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 800원짜리 알약으로 항암 효과 높여요"
한 알에 800원에 불과한 아르기닌 의약품이 항암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웨일 코넬 의대 연구진은 뇌 전이가 일어난 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 전 경구용 아르기닌을 투여한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1월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뇌 전이가 발생한 암 환자 63명 중 무작위로 선별한 31명에게는 아르기닌을, 32명에게는 위약을 투여했다. 환자들은 이후 동일한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약 4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아르기닌을 투여받은 사람의 78%에서 뇌종양이 완전 또는 부분 관해됐다. 반면 위약을 투약받은 사람의 완전·부분 관해 비율은 22%에 그쳤다.

연구진은 아르기닌이 ‘방사선 민감제(radio sensitizer)’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방사선 민감제는 종양에 작용하는 방사선의 감도를 높여 치료 효과와 치료 가능 범위를 넓히는 약물이다. 연구진은 방사선 치료로 망가진 암세포가 DNA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아르기닌이 ‘방해꾼’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아르기닌은 단백질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 중 하나다. 체내 일산화질소(NO)의 ‘재료’가 되는 물질이다. 그래서 아르기닌의 양이 늘어나면 일산화질소량도 함께 증가한다.

일산화질소는 혈관 확장, 면역, 철분 대사 등 여러 생물학적 과정에 필요한 신호전달 물질이다. 적당량의 일산화질소는 다양한 세포 활동을 촉진하지만 일정량을 넘어서면 세포독성을 유발하고 DNA 돌연변이를 부른다.

연구를 주도한 로젤라 마룰로 박사는 “전임상 시험에서 방사선 치료 전 일산화질소를 다량 주입한 쥐의 암세포 DNA 복구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야누스’와 같은 일산화질소의 상반된 기능은 암세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적당량의 일산화질소는 암세포 성장을 돕지만, 과도하게 늘면 암세포에 독성 물질이 된다. 이 때문에 제약업계에서는 일산화질소 생성을 억제하거나 반대로 일산화질소 생성을 돕는 상반된 방식으로 항암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마룰로 박사는 “일산화질소 생성을 억제하는 건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프로세스도 복잡하다”며 “반면 아르기닌을 투여하는 건 간단하면서도 저렴한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뇌혈관장벽(BBB)을 잘 통과하는 것도 큰 강점이다. 상당수 약물이 BBB에 가로막혀 뇌질환 임상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BBB는 뇌를 통과하는 물질을 걸러내는 일종의 ‘검문소’다. 아르기닌은 뇌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아미노산이기 때문에 BBB를 쉽게 통과한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방사선 치료를 받기 1시간 전 고용량의 아르기닌을 투여했다”며 “방사선 치료를 받은 지 6개월 뒤 아르기닌 투여 그룹의 82%는 뇌와 연관된 신경학적 증상이 개선됐지만 위약 그룹은 20%에 그쳤다”고 했다. 이어 “아르기닌은 매우 저렴한 데다 안전성도 보장됐지만 실제 치료에서 활용 여부는 반드시 의사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