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급사 명단을 공개한 애플과 삼성전자가 각각 중국과 한국 기업으로부터 가장 많은 부품을 조달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경우 해외에선 일본 기업의 공급사 비중이 높았다. 애플은 중국 의존도가 높아 공급망 다변화가 숙제로 떠올랐고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의 일본 기업 의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애플에 부품 공급 한국 기업 23곳 불과

3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공급사 명단을 공개했다. 애플은 노동 및 인권 시민단체들 요구를 수용해 2012년부터 글로벌 공급망 관련 기업 리스트를 작성해 매년 공개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애플 공급사 명단은 2020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전 세계 주요 기업 200개를 추리고 해당 기업의 생산시설 위치에 따라 다시 분류한 것이다.

애플이 발표한 공급사 명단 200곳 가운데 생산 지역 기준으로 중국이 총 156곳을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한국은 총 23곳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본사 소재지로만 따졌을 경우 13곳으로 줄었다. 나머지 10곳은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었다.

애플 공급사 중 국내 업체로는 삼성 계열사와 LG 계열사가 대표적이다. 13곳 중 절반에 가까운 6곳이 이들 기업 소속 계열사로 삼성 계열사 중에선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SDI 등 3곳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 계열사는 애플에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스마트폰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카메라 렌즈,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을 공급했다.

LG 계열사 중에서는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3개사가 명단에 포함됐다. LG화학은 배터리, LG디스플레이는 OLED 패널, LG이노텍은 카메라 모듈을 납품했다. 삼성과 LG를 제외한 공급사에는 SK하이닉스, 포스코, 서울반도체, 영풍그룹, 덕우전자, 범천정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 해외 공급사, 일본이 가장 많아

서울 서초동 삼성딜라이트 주변 광고물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삼성딜라이트 주변 광고물 [사진=연합뉴스]
반면 삼성전자가 최근 공개한 '2021년 협력사 명단'에 포함된 101개 기업을 본사 소재지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한국 기업이 40곳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애플과는 대조적이다.

삼성전자 관계사 중에선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각각 액정표시장치(LCD), OLED 등 디스플레이 패널부터 인쇄회로기판(PCB), MLCC, 배터리 등의 주요 부품을 삼성전자에 공급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동진쎄미켐솔브레인, 장비 제조사 중에선 원익IPS와 테스가 공급사 명단에 포함됐다. 전체 리스트를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는 국내 기업 중 한솔테크닉스가 추가됐다.

해외 기업들 중에서는 일본이 22곳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올해 명단에 포함된 기업들 중에서는 캐논, 도쿄일렉트론 등 반도체 장비 기업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화학소재 업체 니토덴코,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제조사인 섬코 등이 눈에 띄었다.

미국 기업은 17곳으로 집계됐다. 특히 삼성전자와는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인텔, 마이크론도 공급사 명단에 오른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 공급사 명단에 포함된 중국 기업은 세계 1위 LCD 패널 생산업체 BOE와 배터리 업체 BYD 등 5곳에 그쳤다.

"애플, 공급망 다변화 추진할 수 밖에 없을 것"

애플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미중 갈등이 극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도리어 중국 업체를 확대하는 독자 노선을 택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2017~2020년 애플의 공급업자 목록에 52개 업체가 신규로 등록됐는데 그 중 중국 업체가 15개사로 가장 많았다. 또 지난해 애플에 공급한 업체 200개사 중 약 80%는 최소 1개 이상의 공장을 중국 본토에 두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싱가포르의 윌 웡 경제분석가는 "미중 갈등에도 중국 제조업은 기술과 가격 면에서 여전히 매력적"이라며 "다만 애플도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할 수밖에 것이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따른 공급망 붕괴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 누구도 한 바구니 안에 달걀을 모두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애플의 중국 업체 편중 현상은 '구매력'에서 기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중 하나인 징둥닷컴이 지난 1~18일 진행한 대규모 할인 행사 '6·18 쇼핑 축제'에선 아이폰이 단일 제품 판매 1위(매출 기준)를 차지했다.

징둥닷컴에 따르면 아이폰은 판매 시작 단 1초 만에 174억원어치가 넘게 팔리며 순식간에 매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 갤럭시가 중국에서 맥을 못 추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의 점유율은 13%로 외국 브랜드 중 가장 높았다. 삼성전자는 1% 수준에 머물렀다.

"마진 포기한 채 애플과 거래 원하는 중국 기업 많아"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딜라이트 룸 앞에 갤럭시 S21 광고 [사진=뉴스1]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딜라이트 룸 앞에 갤럭시 S21 광고 [사진=뉴스1]
마진을 포기하면서까지 애플에 납품하기 원하는 중국 업체들이 많다는 점도 요인으로 꼽힌다. 애플에 제품을 공급한다는 것 자체가 국제 무대에서 품질 인증을 받는 기준으로 작용한다는 것.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미국, 유럽, 일본과 달리 중국 기업들은 애플과의 실무 협상에서 마진이 큰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라며 "애플에 납품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금융 거래에서 실익이 있고 애플의 깐깐한 기준을 맞추다 보면 상품성도 향상돼 더 많은 거래처를 뚫는 기회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중국 선전 소재 GF증권의 제프 푸 선임 연구원은 "중국 제조업체들이 애플에 납품하면서 세계 수준의 역량을 키웠다"며 "이제 중국이 세계 수준을 따라잡지 못하는 유일한 전자 제품은 반도체뿐"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까탈스러운 애플의 요구에 토 달지 않고 저마진에 납품해줄 기업은 중국과 동남아, 인도 기업들 뿐"이라며 "그중 중국은 경제성장률과 규모, 구매력까지 갖춰 애플로서는 중국 업체들과 협력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양성을 회사의 핵심 가치로 내세워 온 애플이 신장 지역 등 인권 문제를 극도로 함구하는 이유도 중국이 너무나 중요하고 중국 업체들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 인권 문제를 거론했다가 불매 운동 역풍을 맞은 나이키의 존 도너호 최고경영자(CEO)가 오죽하면 '나이키는 중국을 위한 브랜드'라는 말까지 했겠나"라고 덧붙였다.

또 "한일, 미중, 한국 내 반중 분위기 등 정치적 리스크가 단기간에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삼성전자와 한국 업체들의 높은 거래 비율은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삼성전자는 핵심 부품들 일본 의존도가 여전히 매우 높은 편이다. 연구개발(R&D)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짚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