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TT의 미판매 매장 특산품 전시 모습.
NTT의 미판매 매장 특산품 전시 모습.
지난 7월 일본 시부야엔 색다른 콘셉트의 휴대폰 소매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일본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인 NTT그룹의 계열사 NTT동일본(동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이 운영하는 이 매장에선 휴대폰을 판매하지 않습니다. 대신 마치 슈퍼처럼 일본 전역 특산품 3000여 종이 진열돼 있습니다.

이 매장의 명칭은 ‘미판매 소매점’입니다. 이름대로 휴대폰은 물론 진열한 특산품도 판매하지 않습니다. 고객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고객은 매장에서 특산품을 마음껏 둘러볼 수 있고, 태블릿PC를 통해 원격으로 상품 담당자에게 무엇이든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스마트폰으로 NTT동일본 쇼핑몰 홈페이지에 접속해 상품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NTT동일본은 미판매 소매점을 왜 열었을까요? 바로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섭니다. 회사는 데이터를 분석해 이를 유의미한 정보로 가공한 뒤 자사 매장에 입점한 특산물 기업에 판매합니다. NTT동일본은 해당 매장에 방문하는 고객의 데이터를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분석합니다. 매장 내 비치된 수십 대의 AI 카메라가 고객이 특산품 매대마다 몇 분 정도 머물렀는지, 상품에 실제로 손을 뻗으며 관심을 드러냈는지 등을 분석합니다.

세계적 통신회사가 매장에서 스마트폰을 모두 없앤 진짜 이유
NTT동일본은 매장 내 특산물에 관심을 보이는 고객과 담당자의 대화를 분석하고, 매장 체류 시간 등을 자동으로 집계합니다. 고객 개인의 특성도 분석합니다. 태블릿을 사용해 원격으로 상담을 진행하는 담당자와의 대화를 자동으로 저장해 AI 기술을 통해 데이터화합니다. 이로써 어떤 성별, 어떤 나이대의 고객이 어느 상품에 흥미를 느끼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이죠.

NTT동일본은 이렇게 확보한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가공한 뒤 이를 매장에 입점한 기업에 판매합니다.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일반 매장과 달리 기업에 데이터를 판매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죠. 미판매 소매점은 개소 이후 큰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판매 소매점엔 10일간 약 1만 명이 방문했습니다.

데이터는 미판매 소매점에 입점한 기업의 매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두유 쿠키를 판매하는 두부 회사에선 NTT동일본의 데이터를 활용해 매출액이 한 달 만에 약 20% 늘었습니다. 이 회사는 두유 쿠키의 잠재 소비자군이 주로 주부나 고령자일 것으로 예측하고 사업을 진행해 왔지만, NTT동일본의 데이터 분석을 보니 두유 쿠키는 20대에게도 수요가 높았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두유 쿠키 패키지를 개량하자 판매량이 늘었다는 설명입니다.

미판매 소매점은 시부야역 근방에 위치해 있지만, 전국 17개의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에 있는 3000여 개의 통신국을 활용해 고도화된 데이터 집계 및 분석이 가능합니다. NTT동일본 측은 이러한 소비자 데이터 분석을 활용해 고객 맞춤형 상품을 자동으로 제안하는 할인 쿠폰 발행 등 사업 확장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일본 이통사 1위 사업자인 NTT동일본이 이러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로벌 통신업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탈(脫)통신’의 일환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합니다. 기존 휴대전화, 인터넷 등과 같은 유무선 사업에서 벗어나 사업 다각화를 꾀하던 도중, 가장 잘할 수 있는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낸 것입니다.

NTT동일본은 향후 상품 수요를 예측해 입점 기업의 제품 생산 계획 등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여기에 커넥티드 커머스와 연계해 향후 10년 안에 매장을 2000여 곳으로 늘리겠다는 게 회사 측의 목표입니다. 일본 매체 닛케이아시아는 “휴대전화 시장이 점차 축소되는 가운데 NTT동일본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등 탈통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성수 IT과학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