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는 IT 게임체인저…R&D 속도내야"
“각국에서 양자 혁명이 진행 중인데 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 시기를 5년 정도 놓쳤습니다. 미래지향적인 R&D 전략도 보이지 않습니다.”

박제근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14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연 ‘한국 양자기술 현황과 미래’ 온라인 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양자기술은 비트(0 또는 1)가 아니라 큐비트(0 이면서 1)로 연산하는 양자컴퓨터, 양자통신 등을 말한다. 슈퍼컴퓨터보다 수억 배 빠른 양자컴퓨터는 신약, 신소재, 금융상품 개발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것으로 기대되는 ‘정보기술(IT) 게임체인저’다. 인공지능(AI) 연산, 교통·물류 및 항공우주 경로 최적화 등에서도 디지털 컴퓨터와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한다. 미국 IBM,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중국 알리바바, 화웨이, 레노버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박 교수는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은 산업을 넘어 국가 안보 차원에서 양자기술에 엄청난 투자를 해왔다”며 “이들은 이미 우리가 벤치마킹할 수준을 넘어섰다”고 진단했다. 이어 “양자기술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긴 호흡으로 인력을 양성하면서 전략적 국제협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기홍 IBM 아세안·한국 GBS(글로벌비즈니스서비스) 총괄대표는 “국내 기업과 연구소들은 외국과 비교하면 양자기술로 어떤 문제를 풀겠다는 계획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전문가의 지적에 씁쓸해졌다. 양자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뒤늦게 서두르는 정부의 모습이 오버랩돼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국내 주요 대기업이 참여하는 ‘미래 양자융합포럼’을 결성하고 양자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고 했다. 내년엔 올해보다 83% 늘어난 603억원을 양자기술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선도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미국 정부는 2018년부터 올해까지 4년간 1조4000억원을 투자했다. 중국 정부는 같은 기간 17조원을 쏟아부었다.

송 대표는 “IBM 본사는 올해 127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선보이고 내년엔 433큐비트, 2023년엔 1121큐비트 컴퓨터를 내놓을 것”이라며 “연산 속도 증가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까지 5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개발하겠다는 우리 ‘국가 계획’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오는 기술 격차다. 탈원전 이슈처럼 그나마 축적된 원천기술이 있는 분야라면 잃어버린 시간을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다. 하지만 빈약한 기술력에 국가적 플랜마저 불투명하다면 뒤집기는커녕 따라잡기도 힘들다. 또 다른 기술종속이 이미 시작된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야말로 만시지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