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을 체내에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투여 경로, 즉 약물의 형태와 복용 방식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한다. 그렇기에 약의 성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제형’이다. 우리 몸의 여러 가지 대사반응을 고려해 다양한 투여 경로로 약물을 주입하면, 같은 약이라도 안전성과 효능을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Cover Story - OVERVIEW] 먹고 붙이고 주사하고…투여 경로에 따른 약물전달시스템
약물의 제형은 질환의 종류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정해진다. 약물전달 시스템(DDS)을 투여 경로에 따라 구분하면 경구제형, 주사제형, 패치제형, 임플란트제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복용 쉬운 먹는 약 개발로 치료 효과 높인다

가장 보편적인 투여 방법은 입으로 먹는(경구) 제형이다. 흔히 알고 있는 알약이다. 알약은 크게 정제(태블릿)와 캡슐제로 구분된다. 정제는 고형화된 약제를 코팅해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체내에서 녹으면서 약효를 낸다. 캡슐제는 약을 포장한 캡슐이 위에서 위산에 의해 녹으면서 내부 약물이 체내에 흡수되도록 고안됐다. 알약을 삼키지 못하는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가루약이나 액상(시럽) 형태로 약 물을 경구 투여할 수도 있다.

먹는 약은 생산이 쉽고 복용이 간편하지만, 약물을 필요한 부분에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먹는 약은 식도와 위, 십이지장을 거쳐 장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단백질 성분이 소화 효소에 의해 분해되기 때문이다. 이에 단백질로 만들어진 바이오의 약품은 경구용으로 만들기가 어려워, 보통 주사제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내외 제약사들이 기존 주사제 약물을 경구제로 바꾸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환자가 거부감 없이 편리하게 약물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복용 방법이 쉽고 흡수 효과가 빠른 것이 의약품의 효과나 안전성만큼 치료 효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뇨 치료제 ‘인슐린’을 예로 들 수 있다. 인슐린은 생체 내에서 혈당을 낮추는 대표적인 당뇨 치료 약물이다. 당뇨 환자는 혈당 관리를 위해 매일 혈당을 확인하고 인슐린을 복용해야 하는데, 인슐린은 일반적으로 피하(SC)주사로 투여된다. 환자가 매일같이 바늘에 찔리거나 지속해서 주사를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에 많은 제약사가 먹는 당뇨 치료제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먹는 인슐린 개발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현재 가장 앞선 제품은 이스라엘 제약사 오라메드(Oramed)의 ‘ORMD-0801’이다. 두 가지 임상 3상을 동시 진행 중이다. 노보노디스크는 ‘I338’이라는 경구용 인슐린을 개발해 임상 2상까지 거쳤지만, 생체이용률이 너무 낮아 상업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개발을 포기했다.

국내에서는 삼천당제약이 ‘에스패스(S-PASS)’ 기술을 활용해 경구용 인슐린 ‘SCD0503’을 개발하고 있다. 약물이 장에 도달하기 전에 위나 십이지장 등 위장관(GI) 상부에서부터 흡수를 시작해 효소에 의해 분해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약효 발현시간도 비교적 짧고 생체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삼천당제약은 에스패스를 활용해 먹는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GLP-1)도 개발하고 있다. GLP-1 유사체 리라글루타이드 성분을 이용해 비만치료제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삭센다를 경구용으로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제일약품도 먹는 인슐린을 개발 중이다. 유럽에서 경구용 당뇨 치료제 ‘JP-2266’에 대한 임상 1상을 진행 중으로, 인슐린을 대체할 수 있는 경구용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목표다.

주사 항암제를 먹는 약으로 바꾸는 개발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경구제 플랫폼 기술 ‘오라스커버리(ORASCOVERY)’를 활용해 경구용 항암제를 개발하고 있다. 항암제는 통상 정맥(IV)주사로 처방된다. 항암제를 경구로 투여하면 위장관 상피세포에 존재하는 P-당단백(P-glycoprotein)의 약물 배출펌프 작용에 의해 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라스커버리는 신규 P-당단백 저해제 ‘엔서퀴다(encequidar, HM30181A)’를 경구흡수 증진제로 결합한다. 위장관에서 P-당단백에 의한 약물 배출 작용을 차단해 흡수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구 흡수율을 개선하고 부작용은 줄인다는 설명이다. 이 기술은 미국 아테넥스에 이전됐다. 기존 항암 주사제 파클리탁셀을 먹는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로 바꾼 ‘오락솔’을 개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도세탁셀, 이리노테칸, 토포테칸 및 에리블린 등 항암 주사제에 오라스커버리 기술을 접목, 이를 먹는 약으로 바꾸는 항암 신약 파이프라인 5종이 임상을 진행 중이다.

세계 최초 도네페질 패치제 출시 임박

지난해 국내 일반의약품(OTC) 시장에서 판매 1위를 차지한 제품은 한독의 ‘케토톱’이다. 420억 원 이상의 매출을 냈다. 케토톱은 우리가 흔히 ‘파스’라 부르는 패치 제형이다. 패치제는 피부에 붙이는 경피흡수제제(TDS)다. 패치 내부와 피부와 접하는 접착층 사이에 약물의 방출 속도를 제어하는 막(RCM)을 배치해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고 피부로 흡수될 수 있도록 설계된 약물전달 제형이다.

패치제는 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먹는 약과 달리, 붙이기만 하면 약효를 낼 수 있어 약물을 투약하기 매우 편하다. 또 간을 거치지 않아 생체이용률도 높다. 장시간 연속투여가 가능하고, 제제 측면에서 흡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 패치제 개발에서 가장 주목도가 높은 약물이 ‘도네페질 패치제’다. 기존 먹는 도네페질을 붙이는 제형으로 바꾼 신약이다. 도네페질은 치매 치료제 중 가장 많이 처방되는데, 현재까지는 경구제만 상용화됐다.

그러나 치매 환자들은 하루에 한 번 이상 약을 복용해야 하는 데다, 질병의 특성상 환자들이 약물 복용 시간과 횟수를 자주 잊어 복약순응도가 낮다. 또 알약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장애 환자도 있다. 이에 피부에 부착하는 것만으로 약물을 투여하는 도네페질 패치제에 대한 수요가 큰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아이큐어가 셀트리온과 함께 세계 최초 ‘도네페질’ 패치제형을 개발해 상업화를 앞두고 있다. 주 2회 부착하는 도네페질 패치제는 하루 1회 복용해야 하는 경구용 치료제보다 환자의 복약순응도를 개선하고 편의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에 출시된 ‘리바스티그민’ 성분의 치매 패치제가 하루에 한 번 붙이는 것보다도 부착 주기를 줄였다. 현재 대웅제약과 동아에스티도 주 1회 부착하는 도네페질 패치제를 개발하고 있다.

신신제약은 최근 패치형 과민성 방광 증상 치료제 ‘UIP620’의 임상 1상 결과 보고서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했다. 4일에 한 번 부착하는 방식의 패치제다. 회사는 1상에서 대조약에 비해 초기 흡수량이 많아 치료 효과가 나오는 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또 체내에서 충분한 혈중농도가 지속될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니들(미세바늘) 기술도 주사제나 경구제 의약품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마이크로니들은 두께 1~100마이크로 미터(㎛·1㎛은 1000분의 1mm)의 아주 얇은 바늘로 우리 몸에 약물을 전달하는 경피약물 전달 시스템(TDDS)이다. 피부 각질층을 지나 표피층에 유효 성분을 전달한다. 신경 말단이 존재하는 진피층까지는 닿지 않아 아프지 않은 주사다.

마이크로니들 역시 먹는 약이 간에서 대사되는 것과 달리 높은 생체이용률을 유지할 수 있다. 주사기로 인한 통증과 환자의 거부감을 줄이고, 경피흡수제 중 도포식 제형에 비해 약물전달 효율이 높다는 것도 특징이다. 거대 분자 물질 전달도 가능하다. 국내에서는 라파스, 쿼드메디슨, 신신제약, 스몰랩 등이 의약품을 마이크로니들로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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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성 높이고 특허 수명 늘리는 SC제형 바이오의약품 증가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 비중이 늘면서 SC주사제형 개발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바이오의약품은 체내 소화기관에서 펩타이드로 분해될 가능성이 높아 먹는 방식으로는 투여할 수 없다. 이에 대부분 IV 주사제형으로 개발된다.

최근에는 IV주사제형의 의약품을 SC주사제형으로 변경하는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SC주사제형은 환자가 병원에 갈 필요 없이 스스로 투여할 수 있고 투여 시간도 짧아 편의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존 IV주사제형은 정맥에 약물을 주사하기 위해 병원에서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시간도 통상적으로 2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 같은 이점 때문에 SC주사제형 개발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베스트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FDA의 승인을 받은 바이오 신약들을 제형별로 분류하면, 2010년 초반 15~20% 수준이던 SC주사제형의 비중은 2015년 이후부터 30~40%대로 늘었다.

하지만 SC주사제형으로 바꾸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있다. 주사할 수 있는 약물의 양이 IV 주사제형에 비해 적다는 것이다. 이에 적은 양으로도 IV주사제형과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약물의 농도가 높아야 한다. 하지만 약물의 농도가 높을수록 약물끼리 엉켜 붙는 문제가 생긴다. 약물이 엉키면서 단백질 구조가 변하고 약효가 없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성분명 인플릭시맙)를 최 초의 SC주사제형으로 판매 허가받으면서 이를 극복했다. 약물을 고농도화 시키면서도 엉키지 않게 하는 기술을 활용했다. 셀트리온은 IV주사로 놓는 램시마를 SC주사제형으로 바꿔, 지난해 368억 원의 매출을 냈다.

SC주사제형의 개발의 또 다른 난관은 사람의 피부 아래 피하조직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테오젠은 피하조직의 히알루론을 분해해 혈액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SC주사 변환 기술 ‘하이브로자임’을 갖고 있다. 미국 할로자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알테오젠과 할로자임은 현재 SC주사로 제형을 바꾸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수요를 나눠 갖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렇게 제형을 변경한 개량 신약(바이오베터)의 이점이 있다. 기존 신약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판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통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가격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60~70% 정도로 책정되는데, 바이오베터는 바이오시밀러의 2~4배 정도의 가격을 받는다.

또 제품의 특허 수명을 늘려 특허 만료로 인한 타사의 시장 진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도 SC주사제형 변경의 장점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만료와 상관없이 시장에 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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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나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