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멸종 위기에서 살아남은 레거시 기업들
미국 경제 매거진 포춘(Fortune)은 매년 미국 및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 순위를 선정한다. 2021년 포춘 선정 기업의 매출은 미국 경제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순위는 기업의 강점, 규모, 국제 경쟁력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기업의 흥망성쇠를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되고 있다.

10년 전인 2011년 포춘 선정 기업을 살펴보면 상위권을 차지했던 GE, 쉐브론, 웰스파고와 같은 제조, 정유, 금융 기업들은 대부분 순위가 큰 폭으로 하락하거나 시장에서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아마존,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 소위 ‘디지털 약탈자’로 불리는 ICT 기업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그렇다고 전통적 기업들이 손 놓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2021년 포춘 기업 30위권을 보면 18개 기업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존재하는데, 특히 월마트, 나이키 등 전통적 강자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DX로 빠르게 대응해 혁신에 성공했는데, DX의 중심에는 AI가 큰 역할을 하였다.

AI 최적화- 월마트의 ‘데이터 레이크’ 전략

아마존의 공세로 메이시스, 시어스, JC페니, 니만마커스 등 전통의 유통 기업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여전히 포춘 US 기업 1위는 설립 60년이 된 유통계의 공룡 기업 월마트이다.

2020년도 월마트 매출은 전년 대비 6.8% 증가한 5591억달러(626조20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아마존에 맞서 강력한 DX 전략으로 턴어라운드에 성공했다. 2020년 4분기 인터넷 상거래의 매출액은 코로나 영향으로 전년대비 69%나 증가했고, 전체 매출 비중은 20%에 육박할 정도로 e커머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월마트의 성공은 발빠르게 추진한 AI 기반의 ‘디지털 퍼스트’ 전략에 기인한다. 월마트의 AI 혁신 전략 성공 포인트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닌 내부 인프라와 조직 문화까지 근본부터 뜯어 고쳤다는 점에 있다.

2016년 e커머스 기업 제트닷컴 인수는 월마트 DX 전략의 중대 변곡점으로, 이를 통해 단기간에 전문인력, 핵심 기술, 스타트업 문화, 밀레니얼 고객 등을 확보하며 DX 기업으로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제트닷컴 CEO였던 마크 로어의 내부 영입으로 월마트 직원들에게 DX 전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각인시켰고, 실행에 필요한 전문인력과 기술 역량을 보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월마트는 AI의 성공적 활용을 위해서 ‘데이터 레이크(Data Lake)’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 아칸소주 벤톤빌 본사 내에 세계 최대 프라이빗 클라우드 센터인 ‘데이터 카페’를 구축했다. 세계 28개국 2만여 개 매장에 매주 2억 6500만 명 이상의 소비자가 방문하고, 여기서 발생되는 데이터의 양만도 40PB(페타바이트, 1PB=1024테라바이트)에 달한다. 머신러닝 기반의 데이터 카페는 이 데이터들을 시간당 2.5페타바이트로 처리한다. 데이터 카페에서는 매장 데이터를 비롯, 기상 데이터, 경제 지표, 통신 데이터, 소셜미디어 데이터, 휘발유 가격, 월마트 매장 주변 사건 등 2백여 종류의 트랜잭션 데이터를 분석한다.

월마트는 재무/물류/MD 등 백엔드 조직을 통합한 ‘One 월마트’를 구축해 최고 경영진의 강력한 메시지를 그룹 전체에 전달하고 업무 효율화를 제고하였는데, 그 핵심 역할은 데이터 카페가 수행한다.
데이터 카페에는 신속한 비즈니스 의사 결정을 돕는 ‘Business Intelligence Tool’ 솔루션이 있는데,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치고 시각화 할 수 있는 200개 이상의 내외부 데이터 스트림(데이터열)이 존재한다. 이를 통해 평균 2~3주 걸리던 복잡한 비즈니스 문제가 단 20~30분만에 해결되었다. 월마트 경영진들은 통합 위성통신망을 이용해 데이터 카페에 접속해 언제 어디서든 전세계 매장의 업데이트 내용을 확인하고, 즉시 화상/음성회의로 지시사항을 전달할 수 있다.

또한 Retail Link(실시간 재고 상황 파악), ZIP Schedules(슈퍼센터/네이버후드 매장 직원들의 통합 근태관리) 등 데이터 카페 기반의 다양한 정보시스템으로 기업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2020년에는 엔비디아와 제휴해 AI 예측 알고리즘 역량을 강화하여 기존 1주일 단위 예측에서 12시간 단위로 예측 정확도를 향상시켰다.

AI를 활용한 고객 라이프로그 데이터화

나이키는 2016년부터 의사결정 및 제품생산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시켜 고객 니즈 제품을 빠르게 출시하고, 온오프라인 채널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고객 경험을 극대화시키는 D2C(Direct to Consumer)전략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2018년 데이터 분석 기업 조디악과 AI 기반 맞춤형 신발제작 기업 인버텍스, 2019년 AI 기반 수요예측 및 재고관리 분석 기업 셀렉트, 그리고 2021년에는 데이터통합 플랫폼 스타트업 데이터로그 등을 인수했다.

나이키 AIDX 전략의 핵심은 고객 라이프로그의 데이터베이스화를 통한 초개인화된 맞춤형 서비스 및 생활과 밀착된 고객경험의 제공이다. 신발, 스포츠웨어, 웨어러블 등 고객접점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통합/분석한 후, 이 결과를 서비스 및 제품에 녹여 다시 고객접점으로 보내 고객이 직접 그 가치를 경험하게 한다. 이를 통해 온라인 모바일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의 고객들은 나이키에 락인(Lock-in)되는 효과를 얻는다.

딥러닝 기반의 이미지 분석 기술을 활용해 고객의 발 모양과 사이즈에 딱 맞는 신발을 추천하는 AI 서비스 '나이키 핏'은 앱 카메라로 소비자의 발을 스캔한 후, 신발 사이즈와 관련 있는 13개의 특징을 분석해 신발 사이즈를 추천한다. 음성 제어와 맞춤형 기능을 제공하는 '나이키 어댑트 오토 맥스’는 소비자가 항상 똑같은 착용감을 느낄 수 있도록 신발을 착용하고 앱을 통해 원하는 모드를 설정하면 언제든 최적의 상태로 신발을 조정할 수 있다.

고객데이터를 활용한 AIDX 추진으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나이키의 실적은 크게 상승하였는데, 2020년 D2C 매출 비중이 35%로 증가해 2023년까지 총 매출의 30%까지 D2C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가 코로나로 인해 3년이나 앞당겨졌다.

나이키는 1위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접점에서의 경험을 데이터화 하여 끊김 없는 고객경험을 제공해 새로운 마켓플레이스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현재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투자와 혁신으로 AIDX를 추진한 나이키의 사례는 많은 전통 기업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AIDX 성공의 트리거는 경영진의 빠른 판단

공룡 기업 월마트와 나이키의 AIDX 성공 트리거는 고객데이터에 기반한 경영진의 빠른 판단이다. 센서에서 데이터 레이크까지 전체 플로우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합 처리하는 환경 구축을 통해 경영진은 전 세계 어디서든 플랫폼에 접속해 상황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AI에 기반한 최고경영진의 의사결정으로 사업의 스피드는 더욱 빨라졌다.

두번째 혁신은 우수한 인재 확보, 내부 인프라 구축, 조직 문화 변화이다. 월마트와 나이키는 AI 스타트업 인수 및 지분투자 등을 통해 기술, 인재, 인프라, 조직 문화까지 흡수하여 완전한 체질 개선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새로운 고객의 확보이다. 고객접점에서 데이터를 수집해 AI로 분석한 후, 이를 맞춤화된 제품 및 서비스로 제공함으로써 온라인 모바일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의 고객들을 생태계 내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이처럼 고객중심 AIDX를 통해 디지털 환경 변화에서 살아남은 공룡 기업들이 지금과 같은 혁신을 계속한다면 10년 후에도 포춘 순위에 이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김재필 KT경제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