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DARPA가 진짜 전략 무기가 되려면
미국의 DARPA(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국방고등연구계획국)하면 빠지지 않는 농담이 “외계인을 잡아 고문해 연구를 시키는 곳”이다. 꿈같은 기술들을 착착 개발해 우리의 일상(인터넷, GPS, 자율주행 등등)을 바꿔온 기관이다보니 이런 우스갯 소리가 나오려니 한다. 지난 25년간 미국에서 십수 개의 DARPA 과제를 수행하면서 진짜 외계인은 아직 구경도 못했다. 하지만 외계인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괴짜 천재 과학자들과 공학자들은 많이 보았다. 이들 옆에서 배운 경험과 지식은, 실패가 당연시되는 소위 '문샷' 연구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나가야 DARPA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 DARPA의 지원은 얻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됐다. (현재 필자는 DARPA의 지원으로 무인전투기를 위한 인공지능기술과 소형 드론을 이용한 통신중계망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서 국방과학기술委를 출범시키면서 소위 ‘한국형 DARPA (가칭 K-ARPA)’를 기획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또 비록 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것은 실패했지만 누리호 발사체 성공도 봤다. 한국의 국력도 이제는 DARPA같은 ‘실패를 가정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들이 일반화할 정도로 커진 듯 해 정말로 뿌듯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DARPA라는 이름이 주는 기술 수준 및 상징성, 그리고 지난 60년간 쌓여온 DARPA의 뿌리깊은 문화와,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의 질을 경험했기에, 단순히 DARPA의 구조를 벤치마킹하는 것으로는 한국형 DARPA를 성공적으로 만들고 안착시키기에는 너무 비싼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한 때 DARPA의 ‘꽃’ 또는 중심이라 하는 Program Manager (PM, 과제기획 및 책임자) 자리에 추천도 여러 번 받았다. 당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실패가 당연시되는 연구과제를 기획한 경험도 있다. 이런 ‘현장’ 중심 경험을 토대로 성공적인 한국형 DARPA에 필요한 요소들을 설명드리고자 한다.

첫 번째가 ‘한국형 DARPA’의 확실한 정의다. 한국형이라는 단어와 DARPA라는 단어가 아직까지는 어울리기 어려운 조합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형’하면 ‘추격 (따라가기)’, ‘빨리빨리’, ‘1등 벤치마킹’, ‘세계적 석학 모셔오기’, ‘보여주기식 연구평가’, ‘지나친 관료의 간섭’, ‘실패에 대한 노이로제’ 등등, DARPA가 상징하는 연구문화와는 거리가 먼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결론적으로 이 둘의 조합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이 사업을 기획하는 분들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 90%의 성공을 거둔 자랑스러운 누리호 발사의 예를 들어보자.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만에 하나 발사 자체가 실패했다면, 그래도 괜찮다라는 여론보다는 지난 12년동안 뭘했기에 아직도 발사체 하나 못 만드냐는 여론이 훨씬 더 많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발사 전부터 혹시 발사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실패라는 말 대신 ‘비정상 비행’이라는 생소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고 언론에게 미리 부탁할 이유도 없었고, 위성 안착을 못했다고 해서 과학자/기술자들이 눈물을 보였을 이유가 없다. 물론 우리 국민의 정서로 볼 때,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너무나 힘들었기에 완벽한 성공을 못 이루어 낸 진한 아쉬움이 눈물로 표현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개발 관계자들이 발사에 대한 성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당당하고 밝은 얼굴로 내년 5월 실험에서는 위성 안착까지 성공하겠다며 주먹을 더 불끈 쥐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한국형 DARPA’에 대한 기대도 그만큼 더 커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한 가지 긍정적인 방향이라면, 국방 부문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정부 주도의 ‘도전적 연구’프로그램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런 프로그램들의 성공과 실패가 하나하나 모아져 점진적으로 한국형 DARPA가 만들어지는 것이 한국의 연구문화에 더 맞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본다. 만일 ‘한국형 DARPA’라는 기획이 높은 부처간 장벽을 허물어 주고, 관료기획자 중심 벤치마킹에 기반한 ‘Top-Down’ 문화를 깨뜨려주고, ‘문샷’연구와는 맞지 않는 정량적 연구평가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주는 등 현재 한국 과학기술 연구 문화에 정말로 필요한 ‘운동’으로 쓰인다면, 여기에 쏟는 비용과 시간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게 아닌 DARPA를 벤치마킹해 이와 비슷한 형태의 도전적 연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라면, DARPA라는 상징성에 맞는 예산과 기획에 필요한 에너지와 비용을 차라리 이미 진행하고 있는 도전적 연구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안착과 경험의 축적에 쓰는 것이 오히려 한국형 DARPA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Bottom-up’ 노력이 받쳐주어야, DARPA 수준에 걸맞는 도전적 연구를 수행해 줄 연구인력과 회사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DARPA 연구과제에 상시 도전하고 수행하는 수많은 회사들과 연구소들, 소위 DARPA 생태계에서 ‘Bottom-Up’ 에 해당하는 요소를 짚어보고자 한다.

<류봉균 대표>
▶현 (주)세이프가드AI 창업자 겸 대표
▶현 EpiSys Science 창업자 겸 대표
▶전 보잉 팀장, 수석연구원, 및 개발책임자
▶미국 콜럼비아대 전자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