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데브시스터즈벤처스 상무 / 사진=김영우 기자
이승우 데브시스터즈벤처스 상무 / 사진=김영우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이 많은 의사 출신 VC
이승우 상무는 지난 6월 액셀러레이터인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벤처캐피털 데브시스터즈벤처스로 둥지를 옮겼다. 2017년 투자업계에 입문한 지 꼭 4년 만이다.

그는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50여 개 초기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에 시드 투자(초기 투자)를 했다. 이 상무는 “이전까지 데브시스터즈벤처스에 바이오 심사역이 없었다”며 “새 둥지에서 바이오 헬스케어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 검토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에서 VC 심사역이 되기까지
의사 출신인 이 상무는 비교적 이색적인 이력을 가진 바이오헬스케어 섹터 심사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전문의를 따기 위해 종합병원으로 향하는 대신 헬스웨이브(현 헬스브리즈)라는 디지털 헬스케어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외과의사인 정희두 대표가 설립한 업체로, 의사가 수술 등 의료적인 내용을 환자에게 고지해야 할 때 애니메이션 등을 활용해 이해를 돕는 영상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업체였다. 이곳에서 이 상무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기획하는 일을 맡았다.

헬스웨이브 다음으로 그가 몸담은 곳은 의료기기업체 와이브레인이다. 뇌에 자기장을 걸어 우울증을 치료하는 의료기기를 만드는 곳이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이 상무는 와이브레인에서 의료기기 인허가를 위한 임상을 주도했다.

그는 “재직 중 기업설명회(IR)나 투자유치를 하는 자리에 동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이 과정에서 벤처캐피털을 접하며 투자 업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이용관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대표를 만나며 본격적으로 투자업계에 입문하게 됐다. 이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 업체에서의 실무경험과 의료기기 인허가 및 임상을 도맡아본 경험이 투자업계에 입문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어떤 기준으로 투자하나. 새로움이 있는 곳을 찾아라
블루포인트파트너스에서 그는 신약벤처인 하플사이언스와 원진바이오테크놀로지, 아벤티, 수술로봇 소프트웨어업체 휴톰 등에 투자했다. 이 상무는 “새로운 플랫폼을 갖고 있는 업체, 탄탄한 연구 기반으로 다수의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갖춘 업체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그는 원진바이오테크놀로지가 새로운 플랫폼을 보유한 신약벤처라는 점에 주목해 초기 투자를 집행했다. 이 회사와의 인연을 만들어준 건 그 앞으로 도착한 메일 한 통이었다. 편지에는 ‘4중 작용제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 기술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를 개발 중이니 투자를 고려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상무는 “원진바이오테크놀로지와 처음 만난 2019년 초만 해도 한미약품이 NASH 신약을 위한 삼중 작용제(트리플 아고니스트)를 선보이던 시기였다”며 “제약업계에서 수요도 확실한 데다 혁신적인 기술이란 점에 매료돼 투자를 검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한미약품 같은 대형 제약사가 2중 작용제에 이은 3중 작용제를 만드는 상황에서 작은 바이오기업이 4중 작용제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상무는 “당시 체외(in vitro) 실험 데이터도 나오지 않았던 상황으로 정말 초기 아이디어 단계였다”며 “6개월 동안 다양한 실험을 요구해 체외 실험 데이터를 확인한 뒤에 확신을 갖고 투자했다”고 말했다.

근무력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신약 벤처기업 아벤티는 다양한 파이프라인이 강점인 곳이다. 이 상무는 “근무력증을 치료 목적으로 하는 후보물질이 4개인데, 이 4개 후보물질의 작용 기전이 모두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통 신약 벤처기업은 하나의 작용 기전을 바탕으로 여러 후보물질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이 상무는 “오랜 기간 정부 과제를 통해 노화를 연구한 분이 설립한 기업이다 보니 복수의 작용 기전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술력과 지적 배경을 갖췄다”고 덧붙였다. 아벤티는 신약 재창출(drug repositioning)로 마련한 후보물질의 임상을 우선 준비하고 있다.

이 상무가 초기 투자한 기업 중 성장세에 속도가 붙는 기업도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가 2019년에 초기 투자한 하플사이언스는 지난해 120억 원 규모 시리즈B 투자유치를 마쳤다. ‘하플 단백질’을 이용한 관절염 치료제를 개발 중인 기업이다. 나이 든 쥐의 혈관을 젊은 쥐의 혈관에 연결했을 때 관절과 연골이 재생된다는 새로운 개념에서 출발한 신약벤처다. 이 상무는 “새로운 개념과 더불어 한국콜마 제약부문 사장 등 다년간의 업계 경험을 두루 갖춘 경영진이 매력적인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달라진 둥지, 다른 시각으로 투자할 것
액셀러레이터에서 VC로 둥지를 옮긴 만큼 이 상무는 앞으로의 투자 기준도 일부 수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액셀러레이터에 있던 시절 이 상무는 경영진의 리더십을 높은 우선순위에 두고 평가해야 할 요소로 봤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투자에 집중하는 곳이다. 그f렇다 보니 기술력과는 별개로 자본이나 시스템 등을 갖추지 못한 스타트업을 끌고 가기 위해선 수준 높은 리더십이 필수였다.

이 상무는 앞으로는 시장의 수요와 관심에 적합한 기업인지를 좀 더 중점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사업 아이템이 좋고 대표가 의지와 리더십이 있더라도 시장에서 수요가 적으면 성장에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며 “액셀러레이터에 있으며 시장에서 수요가 없으니 초기 투자를 더 받지 못하고 점점 어려움이 커지는 기업을 여럿 봤다”고 말했다.

투자 대상 기업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만큼 평가의 무게 추도 그에 맞춰 리더십에서 시장의 수요 검증으로 소폭 움직이겠다는 의미다. 업계 트렌드의 변화는 어떨까.

이 상무는 “바이오업계의 트렌드가 항암제에서 신경계, 유전자치료제 등으로 넘어가고 있다”며 “이외에도 하나의 기전을 가진 치료제로 해결이 안 되는 복합질환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가령 원진바이오테크놀로지가 치료제를 개발 중인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은 한 종류 약물로는 잡기 어려운 대표적인 복합질환으로 꼽힌다.

그는 “액셀러레이터에 있을 땐 여러 제약들로 시리즈 B, C 같은 후속투자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다”며 “시장의 미충족 수요를 만족시키며 성장하는 기업들에 꾸준한 후속투자를 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제2의 카카오’ 찾겠다
이쯤에서 푸는 이 상무의 이색 이력 하나 더. 그는 의대에 진학하기에 앞서 같은 대학의 공대에서 3학기를 보냈다.

디지털 헬스케어 및 의료기기 벤처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그는 바이오 심사역 중 디지털 헬스케어에 관심이 큰 인물로 꼽힌다. 이 상무는 “디지털 헬스케어업계의 카카오톡이라 불릴 수 있는 플랫폼 업체를 발굴해 투자하는 게 꿈이자 목표”라고 말했다.

하지만 헬스케어 분야에선 어쩌면 유독 더 이루기 어려운 목표라고도 했다. 여러 이익집단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보니 모든 플레이어가 만족스럽게 ‘윈윈’하는 플랫폼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약을 배달해주는 서비스 등을 예로 들었다. ‘배민’, ‘요기요’처럼 시장에서 수요가 있을 것이라 판단해 나온 서비스였지만 금세 규제 허들에 부딪히는 것을 봤다. 약사회 등 이익집단의 반대도 거셌다. 아직까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 상무는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존속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회사에 투자해 키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투자 고수 열전]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제2의 카카오’ 찾는 법
이우상 기자 사진 김영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