포에게 항원을 보여줌으로써 적합한 T세포 클론이 선택되도록 하는 것이 수지상세포의 역할이다. 동시에 수지상세포는 조직에 침투한 감염균의 정보를 T세포에게 제공해 교육하는 특별한 임무도 맡고 있다.

APC들이 펩타이드 항원을 가공해 올리는 MHC는 크게 MHC-I과 MHC-II 두 종류가 있다. 두 분자의 전반적인 구조는 비슷하지만 가공한 펩타이드 항원을 담아낼 표면이 달라서 각각 다른 길이의 펩타이드 항원을 올릴 수 있다. MHC-I은 적혈구를 제외한 모든 세포에서 관찰되지만, MHC-II는 수지상세포와 같은 프로페셔널 APC에 국한돼 관찰된다.

이상이 면역학 교재에 나온 내용이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MHC-I이 없는 세포도 많고, MHC-II를 많이 가진 비면역세포들도 있다. 과학 지식은 항상 진화하는 것이라 과거의 지식이 검증돼 새롭게 변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것이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다.

MHC-I과 MHC-II 분자의 가장 큰 차이는 항원과 결합하는 장소인 세포 내 소기관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전문적인 내용이지만 T세포 반응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므로 간단히 언급할까 한다.
MHC-I은 세포질(cytoplasm) 안에서 가공된 펩타이드 항원을 소포체(endoplasmic reticulum)에서 올린다. 그래서 세포 내(內) 단백질을 제시하는 내인성(intrinsic) 경로라고 한다.

반면, MHC-II는 세포 밖에서 식균작용과 같은 세포이입 반응으로 유입되는 단백질이 분해되는 소기관인 엔도좀-리소좀에서 펩타이드 항원을 올린다. 따라서 세포 외(外) 단백질을 제시하므로 외인성(extrinsic) 경로라고 부른다.

T세포의 두 종류, 세포독성 T세포와 도움 T세포
항원 제시의 두 가지 경로는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이 지면에서는 제시된 항원이 자극하는 T세포의 종류와 연결해서 풀어갈까 한다.

T세포에는 크게 두 종류의 세포가 있다. 먼저 항원을 제시하는 세포를 인식하고 죽일 수 있는 ‘세포독성 T세포(cytotoxic or killer T cell)’가 있다. 세포 표면에 CD8이라는 특징적인 단백질 분자를 표지해서 ‘CD8+ T세포’라고도 부른다. 세포독성 T세포는 말 그대로 전문적인 킬러 세포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제거한다.

인간과 같은 다세포 생명체는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해서 다양한 종류의 세포들로 분화해 그 합으로 구성된 개체다. 그런데 특정 세포가 자기를 구성하는 다른 세포(유전적으로 같은)를 죽인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다. 생존을 위해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 같은 개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세포들만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라이선스를 살상 세포들에게 부여한 것일 테다.
[이승우의 면역학 강의] 후천성 면역의 멀티플레이어 T세포
세포독성 T세포는 TCR을 통해 항원제시세포의 MHC-I에 올라온 항원을 인식해 활성화된다. MHC-I은 세포 내에서 만들어지는 펩타이드 항원이 제시된다고 했다. 세포 내에서 감염균의 항원이 다량 만들어짐은 이들이 복제하고 있음을 의미하므로 이 세포들은 죽임을 당해야 하는 운명이다. 세포를 죽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은 남용된다면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세포독성 T세포의 활성은 필요에 따라 조절돼야 한다.

세포독성 T세포의 기능을 제어하는, 최근 항암면역치료에서 언급되는 면역관문분자 중 대표적으로 PD-1 분자가 있다. PD-1은 세포 독성 T세포 기능 저해 분자로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만성바이러스 감염 세포나 암세포의 경우 T세포의 PD-1 분자에 결합하는 리간드 PD-L1을 높게 발현함으로써 세포독성 T세포의 기능을 현저히 낮추고 세포독성 T세포의 공격을 피한다. 이 분야는 다른 지면에서 이미 다뤘으니 이 정도로 넘어 갈까 한다.

도움 T세포의 다양한 기능
세포 표면에 CD4라는 분자를 표지하는 T세포는, 항원을 제시하는 세포를 살상하는 대신 다양한 면역세포들의 반응을 도와주므로 도움 T세포(helper T cells, CD4+ T cell)라고 부른다.

세포독성 T세포와 달리 도움 T세포는 TCR이 MHC-II 분자에 올라온 항원을 인식한다. MHC-II는 세포 외부에서 유입된 항원을 제시하는 프로페셔널 APC가 높게 발현하므로 이들이 도움 T세포의 활성을 주로 조절한다.
[이승우의 면역학 강의] 후천성 면역의 멀티플레이어 T세포
도움 T세포는 지휘대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을 조율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한다. 즉 침입한 감염균의 정보를 지닌 수지상세포와 같은 APC는 주어진 상황에 적합한 도움 T세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APC에 의해 어떻게 조련되느냐에 따라 다른 기능을 가진 T세포로 분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분화된 도움 T세포들을-그들이 획득한 특별한 기능에 따라 구분하기 위해-면역학자들은 ‘도움 T세포 그룹(subset)’ 혹은 ‘리니지 (lineage)’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보자, 바이러스와 기생충 감염은 생리학적으로 다른 반응을 나타내고 이에 대한 호스트의 대처법도 달라야 한다. 바이러스는 세포 안으로 침입해 복제하므로 도움 T세포는 대식세포의 항바이러스 작용을 강화하거나 세포독성 T세포의 기능을 도와주는 식으로 작용한다.

반면, 우리 몸의 세포보다 더 큰 기생충이라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대식세포나 세포독성 T세포의 기능을 올린다 해도 이들을 제압하기 어렵다. 이 경우 도움 T세포는 기생충을 직접 죽이는 대신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직의 장벽(barrier)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이다.

전자의 역할은 ‘type-1(T helper 1·TH1)’, 후자는 ‘type-2 (T helper 2·TH2)’ 도움 T세포가 담당한다. APC가 바이러스와 기생충 감염 조직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고 림프절로 이동한 후 항원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도움 T세포를 각각의 리니지로 조련하는 것이다.

도움 T세포라는 이름을 얻게 된 건 이 세포들이 후천성 면역반응의 대표적인 무기인 고기능 항체의 생산을 돕기 때문이다. 같은 감염균을 인식할 수 있는 B세포와 T세포는 처음엔 서로의 영역에서 제 갈 길을 가다가 때가 되면 뭉쳐서 멋진 콜라보 무대를 선보인다. 후천성 면역의 가장 우아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GC(Germinal Center) 반응’이다.

항체가 B세포의 개별적인 수용체로 만들어져서 항원에 대한 반응성이 확인되면, 이후 B세포는 항체의 기능성을 최대한 높여야 한다. 이 때 도움 T세포는 B세포를 돕기 위한 특별한 계통으로 분화하는데 이들을 ‘여포 보조 (follicular helper) T세포(TFH)’라고 부른다.

도움 T세포의 계통 중엔 면역반응을 낮추기 위해 존재하는 세포도 있다. 바로 ‘조절 T세포 (regulatory T cells·Treg)’다. 도움 T세포가 전체적인 면역반응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면 당연히 반응을 낮출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조절 T세포의 중요성은 이 세포가 없을 때 생쥐나 인간이 과도한 자가 면역반응으로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입증된다. 도움 T세포는 다재다능한 멀티플레이어로 모든 면역반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기회를 기약한다.
[이승우의 면역학 강의] 후천성 면역의 멀티플레이어 T세포
<저자 소개>
[이승우의 면역학 강의] 후천성 면역의 멀티플레이어 T세포
이승우
바이러스면역학을 전공하고 포스텍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샌디에이고 라호야면역학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마치고 2012년부터 포스텍 생명과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포면역학 연구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기초연구로는 점막기관 염증 및 감염면역을, 응용연구로는 항암면역치료를 연구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