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등 첨단기술의 가치평가 권한을 부동산 감정평가사에 맡기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가 대한변리사회의 반발로 취소되는 ‘촌극’이 벌어졌다.

21일 변리사회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출신 김희국 국민의힘 의원은 특허 등 지식재산권(IP) 가치평가를 감평사의 고유 업무로 하는 내용을 담아 지난해 말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이 법에서 정하는 ‘토지 등’ 평가 업무를 무조건 감평사에 먼저 의뢰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얼핏 별 무리가 없어 보이지만 특허 가치평가를 변리사가 아니라 감평사에게 맡기는 것을 의무화하는 규정이라는 게 문제였다. 현재 감정평가법이 ‘토지 등’의 범위를 부동산 외에도 저작권, 산업재산권, 어업권, 양식업권, 광업권, 그 밖의 물권으로 넓게 정하고 있어서다.

변리사회는 “감평사 자격 취득을 위한 시험에는 특허법 등 산업재산 관련 법률이나 과학기술 관련 지식을 검증하는 과목이 하나도 없다”면서 “전문성이 없는 감평사가 IP 가치평가를 독점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 의원 측은 결국 개정안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변리사회는 이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기술 강국을 실현하려면 특허청, 문화체육관광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식재산 업무를 하나로 통합해 ‘지식재산처’를 설립해야 한다”는 성명을 정치권을 향해 냈다. 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기술사회 등과 함께 “특허침해 소송에서 변호사와 변리사의 공동 대리를 인정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