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애플 AS 독점정책에 제동 걸어
'소비자 수리권 보장' 등 행정명령 지시
스티브 워즈니악, 바이든·FTC 정책 지지
애플의 폐쇄적 사후서비스(AS) 정책이 소비자의 자가 수리 선택권을 침해한다며 백악관이 경고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백악관의 손을 들어줬다. 향후 미국 '빅 테크' 대기업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약관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FTC "수리제한 관행 불공정…소비자에 선택권 제공해야"
23일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더버지'(The Verge)에 따르면 FTC는 애플을 비롯한 일부 스마트폰 제조 업체들의 수리 제한 관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제재하겠다고 밝혔다.

애플은 그동안 '소비자들에게 보안상 위험을 초래한다'는 이유를 들어 자사 제품 AS를 공식 지정업체에서만 받을 수 있게 했다. 만일 소비자가 제품을 직접 수리하거나 사설 수리점을 이용할 경우 보증기간을 일방적으로 무효화해 불이익을 줬다. 사설 수리점에 부품도 제공하지 않아 자사 제품 수리를 애플이 독점했다.
팀 쿡 애플 CEO [사진=AFP 연합뉴스]

팀 쿡 애플 CEO [사진=AFP 연합뉴스]

애플의 AS 정책은 고장 난 부품만 고치는 게 아니라 리퍼 제품(반품했거나 회수 후 수선해서 다시 내놓은 제품)으로 교체하는 식의 조치를 취해왔다. 이 때문에 부품만 있으면 적은 비용으로 수리가 가능함에도 그 몇 배에 달하는 비용이 청구돼 소비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응할 수밖에 없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같은 관행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지난 9일 FTC에 '소비자 수리권 보장'(right-to-repair)을 포함하는 포괄적 행정명령을 지시했다. 이 조치에는 기업 간 경쟁을 강화해 소비자와 근로자가 낮은 가격과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게 하는 총 72개 계획이 담겼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직후 줄곧 미국 IT 대기업들의 폐쇄적 약관을 지적해왔다. 특히 스마트폰 제조사의 수리 독점 관행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므로 소비자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를 적극 개혁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FTC도 바이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FTC는 성명서에서 "스마트폰 제조사의 수리 제한 관행은 소비자 수리 비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불필요하게 수리 시간을 지연시킨다"며 "수리에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하는 것은 비용이 절감되고 제품의 유효 수명을 연장하게 한다. 더 나아가 지역 기업에 경제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마저 애플에 쓴소리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도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과 FTC 결정을 옹호했다. 그는 '제품 자가 수리권'을 주장해온 루이스 로스만 운동가의 유튜브 채널에 나와 "기업이 여러 제한을 거는 것은 이를 통해 힘과 모든 것을 제어해 권력을 얻기 위해서다"라며 "소비자가 제품을 스스로 수리할 권리를 갖도록 하는 데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매우 개방된 기술 세계에서 자라지 않았다면 지금의 애플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더 완벽하게 수리할 권리를 인식해야만 한다. 올바른 일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애플에 직격탄을 날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EPA 연합뉴스]

애플의 수리권 제한 관행이 깨질 경우 수리 시장 활성화, 소비자 선택권 강화, 전자 폐기물 감소 등의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관측됐다. 수리 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그동안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은 수리 권한을 독점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기존 기기를 고쳐주지 않고 새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했다.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온 셈"이라고 꼬집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 40년간 대기업들에게 많은 권력을 쥐게 하는 실험을 해왔지만 이는 실패했다"며 "이제 아래와 중간층으로부터의 성장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점 대기업들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서 더 이상 관용은 없다. 근로자와 소비자에게 적은 선택지를 주는 나쁜 합병을 더 강력히 없애야 한다"고 천명했다.
"美정부, 빅테크 기업들 불공정 행태 두고 보지 않을 것"
특히 이번 판결은 빅테크 기업들과 대척점에 서 있는 '아마존 킬러' 리나 칸 FTC 위원장 취임 후 이뤄진 반독점 제재 조치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FTC가 만장일치로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폐쇄적으로 운영돼 오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관행이 대거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사진=AFP 연합뉴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 [사진=AFP 연합뉴스]

애플 관련 소식을 전문으로 다루는 매체 '애플인사이더'는 FTC 행보가 애플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매체는 "애플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페이스 제품 라인과 엑스박스 게임 콘솔 제품군 등 많은 IT 대기업들이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닌텐도, 소니 등 게임 하드웨어 기업도 비슷하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빅테크들이 로비스트를 고용해 정치권에 자가 수리권의 위험성을 강조해오던 활동은 이제 먹히지 않고 있다"며 "정보와 기술을 독점해 소비자 영향력 강화를 넘어 국가의 제재를 무력화하는 것을 미국 정부가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국내에서 애플 제품 수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계 종사자는 "단기적으로는 미국에서 아이폰 수리 비용이 줄어들고, 장기적으로 음지에 있던 아이폰 수리 시장이 양성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애플의 방어책, 이를테면 신제품 가격 내지 보험비 인상, 애플 전용 소프트웨어 이용시 비용 상승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