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분석] 조 단위 딜 잇따르는 신규 면역관문 ‘CD47’
화이자는 지난 8월 23일(현지시간) 캐나다 신약 벤처기업 트릴리움 테라퓨틱스를 22억6000만 달러(약 2조6200억 원)에 인수키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화이자는 지난해 2500만 달러의 지분투자를 진행하며 트릴리움에 눈독을 들여왔다.

이 소식에 이날 미국 나스닥시장에서 트릴리움의 주가는 188% 폭등한 17.5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화이자는 트릴리움을 주당 18.5달러에 인수한다. 지난 60일 평균 가격에 118%의 웃돈(프리미엄)을 붙인 가격이다.

이번 인수로 화이자는 트릴리움의 CD47 억제제 파이프라인인 ‘TTI-621’과 ‘TTI-622’를 확보했다. CD47은 암세포가 선천면역세포인 대식세포(macrophage)로부터 잡아먹히는 것을 회피할 때 쓰이는 단백질이다. 암세포에 발현된 CD47이 대식세포의 SIRPα와 만나면 ‘날 먹지 마(Do not eat me)’라는 신호를 대식세포에 보낸다. 정상세포인 것으로 착각하게 해 대식세포의 식균 작용을 피하는 것이다. 때문에 항체로 CD47을 억제하면 항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TTI-621과 TTI-622는 혈액암과 고형암 등 7개 암종에 대해 임상 1b·2상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임상에서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 말초 T세포 림프종, 소포림프종 등에서 단독요법의 효과를 입증했다. 두 파이프라인은 의미 있는 단독요법 효능 및 완전관해를 확인한 유일한 CD47 억제 항체다. 특히 CD47 억제제의 대표적 부작용인 빈혈 사례가 적었다.

CD47은 혈액암을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는데 이는 2000년대 혈액암에서 CD47이 과발현된다는 연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세계에서 전체 암 환자의 6%에 해당하는 100만 명이 혈액암 진단을 받았고, 70만 명 이상이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최근에는 혈액암 외에도 고형암 등 다양한 암에서도 CD47이 과발현된다는 연구를 통해 고형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이 증가하고 있다.

골칫거리 ‘cold tumor’

면역항암제는 1세대 세포독성 항암제의 정상세포 공격, 2세대 표적항암제의 내성 부작용을 극복하고 수많은 완치 사례를 통해 3세대 항암제로 자리잡았다. 특히 면역항암제 중 면역관문억제제의 성장이 가파르다. 면역관문억제제는 항체의약품이다. 항체의약품은 2세대 표적항암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개발돼왔다. 때문에 생산공정(CMC) 등이 발전해 있었고, 성공적인 상업화가 가능했다.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항암제 시장은 연평균 9~12% 성장해 2025년 2730억 달러(31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면역항암제가 20%의 비중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은 세계 면역관문억제제 시장이 2019년 243억 달러에서 2025년 532억5000만 달러(62조 원)로 연평균 14% 성장할 것으로 봤다.

면역관문억제제의 장점은 사람 몸속의 면역반응을 이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적다는 것이다. 또 반응하는 환자에 있어서 긴 생존기간을 보여준다. 다만 면역관문억제제는 암 환자의 20~30%에서만 효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현재 상용화된 PD-1(키트루다, 옵디보), PD-L1(티센트릭, 바벤시오, 임핀지), CTLA4(여보이) 항체치료제는 후천면역세포인 T세포의 면역반응을 정상화시키는 기전이다. 이들에 반응하지 않는 환자가 많은 것은 ‘암세포 특이적인 항원이 T세포에 전달되지 않았다’가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암세포에 대한 정보(항원)가 부족한 T세포는 암세포 살상능력이 없기 때문에, 면역항암제를 투여해도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선천면역세포인 대식세포는 암세포 식균 작용을 통해 T세포에게 암세포에 대한 정보를 제시한다. 선천면역과 후천면역을 연결시켜 항암면역반응을 활성화시킨다. 암세포는 CD47로 항암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면역치료가 어려운 ‘차가운 종양(cold tumor)’이 된다. 전체 고형암 환자의 70% 이상이 이에 해당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차가운 종양을 공략하기 위해 CD47 억제제 개발에 나선 이유다.

화이자에 앞서 길리어드는 지난해 CD47 억제제를 개발하는 신약 벤처 포티세븐을 49억 달러에 인수했다. 애브비는 중국 벤처기업 아이맵으로부터 중화권 이외 지역에 대한 CD47 억제제 권리를 1억8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파멥신·랩지노믹스, CD47 억제제 개발

조 단위 글로벌 ‘딜’이 이어짐에 따라 국내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제넥신은 아이맵 지분 4.8%를 보유 중이다. 유한양행과 미국 소렌토테라퓨틱스의 합작사인 이뮨온시아는 올 3월 CD47 항체 ‘IMC-002’의 중화권 권리를 중국 3D메디슨에 기술이전했다. 총 4억7050만 달러 규모다. 유한양행은 이뮨온시아 지분 51%를 갖고 있다. IMC-002는 2세대 CD47 항체로, 미국에서 고형암과 림프종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파멥신은 전임상 단계에서 PD-L1과 CD47을 동시에 표적하는 이중항체를 개발 중이다. 올 4분기 동물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특허를 출원할 계획이다. 랩지노믹스는 시프트바이오로부터 페리틴 기반 CD47 표적 면역관문억제제 후보인 ‘LGP-S01’을 사들였다.

이들이 극복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CD47 억제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CD47은 암세포뿐 아니라 적혈구에서도 많이 발현된다. CD47 항체가 적혈구에 붙게 되면 대식세포가 적혈구를 잡아먹기 때문에 빈혈이나 적혈구가 엉겨붙는 혈구응집이 발생하는 것이다. 임상 3상 중인 길리어드의 매그롤리맙의 경우 대식세포의 식균 작용으로 인해 이 같은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파멥신은 결합활성(avidity)을 달리해 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PD-L1의 결합활성을 CD47보다 100배 이상 높여 이중항체가 적혈구보다 암세포에 더 잘 붙도록 하는 것이다. LGP-S01은 빈혈 및 혈구응집 발생 여부 검증 결과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고 랩지노믹스 측은 전했다. 연내 비임상에 착수하고, 내년 하반기 임상 진입을 목표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분석] 조 단위 딜 잇따르는 신규 면역관문 ‘CD47’
한민수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