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기술의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얼마 전 한 대학병원의 외과의사가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는 “수술실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 기술로 사업을 해볼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곤 자신이 보유한 기술의 우월성과 독창성에 대한 긴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더니 대뜸 “사업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즉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기술에 대한 설명만 들었을 뿐 사업성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무거운 정적을 깨고 역으로 의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사업화하신다고 했는데 해당 기술 시장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요?”

“잘 모르겠는데요”란 답이 돌아왔다.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상업화된다면 수요자는 누구인지, 구매금액은 어느 정도가 될 수 있는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조언했다. “사업자금을 조달하려면 먼저 시장성부터 조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업 가치는 없는 겁니다.”

몇 년 전에 만난 성형외과 의사 한 분도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에게 자신의 병원을 소개하고 방문을 유도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고 싶은데, 이 사업에 투자할만한 곳이 있겠느냐고 문의해왔다. 필자의 답변은 단호했다. “없을 겁니다.”

사드(THAAD) 여파로 중국 관광객의 한국 방문이 급감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중국인들의 한국행(行)은 조만간 재개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돌아갔다. 얼마 뒤 지인으로부터 이 의사가 사재를 털어 앱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까지 성공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내친김에 창업 관련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암환자를 대상으로 치료와 휴양을 병행하는 프리미엄 복합 치료시설 프로젝트다. 몇 년 전 한 중소기업인이 “한국 의료산업에 한 획을 긋겠다”며 자신이 갖고 있는 땅(전남 지역)에 대규모 시설을 짓는 청사진을 내놨다.

재무자문 자격으로 사업 계획지구를 둘러본 결과, 프로젝트가 순항하기는 어려워보였다. 교통 인프라가 너무 열악한 데다 근처에 쓰레기 매립장 등 혐오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요양치료 시설이 들어설 만한 부지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이들 3개 사례의 공통점은 사업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과의사의 사업은 시장 규모가 확인되지 않았고, 성형외과 의사의 애플리케이션 사업은 시장은 있지만 사업 시점이 적절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요양치료시설 사업은 부지 선정이 잘못된 케이스다.

물론 어떠한 사업도 완벽한 조건을 갖고 시작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업은 자금 부족으로 고전하고, 다른 사업은 능력 있는 실무자가 없어 발이 묶인다. 하지만 경영자의 열정과 직원들의 노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간다.

하지만 사업성이 없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영자의 열정이 아무리 뜨거워도 안 되는 사업을 되게 할 수는 없다.

사업화의 기초 단계, 사업성 평가하기
사업성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사업이 잘되기 위한 조건들의 합이라고 할 수 있다. 투자자는 기업의 인수합병(M&A), 자본투자와 같은 거래행위를 수행할 때 사업성을 면밀히 살핀다. ‘사업실사’(CDD·Commercial Due Diligence)라는 과정을 통해 대상 기업의 사업성을 뜯어본다.

해당 산업의 개괄적인 내용 파악에서부터 경쟁관계 분석, 시장규모 산정, 시장 트렌드, 회사의 성장잠재력, 위험요인 분석, 성공요인 분석 등이 포함된다. 분석을 위한 정보는 기본적으로 회사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회사 주요 인력과의 인터뷰, 외부 리서치 자료, 외부 전문가 인터뷰, 자문기관 자료 등을 통해 수집한다.

만약 생명공학 기술 관련 기업이라고 하면 해당 물질의 임상, 정부 인허가, 상업적 성공 가능성 분야 등으로 나눠 사업실사를 진행하게 된다.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해당 물질 또는 기술의 상업화 가능성과 그 시장 규모에 대한 판단이다.

단계별로 보면 임상단계에서는 어떤 환자를 상대로 할지, 얼마나 많은 환자가 대상이 될지 등에 대한 내용이 핵심이다. 인허가 항목은 신약개발 과정에서 국내외 보건당국의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 그 범주 안에서 약물을 개발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인허가 기관이 요구하는 지침을 만족하지 못한다면 상업화가 불가능하다.

의료기기 스타트업 가운데 기술개발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인허가상의 문제점을 뒤늦게 발견하고 ‘피보팅’(pivoting·사업전환)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만큼 비용과 시간적인 손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업실사 외 실사항목도 철저히 준비할 것
상업적 성공분야는 해당 물질의 판매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요인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이다. 또한 단계별 성공 가능성에 대한 예측 모델링도 포함된다. 사업실사는 M&A, 투자 등 거래에 있어서 필요한 여러 실사항목 가운데 핵심적인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실사항목은 CDD를 비롯해 ‘재무실사’(FDD·Financial Due Diligence), ‘세무실사’(TDD·Tax Due Diligence), ‘법률실사’(LDD·Legal Due Diligence) 등으로 구성된다.

재무실사는 해당 기업의 영업이익 분석, 과거 자유 현금흐름 검토, 주요 자산 및 부채에 대한 검증 등이 포함된다. 초기 바이오 기업의 경우 재무실사보다는 사업실사의 중요성이 높다.

세무실사는 세금체납 또는 향후 발생할 세금 등에 대한 분석이 주를 이룬다. 법률실사는 소송 등 본계약 체결 및 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법률상의 규제 및 제한사항, 인수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 등에 대한 검토를 말한다.

사업실사와 재무실사, 세무실사는 회계법인이, 법률실사는 법무법인이 각각 담당한다. 사업실사의 경우에는 전략 컨설팅회사도 전문적인 팀을 구축하고 서비스하고 있다.
[홍순재의 자본시장 OVERVIEW] 바이오 기업 창업, 사업성 확인부터
<저자 소개>

[홍순재의 자본시장 OVERVIEW] 바이오 기업 창업, 사업성 확인부터
홍순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 상무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와 KDB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에서 이슬람채권 발행 업무와 투자은행(IB) 업무를 담당했다. 현재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에서 상무로 재직 중이다. 기업 M&A와 투자유치자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