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건강보험에 등재되지 않은 새로운 의료행위를 대상으로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는 제도로 2007년 의료법과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도입 당시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시행했고, 2010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이관됐다.

의료산업 육성 및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도입했다던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취지와 달리 중복, 과잉이라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따라서 15년 이상 규제개혁 아이템으로 꾸준히 지적되고 있지만, 실효적으로 개선되는 바는 없다고 한다. 답답한 노릇이다.

심의기간 단축, 실질적인 효과 있었나
2007년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도입 당시, 새로운 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약 595일 이상이 소요됐다고 한다. 장기간의 심의기간은 업체의 시장진출을 늦추고,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을 불리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관련 업체는 여러 차례 심의기간 단축을 요구했다.

이에 2014년 8월에 보건복지부는 품목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를 동시에 진행하는 ‘신의료기술평가 원스탑 서비스’를 시행했다. 당시 복지부는 해당 서비스를 통해 최소 3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제품의 출시기간 단축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관련 업계 측에서는 원스탑 서비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급여 결정 과정을 포함하지 않아 여전히 시장진출도 어렵고 기간의 단축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 후 2015년 11월에 개최된 ‘제4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바이오헬스산업 분야 활성화 방안’ 규제개선 건으로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통합운영’을 보고했다. 2016년 7월 이에 대한 후속조치로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통합운영’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시범사업 도입 전 개최된 설명회에서 복지부와 식약처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던 품목허가(식약처), 요양급여 대상여부 확인(심평원), 신의료기술평가(한국보건의료연구원) 대상 심의 등의 절차를 동시 진행하여 기존 최대 470일에서 280일로 기간이 단축될 것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2014년도의 ‘신의료기술평가 원스탑 서비스’와 2016년의 ‘의료기기 허가와 신의료기술평가 통합운영’ 방안은 순차적인 심의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점에서는 실질적으로 동일하다. 자연스럽게도 2018년에 개최된 의료기기 허가·신의료기술평가 통합운영 민원설명회에서 업체 관계자들도 원스탑 서비스와의 차이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심의기간이 단축된다고 발표됐지만, 실효성 없는 서비스와 통합운영으로 업계가 실제로 체감하는 바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2018년 7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신의료기술평가제도 개선을 포함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 계획을 발표하며, 신의료기술평가 대상 심의기간을 280일에서 250일로 단축하고, 보험등재심사를 동시에 진행해 전체 기간을 490일에서 390일로 단축하겠다고 보고했다. 한편 2019년 6월 관계부처는 ‘의료기기 규제혁신방안’ 이행 과제를 발표하며 2018년 7월과 동일한 계획을 발표했다.

신의료기기 시장진입기간 단축과 관련하여 정부가 발표한 규제개선 방안들을 살펴보면, 병렬적 심의와 심의기간의 단축 방안들이 아무 의미 없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제한적 의료기술제도 도입 7년…
근본적 문제 여전해

제한적 의료기술제도가 도입된 지 7년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의료기술평가의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보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혁신의료기술제도 또한 사전 심사를 통해 혁신성 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복되는 별도 평가트랙 도입은 기업들의 혁신 의지만 꺾을 뿐이다.

신의료기술평가제도는 문헌평가를 기반으로 심의가 진행된다. 문제는 3D프린팅 의료기기, 재활로봇 등 새로운 의료기술은 기존 연구 및 문헌이 부족하기 때문에 심의에 필요한 임상근거를 제출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었다. 이에 2014년 4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제한적 의료기술제도’를 도입했다.

제한적 의료기술은 안전성은 확인되었으나 임상적 유효성 등의 측면에서 연구가 더 필요하여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지 못한 의료기술 중 대체의료기술이 없는 질환이나 질병, 희귀질환, 말기 또는 중증 상태의 만성질환 등으로 신속히 임상에 도입할 필요가 있는 의료기술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진료를 허용하는 제도이다.

2018년 7월 복지부는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의 일환으로 혁신의료기술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근거 부족으로 로봇, 3D프린팅 융합 의료기술의 신의료기술평가 탈락률(82%, 2016년∼2018년 9월)이 높자, 문헌 고찰을 통한 유효성 평가 외 의료기술의 임상적 가치 및 의료기술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안전한 혁신의료기술이 의료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취지다.

그 후 2019년 3월에 인공지능(AI) 의료기술 등 6개 분야와 암 치료 등 4개 질환을 대상으로 혁신의료기술평가 분야 트랙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이어 2020년 11월에는 ‘신의료기술평가에 관한 규칙’ 및 관련 규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혁신의료기술 평가대상의 기술·질환 범위 확대를 발표했다. 기존 6개 기술에서 9개 기술로 확대되었으며, 질환 제한은 폐지됐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 도입 이후 2020년까지 제한적 의료기술로 통과된 기술은 15건, 혁신의료기술은 단 4건으로 승인율이 매우 낮다. 산업 및 연구 현장에서는 혁신의료기술은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에 하는 것임에도 ‘혁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어리둥절해한다. 혁신의료기술이 신의료기술평가보다 더 우수한 기술로 인식될 소지가 크다는 의견이다.

제한적 의료기술과 혁신의료기술은 모두 안전성은 확보된 상황에서 잠재성 여부와 신속한 임상 도입 필요 여부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된다. 다만, 잠재성과 신속성이 상호배타적인 기준이 아니다 보니, 두 제도의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이처럼 효과성이 낮고 모호한 개념의 혁신의료기술과 제한적 의료기술제도는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가져올 소지가 크다.

선진입–후평가? 선사용 - 후평가?
새로운 의료기술의 시장진입이 지연될수록 관련 업계는 산업경쟁력을 잃는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전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시장 출시가 최대 관건이다. 신의료기술평가가 문헌중심 평가인 만큼, 임상적 유효성을 확인할 근거가 부족하거나 확보 자체가 어려운 신기술은 시장진출이 어려웠다. 연구계와 업계에서는 시장 선점을 위한 ‘선진입-후평가’가 절박했다.

2018년 7월에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의 일환으로 안전성 우려가 적은 체외진단검사 분야에 대해 ‘선진입-후평가’ 방식을 발표했다. 관계부처는 국민보건에 필요한 의료기기가 조속히 의료현장에 활용될 수 있도록 ‘선진입-후평가’를 도입했으며, 시장진입기간의 단축을 기대한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2019년 10월에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제출한 ‘체외진단 의료기기 선진입 후평가 제도 진행상황’ 자료에 따르면, 시범사업에 참가한 업체는 단 1곳에 불과했다.

업체의 참여율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은 개선됐다고 발표된 제도가 사실은 실질적인 개선이 아니라 피상적인 표현의 변경이나 중첩적인 규제 구조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답답한 상황에서 2021년 2월에 더불어민주당 바이오헬스본부는 ‘바이오헬스본부 활동보고 및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보고회에서 바이오헬스본부는 시장진출 촉진을 위해 신의료기술평가 시스템을 ‘선사용-후평가’로 전면 개편하겠다고 또다시 제안하였다. 대상은 처치, 시술 등 환자에 대해 직접 시행되는 의료행위 중 임상문헌을 보유하지 않은 혁신의료기술이라고 한다.

2018년에 도입된 ‘선진입-후평가’와 2021년에 추진되고 있는 ‘선사용-후평가’는 대상 기술만 다를 뿐 시장진출 촉진을 위해 시장에서 사용 후 평가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동일하다.

연구계와 업계의 절박한 입장을 조롱하듯, 지난 3년간 대상 기술이나 행위들을 바꿔가면서 개선방안이나 실적 숫자만 허공에 써놓아가고 있다. 실질적인 변화는 거의 없다. 규제개혁은 지난 10여 년간 사실상 한 치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김태윤의 정책프리즘] 신의료기술평가제도, 근본적인 문제 여전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