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범 스파크바이오파마 대표(왼쪽)와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 / 사진=김병언 기자
박승범 스파크바이오파마 대표(왼쪽)와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 / 사진=김병언 기자
박승범 대표는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임용된 2004년부터 화학생물학 분야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해왔다. 화학생물학은 분자 단위에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박 대표는 2019년 서울대 모든 전공 교수를 통틀어 단 10명만 이름을 올린 학술연구교육상 연구부문 수상자다. 젊은 과학자상(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학술연구에 몰두하는 제자들에게 연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또 다른 모범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신약개발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종양미세환경을 조절해 면역항암제의 치료 효과를 끌어올리는 저분자화합물을 개발 중이다.

“종양미세환경 조절하는 건 저분자화합물 영역”

천지웅 이사(이하 천) 학교에서 나온 기술로 창업한 기업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한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작된 기술이 과연 상용화 수준까지 진척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해야 하는 것인데요. 대표님은 이미 미국 제약사에 기술이전된 파이프라인을 개발한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박승범 대표(이하 박) 한미약품의 항암제 ‘포지오티닙’ 개발에 참여했었죠.
(포지오티닙은 2015년 한미약품이 미국 제약사 스펙트럼에 한국·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이전한 항암제다. 지난해 7월 Her2 엑슨20 변이 비소세포폐암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지난 3월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았다. 스펙트럼은 연내 포지오티닙의 신약 시판허가신청(NDA)을 FDA에 제출할 계획이다.)

저희가 스파크바이오파마에 투자하게 된 데는 포지오티닙 기술이전이 영향을 미쳤어요. 기술이전 성과를 낸 물질을 개발해본 경험이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죠. 투자를 하기 전에 고려했던 부분이 또 하나 있었는데요. 학자의 길, 경영의 길, 두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습니다. 당시엔 학자 출신 창업자 중에서도 사업 경험이 있으신 분을 선호하던 분위기였죠. 그런데 투자자의 의견도 귀담아들어주시고 각자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시는 데서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아올리신 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 합니다. 그 부분을 이사님께서 좋게 받아주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제 일처럼 생각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또 그 관계를 쌓아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부분과 다르더라도 현장에서 몸소 경험하신 분들의 말씀을 듣고 필요한 부분은 받아들이다 보니 없던 기업가 정신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처음 대표님을 소개해주신 분이 국찬우 KB인베스트먼트 본부장이셨습니다. 연구기술뿐만 아니라 인품에 대해서도 ‘만나면 사랑에 빠질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맞았습니다(웃음). 면역항암제가 해결하지 못한 미충족 수요를 풀 수 있는 핵심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어요.

‘신약개발의 주류에서 미충족 수요를 파고들자’ 이런 생각을 했죠. 주류라면 항암제고, 그중에서도 면역항암제가 대세입니다. 면역항암제가 향후 20년 이상은 ‘메이저’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선택성을 갖고 PD-L1이나 PD-1처럼 특정 면역관문을 표적할 수 있는 바이오의약품이 주목받는 이유기도 하죠.
아시다시피 이런 면역항암제가 듣는 환자 비율은 20~30% 수준입니다. 문제는 면역항암제가 면역관문의 활성을 억제하더라도 종양미세환경으로 인해 면역시스템이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종양미세환경을 바꿔놓을 수 있는 건 저분자화합물이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종양미세환경 때문에 면역항암제가 먹히지 않는 ‘차가운 종양(cold tumor)’을 저분자화합물을 이용해 면역원성을 가진 ‘뜨거운 종양(hot tumor)’으로 바꾸는 것이죠.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 / 사진=김병언 기자
천지웅 KTB네트워크 이사 / 사진=김병언 기자
약효·기전 검증 기술로 후보물질 발굴 시스템 구축

면역관문억제제의 치료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종양미세환경을 조절하는 것이군요. 스파크바이오파마는 저분자화합물 기반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하는 데서 기존 방식과는 다른 접근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

일반적인 신약개발 방식과는 다르죠. 보통은 발병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표적 단백질에 맞는 물질을 발굴한 뒤, 약효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후보물질을 선정합니다. 표적을 먼저 확인하고 약효를 검증하는 것이죠. 표적해야 할 단백질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쓰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개량신약 개발에 적합하죠. 이러한 표적 기반 접근법을 쓰는 상당수 회사들은 약물 라이브러리가 없다 보니 기존 물질을 개량해 물질 특허를 회피하는 전략을 씁니다. 스파크바이오파마는 약효를 먼저 확인하고 표적과 기전이 무엇인지를 찾습니다.
이때는 물질 발굴 능력이 중요합니다. 약효를 볼 물질들이 있어야 하니까요. 창업 이전에 연구를 통해 저분자화합물 라이브러리 플랫폼인 ‘피도스(pDOS)’를 구축했습니다. 단백질, 핵산 등과 반응하는 의약 유사물질들을 발굴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입니다. 이 플랫폼으로 발굴한 물질들의 약효를 확인하기 위해선 질환과 관련된 세포에 우리 물질을 투여했을 때 나타나는 표현형의 변화를 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표현형 변화를 확인하는 스크리닝 기술도 보유 중이시죠?

형광 프로브 기술인 ‘서울플로어’ 말씀이시군요. 이 기술이 특히 중요합니다. 서울플로어는 세포 속 표현형의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약을 친 뒤 약효가 있는지를 세포 단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죠.
약효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기전을 설명해야 약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약물이 어느 단백질과 결합하는지를 알아야 하죠. 이 표적 단백질을 규명하는 기술이 ‘핏지(FITGE)’입니다. 형광을 이용해 약물이 표적 단백질과 결합하는 과정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핏지가 변형된 버전인 ‘티에스핏지(TS-FITGE)’도 있습니다. 약물에 형광물질을 붙이게 되면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형을 없애 약물 그대로 표적 단백질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약효가 좋지만 기전을 모르는 물질에도 ‘사이언스’를 입힐 수 있는 거네요. 피도스로 물질특허를 확보하고, 서울플로어로 확보한 물질의 약효를 밝히고, 핏지로 표적 단백질을 찾는다, 이 세 가지 중 하나 만으로도 사업이 가능할 듯합니다.

창업 2년 전부터 사업 경쟁력이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물질 발굴 시스템이 강점이라고 생각했어요. 스파크바이오파마를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화수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특정 물질에 의존해 성장하기보다는 임상 등 개발 경험이 축적되면서 백업 물질들을 더 잘 만들 수 있는, 뒤가 계속 있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승범 스파크바이오파마 대표 / 사진=김병언 기자
박승범 스파크바이오파마 대표 / 사진=김병언 기자

기술이전 뒤에도 신약개발 역량 쌓겠다

파이프라인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SBP-101’은 어떤 파이프라인인가요?

종양미세환경의 불균형을 잡아주는 물질입니다. 면역세포의 일종인 대식세포와 골수성억제세포(MDSC)를 조절하는 물질입니다. 염증성 대사질환을 위주로 적응증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임상 1상 진입이 목표입니다. 임상 1상 이후엔 병용투여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인체 병용투여에서 효과가 나타나게 됐을 때 글로벌 빅파마들이 본격적으로 우리 파이프라인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른 파이프라인도 있습니다. 항원제시능력이 떨어진 수지상세포의 기능을 다시 끌어올려주는 ‘SBP-102’, 종양미세환경의 면역원성을 회복시켜 T세포가 잘 기능하도록 해주는 ‘SBP-103’이 대표적입니다. 신경퇴행성질환, 비알코올성지방간염(NASH) 파이프라인도 보유 중입니다.

기술이전 전략도 설정해두신 게 있으신가요?

혁신신약은 굳이 임상 단계가 아니어도 국내외 제약사를 가리지 않고 서로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술이전을 하는 시점을 따로 정해두진 않았습니다. 어떤 물질은 임상 1상이 끝날 때 협력사를 찾을 수 있겠지만 또 다른 경우엔 전임상 단계에서 기술이전을 할 협력사를 찾을 수도 있겠죠. 핏지 등의 플랫폼 기술을 통해 개발하려는 혁신신약의 기전 분석을 미리 할 수 있으니 전임상 단계에서도 가능합니다.

스파크바이오파마는 기전 규명이 가능하니 임상 2상에 성공한 뒤 기술이전을 하는 전략이 아니라 적응증별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제약사에 기술이전 하는 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신약개발 과정 전체를 볼 수 있는 바이오·제약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기술이전했으니 이제는 손을 떼자’라는 전략은 지양하려 합니다. 기술이전이 된 후보물질의 임상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하면서 개발 중인 다음 물질이 어떤 단계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도 확인해야겠죠. 가능하면 기술이전 이후에도 임상에 참여해 임상 노하우를 쌓으려 합니다.
참고할 연구·임상 사례가 축적된 개량신약 분야와 달리 혁신신약 분야에선 기술을 도입한 제약사가 후속 임상을 진행하기 위해 후보물질을 발굴했던 기업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기술이전할 때 이 점을 살려서 임상과 관련된 경험을 쌓으려 합니다.

시리즈C 투자금은 전임상에 활용

2018년 시리즈A로 45억 원, 2019년 시리즈B로 250억 원 규모 투자 유치를 했습니다. 시리즈C 투자 유치는 어느 시기에 할 예정인가요?

연내 시리즈C를 할 생각입니다. 시리즈B 투자금은 우리 플랫폼으로 신약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데 주로 썼습니다. 시리즈C로 확보한 자금은 전임상을 하는 데 70~80% 이상이 쓰일 예정입니다.
물론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데도 계속 투자할 생각입니다. 2023년엔 2~3개 파이프라인을 임상 1상 이상 단계에 올려놓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론 ‘스파크바이오파마’라는 이름에 걸맞은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제약사로서의 역량도 확보해 임상 3상까지 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사명에 ‘바이오파마’를 붙이신 것도 인상적입니다. 제약사처럼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짓고 영업조직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신 거잖아요.

그렇죠. 우선은 물질 발굴 역량을 특화해야겠지만 목표는 제약도 하는 ‘바이오파마’입니다.

이주현 기자 사진 김병언 기자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8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