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전환(DT)은 그나마 잘한다는 제조사도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지붕부터 만들려 하지 말고, 주춧돌인 ‘데이터’부터 제대로 깔아야 합니다.”

김태환 한국산업지능화협회 회장(사진)은 지난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국내 제조업계가 DT 성공 사례를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초기 단계에 머문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를 수집·가공하고 거래하는 방법을 정립하고, 조속한 법제화를 통해 ‘데이터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DT의 완전한 도입에는 최소 10년이 걸린다는 게 김 회장의 판단이다. “제조업의 DT 점수는 아직 ‘빵점’일 수밖에 없다”며 “최근 들어 사물인터넷(IoT) 센서가 저렴해지고,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 막 데이터 수집의 토대를 마련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이런 수집을 활성화할 동력조차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그는 “권리 관계 정립과 거래 가이드라인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대안으론 법제화를 제시했다. 산업 데이터의 활용·보호 원칙, 거래 가이드라인, 데이터 표준·품질을 법이 정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는 이런 내용의 ‘산업 디지털 전환 및 지능화 촉진 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해 말 발의됐지만 여전히 소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 회장은 “벌써 세 차례나 미뤄졌는데, 이대론 9월 본회의 상정이 불분명하다”고 우려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법제화 미비로 인한 분쟁이 시작됐다.

그는 “한 반도체 회사가 설비 효율화를 위해 데이터 분석에 나섰지만, 외국계 장비회사가 ‘자사 장비에 수집된 데이터는 영업 비밀’이라며 협조하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라며 “영업 비밀 해당 여부를 포함해 데이터 거래 시 수익 배분 기준 등 여러 가지가 모호한 상태”라고 했다.

일부 의원이 지적하고 있는 개인 정보 유출 문제에 대해선 “현재 계류된 법안과 무관한 내용이며, 관련 사항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된다”고 했다. ‘데이터 기본법안’ 통과가 먼저란 의견에는 “현장에선 촉진법이 더 시급하다”며 “산업계 간 다툼이 빈번해지고 있는 만큼 법제화를 하루라도 미루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시은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