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이오산업의 시작은 1980년대였다. LG화학 등 대기업이 석박사급 연구원을 키워 신약을 개발하던 게 시초다. 특히 LG화학은 1991년 우리나라 최초로 신약 신물질(항생제)을 해외에 기술이전하는 등 한국 바이오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 역시 1980년대 말 불모지나 다름없던 바이오 계에 뛰어들어 백신부터 신약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CEO가 만난 CEO] 한국의 모더나로 주목받는 아이진

LG화학 출신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사진 속 왼쪽)가 CJ 출신 유원일 아이진 대표(사진 속 오른쪽)에게 궁금한 점은 무엇일까. 한국 바이오 1세대의 주축인 두 대표의 얘기를 글로 담았다.

이정규(이하 이) 창업을 한 지 벌써 21년이 됐습니다. 창업 초기 이런 저런 고민을 나누던 게 엊그제 같네요.(웃음)

유원일(이하 유) 2000년 CJ 출신 연구자 네 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게 지금의 아이진입니다. 신약과 백신, 항생제, 재조합 단백질 등 각기 다른 연구자들이 뭉쳤죠.

당시엔 벤처캐피털(VC) 등 외부 투자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자금 문제로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죠?

제가 연세대 생화학과 출신입니다. 그래서 인근 서울 연희동에 작은 사무실 하나로 시작했죠. 금방 기술이전 등의 결과물을 내고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쉽지만은 않더군요.

창업을 비교적 일찍한 편입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회사 중 아이진보다 먼저 창업한 회사는 바이오니아, 펩트론, 헬릭스미스 등 몇 개 남지 않았습니다.

아이디어가 많고 열정이 넘쳤던 시기였습니다. CJ에 12년 동안 몸담았는데, 대기업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CJ는 몇년 주기로 사업의 방향 자체가 바뀌었어요. LG와 가장 큰 차이였죠. 3년 동안 신약을 열심히 연구해왔는데 갑자기 사업 방향을 바꿔 복제의약품을 연구한다고 위에서 결정이 났죠. 그러다가 다시 백신으로 방향을 바꾸는 등 어려움이 많았죠.

LG는 그래도 꾸준히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죠. 창업 당시 어떤 연구부터 시작하셨나요?

아이진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안과 질환 치료제를 우선 연구했습니다. 2000년대 초는 녹내장이나 백내장만 알고 있던 시절인데, 황반변성이나 당뇨망막증 등에서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블록버스터를 낼 수 있다고 봤죠.
이런 배경 때문에 일각에서 백신 전문성이 낮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는데, 아이진의 조양제 기술총괄 대표는 CJ 재직 당시 한국 7호 신약인 녹농균 백신을 개발한 주역입니다. 녹농균은 화상, 수술, 외상 등에 의해 면역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감염돼 패혈증을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인데, 조 대표가 개발한 게 세계 최초의 치료제였죠. 여기에 연세대 의대 교수와도 친분이 있어 공동 연구만 잘하면 승산이 있다고 봤습니다.

냉정하게 외부의 시각으로 보면 업계에서 스타성이 있던 구성원은 좀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들과 사이는 정말 좋았던 걸로 기억납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연구를 의사, 교수와 손을 잡고 진행했습니다. 안과 질환뿐 아니라 현재 아이진이 주목받는 계기가 된 백신 플랫폼 분야도 연구를 했습니다. 재조합 단백질 백신에 들어가는 면역증강제도 여기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도 겪으면서 2005년까지 버텼습니다. 투자를 쉽게 받는 요즘 분위기와는 달랐죠.
(아이진은 최근 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 mRNA 백신 임상에 돌입한 회사는 아이진이 유일하다. 작년 셀트리온과 정부 등에 mRNA 백신에 대한 개발 노하우를 알리기도 했다. mRNA 백신 등 다양한 후보물질 덕분에 1000억~2000억 원대를 오갔던 이 회사 시가총액은 7000억~8000억 원 수준으로 올랐다.)
[CEO가 만난 CEO] 한국의 모더나로 주목받는 아이진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

한국 바이오업계에서 20년 이상 회사를 유지해온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두고 싶거나 위기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한두 번이 아니죠. 기업을 꾸리는 후배들도 모두 같은 생각일 겁니다. 하지만 좋은 후보물질을 만들어서 의미 있는 발자취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이제야 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기관투자가들이 아이진을 특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창업 초기부터 투명하게 연구 결과를 공개해왔습니다. 기관투자가에겐 정기적인 보고와 연구실적에 대한 데이터, 진도 등을 모두 공개합니다. 작년 초 한 후보물질에 대해서 실망스러운 임상 결과를 받았을때도 곧바로 공개했습니다. 물론 주가는 상당기간 지지부진했어요.

mRNA 전문회사가 아닌데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선 건 의외였습니다.

작년 주주총회에서 한 투자자가 제안을 하더라고요. 백신 파이프라인이 있는데 왜 안하느냐고.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독일 큐어백 등 다른 회사의 기술을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고 본격적으로 개발에 뛰어들었죠.

mRNA 백신은 처음이지만, 백신 개발 자체가 처음이 아니죠?

이전부터 대상포진 백신을 개발했기 때문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대상포진 백신은 현재 호주에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mRNA 코로나19 백신과 대상포진 백신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대상포진은 일종의 성인 수두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에게 나타는 질병으로 매년 전 세계 1000만 명이 걸린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는 1000명 당 1.5~3명 정도 발병한다.)

어떤 유사한 점이 있나요?

두 후보물질 모두 면역증강제를 사용합니다. 아이진이 자체 개발한 겁니다. 또 약물전달체인 양이온성 리포솜이 쓰입니다. 항원에 해당하는 물질만 차이가 있는 것이죠. 코로나19 백신은 mRNA, 대상포진 백신은 단백질 재조합 방식입니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바이러스의 조각을 몸속에 넣어 면역 반응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대개 T세포 반응이 매우 약하게 일어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면역증강제가 사용된다. mRNA 백신은 먼저 항원(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정보를 가진 mRNA를 몸 안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세포 안으로 들어간 mRNA는 DNA에 바이러스 정보를 전달하고 이에 대한 항체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백신 방식 자체가 달라 개발이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mRNA 물질 자체는 해외 업체와 손을 잡고 개발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mRNA 백신 전달체로 LNP를 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리포솜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LNP 기술은 단점이 명확합니다. 아나필락시스를 유발하는 게 대표적입니다. 아나필락시스는 외부에서 들어온 항원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전신 알레르기를 말합니다. LNP 구성성분인 폴리에틸렌글리콜(PEG)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 보관도 까다로워집니다.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 모더나는 영하 20도 안팎에서 보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하지만 리포솜을 사용하면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mRNA 기술과 리포솜이란 전달체를 플랫폼으로 다른 백신이나 치료제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현재 다른 치료제나 백신도 개발할 예정입니다.

*아이진의 mRNA 백신
아이진은 mRNA를 보자기처럼 감싸 세포 안으로 전달해주는 리포솜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독일 바이오앤텍과 미국 화이자, 모더나가 만든 mRNA 백신이 채용한 기술이다. 전달체 역할을 하는 주류는 보통 ‘지질나노입자(LNP)’지만, 아이진은 작은 구 형태의 물질로 암을 치료하는 항암제, 백신 등의 약물전달운반체로 쓰이는 리포솜을 LNP 대신 이용한다. 리포솜을 활용해 mRNA 백신을 만드는 회사는 아이진이 유일하다.
[CEO가 만난 CEO] 한국의 모더나로 주목받는 아이진

유원일 아이진 대표

이 분야에 ‘올인’하기 위해 코로나19 백신 사업본부를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20여 명으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아이진 인력의 상당수가 투입됐죠. 한국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한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많지만 좋은 기회로 보고 있습니다. 연구진의 실력도 점차 쌓이고 있죠. 하지만 어려움도 많습니다.

어떤 문제죠?

인력 유출이나 회사 기밀 유출이 상당합니다. 현재 국내에 mRNA 연구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유명 제약사나 바이오 회사들이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인력을 빼가고 있는 것이죠. 인력만 가면 그나마 나은데 더 큰 문제가 있어요.

기밀 유출 등이 따를 수밖에 없죠.

네 맞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정보를 가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료를 가져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국가적인 기술이다 보니 국정원 등과 보안조치 강화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벤처기업들의 공통된 고민일 수 있습니다. 인력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보안체계를 다시 만들고, 직원 보상체계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이오벤처의 어려움 등을 감안해 ‘상도덕’은 지켜야 할 텐데요.

앞으로 mRNA 인력 부족은 5년 이상 지속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관련 연구를 경험해본 사람이 100명이 채 안 될테니까요.

향후 준비하고 계신 분야가 있을까요.

두 가지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선 mRNA 백신의 임상 계획을 8월 중에 승인받는 겁니다. 그리고 임상 2b·3상부터는 백신 후보물질을 자체 생산할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우수의약품제조품질관리기준(GMP) 시설을 보유한 국내 기업과 손을 잡았습니다. 제주공장에서 곧 생산에 들어갑니다. 연 500만~2000만 회분(도스)을 생산할 수 있죠. 또 충북 오송에 공장을 지어 본격 생산에 나설 겁니다.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요?

mRNA 백신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이전부터 대상포진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임상 1상을 잘 끝내야 합니다. 또 당뇨망막증 치료제와 욕창·창상 치료제, 심근허혈·재관류 손상 치료제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모두 임상 2상이 진행 중이거나 임상 2상을 앞두고 있죠. 최종 결과물을 내는 게 우선 과제입니다.

임상 3상에도 곧 돌입하겠네요.

우선 임상 2상 전후로 기술수출을 할 겁니다. 저를 비롯해 주요 임원들이 연구개발(R&D) 인력입니다. 3상과 허가, 생산, 판매 등에선 전문가가 아닙니다. 큰 제약사에 맡겨야 할 일들이고 우리가 잘할 것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김우섭 기자 사진 신경훈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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