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이물산의 스마트 의료서비스 앱 초기화면
미쓰이물산의 스마트 의료서비스 앱 초기화면
일본 대표 종합상사인 미쓰이물산이 의료 인공지능(AI) 분야 선두 업체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병원이나 의료 업체 등 헬스케어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한 겁니다. 무려 4억 명에 달하는 글로벌 의료 데이터를 확보했습니다. 미쓰이물산은 이러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의료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는데요. 입원 비용 예측 시스템부터 질병의 중증화 가능성 분석 모델까지 만들어 낸 미쓰이물산의 '의료 AI' 야심을 짚어봅니다.

미쓰이물산이 의료 데이터를 보유한 병원과 기업에 투자한 건 2011년부터입니다. 미쓰이물산은 당시 말레이시아 병원 운영업체인 IHH헬스케어를 시작으로 여러 아시아 의료기관에 잇따라 출자했습니다. IHH는 현재 싱가포르와 인도 등 10여 개 국에서 약 80개의 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19년 투자한 미국 트라이넷X는 약 4억 명의 전자 진료카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이렇게 미쓰이물산이 10년간 의료·건강 영역에 투자한 금액은 총 4조6600억원에 이릅니다.

미쓰이물산이 데이터 확보에 공을 들인 이유는 향후 미래 의료 체계가 '병원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란 믿음 때문입니다. 현행 의료 체계에선 환자가 스스로 진료기록과 검사 결과를 관리할 수 없고 병원에게 일임하게 됩니다. 병원과 환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개인 맞춤형 의료 서비스가 구현될 수 없다는 판단입니다.

스가하라 마사토 미쓰이물산 의료 서비스 사업부 최고 운영 책임자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이 자신의 의료 데이터를 관리할 수 있다면 기록, 검사 결과, 처방 등을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질병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성공적인 의료 모델을 만들어 여러 국가에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미쓰이물산은 이렇게 확보한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해 혁신적인 의료 솔루션을 개발했습니다. IHH는 AI 스타트업과 제휴해 정교한 입원 비용 예측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환자가 입원 비용을 수술 전부터 파악할 수 있으면, 수술 비용 마련에 대한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IHH의 최대 주주인 미쓰이물산 주도하에 개발됐습니다.
미쓰이물산은 글로벌 의료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미쓰이가 투자한 IHH 건물.
미쓰이물산은 글로벌 의료데이터를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미쓰이가 투자한 IHH 건물.
IHH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의 건강 상태를 관리하고, 이를 기초로 한 증증화 예측 서비스도 개발했습니다. 환자는 일상 생활을 하면서 IHH가 제작한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자신의 건강 상태를 들여다볼 수 있는데요, 빅데이터로 고도화된 AI 기능을 통해 환자의 증상이 만약 악화할 위험이 커지면 앱 알람을 통해 '병원 방문이 필요하다'고 안내해 빠른 치유를 권유합니다.

중증화 예측 시스템은 IHH가 코로나19가 창궐한 지난해부터 실시하고 있는 원격 진료의 효율적인 운영도 지원합니다. 예약부터 진료, 약 처방 등을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입니다. 중증화 예측 서비스가 고도화된다면 경증자는 재택에서, 고위험자만 병원에 와서 진료를 받게 하는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합니다. 성과도 좋습니다. IHH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는 미쓰이물산이 출자한 뒤 약 4배로 커졌습니다.

미쓰이물산은 이 외에도 다양한 AI 의료 혁신체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회사 계열사인 의료정보 플랫폼 노보리(NOBORI)가 대표적입니다. 노보리는 지난해 3월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 등과 함께 코로나19 전문 원격 진단 영상 플랫폼을 선보였는데요, 알리바바의 클라우드를 활용해 CT 영상을 AI로 분석해 병원에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미쓰이물산은 아시아 외 지역에서도 의료 데이터 사업을 추진합니다. 트라이넷X란 회사를 통해섭니다. 이 회사는 미국을 포함해 30여개 국 175개 병원에 데이터를 수집하고 익명화해 제약회사와 병원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쓰이물산은 4분기 내로 트라이넷X의 데이터를 활용해 신약개발 지원 등의 사업으로 연결할 계획입니다. 스트레스 진단 서비스, 운동 재촉 앱 등 미쓰이물산이 개발한 질병 예방 서비스의 고도화에도 활용할 계획입니다.

전통적인 자원개발 상사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던 미쓰이물산. 이제는 바이오 헬스케어 사업을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고 있습니다. 미쓰이물산은 오는 2026년 3월엔 의료·건강 영역에서 1100억엔의 이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쓰이물산 외에도 미쓰비시상사, 이토추상사 등 여러 일본 대기업 종합상사 역시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 육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 현행법상 원격의료조차 불법인 우리나라 의료계가 분명히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배성수 IT과학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