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나 목 부위에 암이 생긴 두경부암 환자는 항암제와 함께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치료 강도가 높은 만큼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대표적인 게 입안에 염증이 생기는 구강점막염이다. 밥을 못 먹을 정도로 큰 고통을 주지만 아직 이렇다 할 치료제는 나오지 않았다. 연 3조원(환자 수 17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 시장을 잡기 위해 여러 글로벌 기업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인 엔지켐생명과학이 ‘난공불락’으로 여겨져온 궤양성 구강점막염 치료제 개발에 한 발 더 다가서는 연구 결과를 확보했다. 미국 임상 2상 시험에서 효능을 입증한 것. 엔지켐생명과학은 기술이전을 추진한 뒤 내년 상반기 상용화를 위한 임상 3상에 나서기로 했다. 같은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미국 경쟁사가 임상 3상에서 실패하면서 시장 선점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엔지켐 '3조원 구강점막염 치료제' 선점 나서

“기술수출 후 내년 3상 돌입”

엔지켐생명과학은 “방사선 항암 치료 후 발생하는 구강점막염을 대상으로 한 ‘EC-18’의 미국 임상 2상이 성공했다”고 20일 발표했다. EC-18은 녹용에서 발견한 물질을 이 회사가 화학적으로 합성해 개발한 신약 후보물질이다. 몸속에 쌓이는 염증 유발 물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이 회사는 EC-18을 이용해 구강점막염, 호중구 감소증, 코로나19 등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구강점막염 적응증으로는 미국 21개 병원에서 환자 105명을 대상으로 임상한 뒤 최근 중간 결과를 확보했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중증 구강점막염 발생 기간을 주요 평가지표로 활용했다. 가짜약에선 이 기간이 13.5일에 달했지만 진짜약 투여군에선 발병 기간이 단 하루도 지속되지 않았다. 보조 지표로 활용한 중증 발생률은 45.5%로 가짜약(70%)보다 약 24.5%포인트 낮았다.

엔지켐생명과학은 이번 임상 성과를 바탕으로 해외 제약사와 논의 중인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하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신약 기술을 도입할 해외 제약사 주도로 내년 상반기 임상 3상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혁신신약 지정(BTD)을 신청하겠다”고 말했다.

BTD는 치료제가 없는 질환에 대한 신약 개발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다. BTD로 지정되면 제품 인허가 시 우선 심사권을 부여받아 상용화 속도를 앞당길 수 있다. 업계에선 늦어도 내년 초 BTD 지정이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쟁사는 임상 3상 문턱에서 좌절

엔지켐생명과학이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는 사이 앞서 있던 해외 제약사는 쓴잔을 마셨다. 같은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던 미국 갈레라테라퓨틱스는 “임상 3상에서 주요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주요 평가지표로 활용한 중증 구강점막염 발생률이 진짜약 64%, 가짜약 54%로 나타나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중증 발생 기간은 18일에서 8일로 줄였지만 엔지켐생명과학이 내놓은 결과(0일)보다 떨어진다.

엔지켐생명과학이 추진하고 있는 백신 위탁생산(CMO) 사업도 순항하고 있다. CMO 사업을 위해선 백신 생산시설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지난달 32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지난 8월 인도 자이더스캐딜라와 최대 7억 회분 규모의 코로나19 백신 공급 협약을 체결하는 등 ‘손님’도 확보했다. 자이더스캐딜라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DNA 기반 코로나19 백신 ‘자이코브디’ 개발사다. 자이더스캐딜라는 이달 미국 FDA에 자이코브디의 긴급사용승인(EUA)을 신청할 계획이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