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Potassium Competitive Acid Blocker)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초대형 신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진출에 있어 속도가 가장 빠른 패썸파마슈티컬스는 최근 긍정적인 미국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기업들도 뒤를 쫓고 있다.

패썸은 지난 10월 18일(현지시간) 미란성 식도염(EE) 환자를 대상으로 한 P-CAB 보노프라잔과 표준치료제 프레바시드(성분명 란소프라졸)를 비교한 임상 3상의 주요(톱라인) 결과를 발표했다. 1차와 2차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2주 차에 프로톤 펌프 억제제(PPI)인 란소프라졸보다 우수한 치료 속도를 보였고, 24주 차에 보다 우수한 치료 유지를 입증했다.

패썸은 모든 등급의 EE 치료 및 속쓰림 완화를 적응증으로 내년 상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약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테리 쿠란 패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결과는 미란성 식도염으로 고통받는 2000만 명의 미국인에게 중요한 이정표”라며 “30여 년 만에 미국 및 유럽 위식도역류질환(GERD) 시장에서 중요한 혁신이 될 보노프라잔의 잠재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노프라잔은 모든 EE 환자에서 24주 치유 유지 등을 포함해 표준치료보다 우수함을 보여줬다”며 “우리는 보노프라잔이 수많은 환자의 충족되지 않은 요구를 만족시키고, EE에서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만들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다”고 말했다.

3상은 1024명의 EE 환자를 대상으로 두 단계로 이뤄졌다. 치료 단계에서는 보노프라잔 20mg과 란소프라졸 30mg을 최대 8주간 투여했다. 내시경을 통해 2주 차에 완전 치료를 확인했다. 완전 치료에 도달하지 않은 경우 8주 차에 다시 내시경 검사를 했다. 완전 치료를 달성한 환자는 24주 치료 유지를 평가하기 위해 보노프라잔 10mg 및 20mg을 란소프라졸 15mg과 비교했다. 속쓰림 증상 완화는 1일 2회 전자일기를 통해 평가했다.

치료 단계의 1차 평가변수는 8주 차까지 EE가 완전 치료된 환자의 비율이었다. 보노프라잔 투여군의 완전 치료 비율은 93%였고, 란소프라졸은 85%로 비열등성을 입증했다. 치료 속도는 보노프라잔이 더 빨랐다. 2주 차에 완전 치료된 환자는 보노프라잔이 70%, 란소프라졸이 53%였다.
치료 기간에 24시간 속쓰림이 없는 날의 비율에서도 보노프라잔 67%, 란소프라졸 64%로 비열등성을 입증해 2차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24주 차까지 치료 유지를 평가하는 시험에서 보노프라잔 20mg은 81%, 10mg은 79%를 기록해 란소프라졸 72%보다 1차 평가변수인 비열등성, 2차 평가변수인 우수성을 확인했다.

패썸은 내년 학회에서 임상 3상의 전체 결과를 발표하고,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계획이다. 패썸은 일본 다케다와 프레이저 헬스케어가 위장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제의 개발 및 상업화를 위해 2018년 설립한 합작사다. 다케다가 일본 및 아시아, 중남미 등에 출시한 보노프라잔의 미국, 유럽, 캐나다 상업화 권리를 갖고 있다.

패썸에 따르면 미국에는 6500만 명이 넘는 위식도역류질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약 30%가 식도 점막이 손상된 EE다. EE를 부적절하게 치료한 환자는 식도상피세포가 변형되는 바레트 식도가 나타날 수 있다. 바레트 식도는 식도암으로 발전할 수 있어 정기적인 내시경 검사가 필요하다.

소화성궤양용제 시장 2030년 23조 원
위식도역류질환은 위산이나 위 속의 내용물이 식도로 역류해 생긴다. 식도와 위 사이에 있는 식도 조임근의 힘이 약하거나 부적절하게 열리면 위식도역류가 일어난다. 지나치게 많아지면 식도염, 식도궤양, 식도가 좁아지는 식도 협착 등을 일으킨다. 역류된 위산이 식도를 지나 목까지 넘어와 후두염이나 천식, 만성기침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슴이 쓰리고 신물이 올라오는 증상의 위식도역류질환 환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에서 위식도역류질환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2016년 420만3000명에서 2020년 458만9000명으로 늘었다. 위식도역류질환으로 인한 건강보험 진료비는 2016년 5044억 원에서 지난해 6719억 원으로 증가했다.

발병 원인은 기름진 식습관과 운동부족, 스트레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환자는 규칙적인 운동, 커피와 술을 피하는 등의 생활습관 개선으로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생활습관 교정만으로는 장기 효과가 부족해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치료제로는 위산을 중화시키는 제산제, 위식도역류질환의 주범인 위산 분비를 억제하는 히스타민 수용체 길항제, PPI, P-CAB 등이 있다.

시장조사기관 BCC 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소화성궤양용제 시장 규모는 올해 21조 원에서 2030년 23조2000억 원으로 성장이 전망된다. 기존 치료제의 단점을 극복한 P-CAB 시장은 더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17개국 기준 2015년 610억 원에서 2030년 1조8760억 원으로 연평균 25.7% 증가할 것이란 추정이다.

P-CAB은 위산분비 억제제 중 가장 많이 쓰이는 PPI와 다른 기전으로 시장에 빠르게 침투 중이다.

위산은 위에 있는 벽세포에서 주로 만들어진다. 벽세포의 세포막에 존재하는 프로톤 펌프라는 효소가 위산분비의 최종 단계에서 작용한다. PPI는 전구물질(prodrug)로 위산에 의해 활성화된 후 프로톤 펌프와 결합해 위산분비를 억제한다. 이 때문에 식사 전에 투약해야 하고 약효가 늦게(3~5일) 나타난다.

반면 P-CAB은 위산에 의해 활성화될 필요가 없이 프로톤 펌프에 결합해 수십 분에서 수 시간 내 약효가 나타난다. 식사와 무관하게 투약할 수 있다. 약효도 오래 지속돼 야간에 발생하는 속쓰림에도 효과를 보인다.

PPI는 분자 구조가 서로 비슷하지만, P-CAB은 약마다 분자 구조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로 인해 효능과 부작용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국내에 출시된 레바프라잔은 위산분비 억제가 PPI보다 약해 소화성궤양에만 적응증을 갖고 있다.

HK이노엔·대웅제약, 글로벌 진출 잰걸음
P-CAB에 있어서는 국내 기업들의 개발 속도가 빠르다. 보노프라잔의 뒤를 이어 글로벌 진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연매출 1000억 원 돌파를 앞두고 있는 HK이노엔의 케이캡(테고프라잔)은 정제형과 캡슐형에 대한 2개의 미국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연내 1상을 완료해 내년 1분기 FDA에 3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중국에서는 협력사인 뤄신이 정제형 케이캡을 내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대웅제약의 펙수프라잔은 연내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과 2022년 국내 출시가 예상된다. 미국 뉴로가스트릭스, 중국 상하이 하이니 등과 기술이전 및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중남미를 포함해 1조 원 이상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뉴로가스트릭스는 내년 초 미국 3상에 돌입할 계획이다. 중국은 2022년 3상을 완료할 예정이다. 제일약품의 자회사 온코닉테라퓨틱스는 ‘JP-1366’의 국내 임상 3상을 신청한 상태다. 연내 유럽 3상도 신청할 계획이다.
[글로벌 시장 분석] 위식도역류질환의 대형 신인 ‘P-CAB’
한민수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