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업체 버텍스 파마슈티컬즈(Vertex Pharmaceuticals)가 줄기세포치료제로 1형 당뇨를 완치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버텍스 파마슈티컬즈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췌도세포 대체 요법 후보물질(VX-880)의 임상 1상에 참여한 첫 환자를 90일간 관찰한 결과, 이 환자가 하루 동안 필요로 하는 인슐린의 양이 91% 감소했다고 18일(현지 시간) 발표했다. 매일 인슐린을 맞아야 했던 환자가 더 적은 양의 인슐린을 맞는 것으로도 충분했다는 얘기다. 버텍스의 목표는 1형 당뇨 환자가 더 이상 매일 인슐린을 맞지 않아도 되는 단계까지 치료제의 효과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1형 당뇨는 면역세포가 인슐린을 만드는 랑게르한스섬 베타(β) 세포를 공격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혈당 흡수 및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슐린의 자체 생성이 어렵기 때문에 1형 당뇨 환자는 평생 인슐린을 투여하거나 뇌사자로부터 췌장을 이식받아야 했다.

버텍스가 임상을 진행 중인 VX-880은 2019년 9억5000만 달러에 인수한 세마 테라퓨틱스의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이다. 세마 테라퓨틱스는 미국 하버드연구소의 유명 과학자인 더글라스 멜튼 교수가 설립했다. 멜튼 교수는 자신의 아들과 딸이 1형 당뇨병을 진단받자 VX-880을 고안했다.

버텍스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환자 17명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 중 첫 환자에게서 이번 결과를 얻었다. 버텍스 관계자는 “안전성과 독성을 확인하기 위해 예상 투여량의 절반만 투여한 것으로도 고무적인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34유닛의 인슐린을 투여받아야 했던 이 환자는 VX-880을 투여받은 뒤 하루 3유닛만으로도 혈당 조절이 가능해졌다.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나지 않았다.

VX-880은 줄기세포를 분화시켜 얻은 랑게르한스섬 베타 세포로 구성됐다. 버텍스는 투여 후 90일간 환자의 체내에서 정상적으로 인슐린을 분비했을 뿐만 아니라 인슐린의 적정량을 조절하는 기능까지 확인했다. 이전에도 환자에게 랑게르한스섬 베타 세포를 이식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식한 세포가 체내에서 장기간 생존하지 못해 실패했다.

국내 줄기세포 분야 연구자인 김정범 UNIST 생명과학부 교수는 “아직 첫 환자에게서 얻은 결과여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긴 어렵지만, 투여한 세포가 90일 동안 죽지 않고 생존해 기능을 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버텍스는 베타 세포뿐 아니라 인슐린 분비 등에 관여하는 다른 세포들을 섬(islet) 단위로 묶어 환자에게 투여하는 임상을 FDA에 신청할 계획이다. 내년 시작이 목표다. 또 이번 임상에서 VX-880과 함께 투여한 면역억제제를 배제하는 방법 또한 고안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