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빛의 100경 배 밝기로 살아있는 세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태양빛의 100경 배 밝기로 살아있는 세포를 들여다볼 수 있는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충북 청주 오창읍에 신규 방사광가속기 건설 사업이 이달 들어 본격화되면서 가속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속기는 입자를 전기장 등을 사용해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켜 초미세 세계를 연구하는 장치다. 과거엔 핵물리학 등 기초연구에 주로 이용됐지만 최근엔 생명과학, 의학, 재료공학 등 응용과학과 관련 산업 전체로 활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반도체, 2차전지, 신약 개발 등에서도 초격차를 내는 데 필요한 ‘꿈의 현미경’으로 가치가 높아졌다. 가속기를 이용해 낸 연구 성과가 노벨과학상(물리·화학) 수상으로 이어진 경우도 부지기수다. 일본이 노벨과학상 강국으로 올라선 것은 1920~1930년대부터 가속기를 활용해 기초연구를 했기 때문이다.

가속기는 가속 대상 입자의 종류에 따라 전자가속기(방사광가속기), 양성자가속기, 중이온가속기 등으로 분류된다. 가속시키는 형태에 따라선 원형가속기와 선형가속기로 구분된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를 가속시켜 운동 방향이 변할 때 방출하는 빛(방사광)을 이용해 물질을 나노미터(㎚·1㎚=10억분의 1m) 단위로 들여다본다. 청주에 새로 들어설 가속기는 태양빛보다 1조 배 밝은 빛으로 물질을 들여다볼 수 있다. 원형가속기는 저에너지 입자, 선형가속기는 고에너지 입자 가속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1994년 포항에 들어선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꾸준히 성능을 개량해 현재 35기 빔라인(고객 연구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선형 및 원형 복합 가속기로 빔에너지는 3기가전자볼트(3GeV)다. 12만6800㎡ 규모 대지의 18개 건물에 관련 시설이 설치돼 있다.

2016년엔 포항에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완공됐다. 빔에너지는 10GeV, 방사광 밝기가 태양빛의 무려 100경 배에 달한다. 선형가속기로 장치의 총길이는 1.1㎞다. 미 스탠퍼드대와 아르곤연구소가 이 가속기의 성능을 공인했다.

양성자가속기는 수소 원자에서 양성자를 꺼내 가속한 뒤 표적(다른 원자핵)과 충돌시켜 생성되는 2차 입자(뮤온 등)를 연구하는 장비다. 양성자를 초당 13만㎞ 속도로 발사한다. 2012년 미국과 일본에 이어 경주 건천읍에 세계 세 번째로 들어섰다. 양성자가속기를 쓰면 플라스틱을 강철처럼 만들거나 노랑·파랑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등 재료의 물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 암 치료 및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기도 한다. 반도체 오류 및 손상 방지에도 활용된다. 태양에서 생성돼 지구까지 도달하는 우주 방사선 형태의 수소 양성자가 반도체 성능을 저하시키거나 고장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사전에 막는 실험을 할 때 양성자가속기를 사용한다. 그동안 생명공학, 신소재, 반도체 등 700여 개 연구과제에서 2000여 명의 연구자가 양성자가속기를 썼다.

중이온가속기는 양성자가속기와 원리는 비슷하지만 가속 입자가 전혀 다르다. 중이온은 원자에서 전자들이 제거된 상태의 원자핵(양성자+중성자)을 말한다. 중이온가속기는 양성자보다 훨씬 더 무거운 입자(탄소, 칼슘, 우라늄 등 중이온)를 가속한 뒤 표적과 충돌시켜 ‘세상에 없던’ 원소를 새로 만들어낸다. 탄소는 양성자 무게의 12배, 자연계 원자핵 중 가장 무거운 우라늄은 238배다. 양성자는 전자 질량(9.109÷10의31제곱㎏)의 1840배로 알려져있다. 2011년부터 총 1조5000억여원이 투입된 중이온가속기는 당초 올해부터 대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신동지구)에서 가동될 예정이었으나, 주요 시설 미비로 운영이 2025년까지 연기됐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