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 분야 위험 인지에 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관점
위험은 가치를 위협하는 요소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 현대사회는 복잡하고 다원적이므로 다양한 가치와 신념이 존재한다. 따라서 가치와 신념의 차이에 따른 위험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다양하다. 그 결과 갈등은 불가피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에 따라 기술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지면서, 기술의 수용과정에서 위험의 불확실성은 훨씬 커졌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각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갈등은 첨예해지기 마련이다. 특히 바이오 분야는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생명과 관련된 안전성, 윤리, 존엄성 등의 갈등은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다. 필자는 2020년 10월부터 11월까지 일반 국민 529명(만 20세 이상 만 69세 이하)을 대상으로 4가지 바이오 분야의 정부 정책과 관련된 위험에 대한 국민의 인지 및 수용성을 확인했다. 그 후 2021년 1월부터 2월까지 전문가 41명(연구자 및 연구종사자 28명, 산업·협회 관계자 13명)을 대상으로 같은 설문을 해서 일반 국민과의 차별성을 확인해보고자 했다. 설문에 앞서 분야별 규제에 대한 개념, 위험, 편익, 국내외 동향 등에 대한 자료를 응답자에게 매우 충실하게 제공했다.

잔여배아 연구범위 확대

생명윤리법 제29조(잔여배아 연구)에 따르면 잔여배아를 이용하여 배아줄기세포를 수립할 수 있는 대상질환은 근이영양증, 헌팅턴병 등 희귀·난치 22종으로 지정돼 있다. 산업현장에는 초기 생명현상의 이해 등 배아 이용 연구에 큰 제약이 된다. 더불어 생명윤리법 시행령 제14조(체세포핵이식행위 또는 단성생식행위의 제한)에 의해 연구이용 동의를 받은 미성숙, 비정상 동결 잔여난자만 연구에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잔여배아는 유전자형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잔여배아에 한해서만 연구를 허용한다면 네거티브 규제전환이 이루어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연구범위와 관련하여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배아의 생명권 등 윤리적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잔여배아 연구범위 확대에 대한 심의를 몇 년째 유보하고 있다.

잔여배아 연구범위를 확대할 경우, 배아연구가 인간 생명권과 존엄성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전문가와 국민 모두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여성의 과배란 유도 및 자기결정권 침해 발생’과 ‘미래세대에 예상치 못한 질병이 발생’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우려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은 반면, 국민은 우려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잔여배아 연구범위 확대에 대해서 국민의 56.3%는 현재 규제 수준보다 완화해 희귀·난치 질환을 포함한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 연구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의 75%는 이에 더하여 제한없이 폭넓은 연구까지 가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실제 응용은 적절한 규제하에 진행하되, 연구는 폭넓게 허용해야 하며, 질병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연구 가능한 배아의 범위로는 국민의 40.1%가 현재 규제 수준보다 완화한 ‘연구이용 동의를 받은 난임치료 시술에 사용 후 남은 잔여 배아 및 난자’까지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의 75%는 이에 더하여 단계별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충분한 정보제공 및 투명한 절차하에 ‘연구이용 동의를 받은 채취 24시간 이내의 비동결 배아 및 난자’의 사용까지도 허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국민은 배아가 상업적으로 거래될 위험에 대해 가장 많이 우려하고 있었으며, 전문가 또한 국민의 우려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더불어 국민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 및 ‘미래세대에 예기치 못한 위험 발생’에 대해서도 높은 우려를 표했지만, 전문가는 충분히 제도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봤다.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 분야 위험 인지에 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관점
유전자 치료 연구범위 확대

생명윤리법 제47조(유전자 치료)에 따르면 암, 유전질환 등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키는 질병 혹은 다른 치료법과 비교하여 현저히 우수할 것으로 예측되는 치료 연구의 경우 유전자 치료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는 유전자 치료의 정의, 범위, 안전성, 윤리성 등의 문제가 불명확하며, 유전자 치료 안전성의 검토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해석되어 기술적 진보성을 검증할 기회를 얻기 힘들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유전자 치료 연구범위를 확대할 경우 ‘사회적 우생학 조장’, ‘후손의 유전적 변형 야기’에 대해 국민은 “우려된다”고 응답했지만, 전문가는 “우려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는 생식세포 유전자 변형이 없다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으므로, 이는 유전자 치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우려라고 덧붙였다.

유전자 치료 연구범위 확대에 대해서 국민은 현재규제 수준보다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질병까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39.7%로 가장 많았다. 이에 더해 전문가의 58.3%는 “질병의 종류나 대체치료법의 유무와 관계없이 폭넓은 연구까지 가능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연구범위는 충분히 확대하되, 치료 등 임상 도입은 현재보다 엄격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국민은 빈부격차에 따른 치료의 양극화가 발생할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었으며, 이에 대해 전문가의 입장도 동일했다. 더불어 국민은 ‘맞춤형 아기 탄생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유전자 편집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며, 제도 등 보완으로 관리 가능하다고 응답했다.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 분야 위험 인지에 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관점
원격의료 범위 확대

원격의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필요성이 더욱 증가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규제개선의 가속화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20년 2월 한시적으로 전화상담과 처방을 허용했으며, 약 3개월 동안 국내 3853개 의료기관에서 약 26만 건의 전화상담 및 처방을 실시했다. 이후 정부는 5월 디지털 기반 비대면 의료시범사업을 확대하기로 발표했지만, 의협 등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으로 입장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국민과 전문가 모두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가장 크게 했다.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한 오진 발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국민이 우려한다고 응답한 반면 가장 많은 전문가는 우려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환자 대상 원격의료 범위에 대해서 국민은 현재 규제 수준보다 완화한 “초진은 대면진료로 하고 재진부터 원격진료 가능해야 한다”는 응답이 45.2%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는 이에 더해서 “원격진료 후 약 처방 발급 후 약 배송 가능까지 가능해야 한다”는 응답이 38.9%로 가장 많았다.

전문가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발생할 것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었다. 국민도 이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국민은 ‘초진대면-재진원격’의 소극적인 원격의료 시행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원격진료 방안을 선호했다.

바이오·의료 데이터(정보) 활용

4차 산업혁명시대 데이터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대규모의 데이터가 축적돼 있어 이를 잘 활용한다면 바이오 분야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개인정보 유출사고 등으로 국민은 개인정보 프라이버시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바이오·의료 데이터의 경우 개인의 생명 및 건강에 관한 민감한 데이터이므로 보다 심도 있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바이오·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사생활 침해 가능성’, ‘사회적 차별(보험가입 거부, 고용 불이익 등)’에서 국민은 그렇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며, 전문가는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대다수의 국민과 전문가 모두 가명 처리된 데이터를 의료적 활용, 공익적 기록 보존, 통계작성 목적, 과학적 연구에 활용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가명 처리된 정보의 산업적 활용에 대해서는 51.4%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표명했으며, 87.5%의 전문가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더불어 가명정보 처리 시 당사자의 서면동의 여부에 관련한 질문에서 국민은 필요하다는 입장이 78.6%로 가장 많았으며, 전문가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 62.5%로 가장 높았다.

국민은 바이오·의료 데이터의 유출로 인해 사생활 침해가 발생할 것에 대해 가장 우려했다. 이 외에도 바이오·의료 데이터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다른 분야보다 대체로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 마련 및 보안유지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국민과 전문가는 가명 처리된 데이터 활용에 있어, 서면동의 여부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설문결과를 종합해보면, 보다 적극적인 연구와 실험 및 도전적인 혁신의 시도에 수반되는 대부분의 위험에 대해 국민은 꽤 우려한다고 응답한 반면, 전문가는 별로 우려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위험에 대한 대중의 문해력(literacy), 정서적 편견(emotional prejudice)과 두려움, 정부 신뢰 등 다양한 이유로 전문가와 국민의 우려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전문가의 편견과 편향된 확신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에게 과학적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하며 정확한 위험 전달, 위험 부담 공유 메커니즘을 수립해야 한다. 한편 국민의 우려에 대한 전문가의 이해와 공감 및 배려를 도모하는 소통의 장도 필요하다. 쌍방향 내지는 다방향 의사소통, 모니터링, 피드백이 가능한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리스크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과연 이를 해낼 수 있는가. 정부의 역량이 바이오 리스크에 대한 국민의 우려, 나아가 산업 발전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는 상황이다.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 분야 위험 인지에 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관점
<저자 소개>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바이오 분야 위험 인지에 관한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관점
김태윤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0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