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수와 팬들 사이에서만 쓰는 특별한 말인데, 다른 곳에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최근 한 네일 전문 브랜드가 '보라해'라는 상표를 출원하자 방탄소년단(BTS) 팬이 상표 출원을 막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다.

'아미'로 불리는 BTS 팬들은 '보라해'(I purple you)라는 말이 BTS의 상징적 단어로, BTS와 전세계 팬들 사이에서 '사랑한다'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며 상업적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익명 연예 커뮤니티에는 "간단한 검색만 해봐도 이 표현이 팬들 사이에서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수 있다"며 "연예인과 팬들에게 소중한 표현을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 불쾌하고, 부당한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 같다"는 글이 게시됐다.

네일 브랜드는 BTS 팬들의 거센 반발에 결국 출원을 취소하고 사과문도 게시했다.

[SNS세상] 보라해·진득해·호랑해…아이돌 팬덤 유행어, 소유권은 누구?
아이돌을 비롯한 연예인과 팬덤 사이에서 독특한 표현이나 유행어를 사용하는 현상이 확산하면서 상업적 이용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내 가수 ○○해"…친밀감·소속감 강화 효과
최근 라이브 방송이나 애플리케이션(앱) 등을 통한 연예인과 팬 간 소통이 늘어나면서 팬덤별 특별한 표현을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되고 있다.

BTS와 아미는 '보라해', 데이식스와 팬클럽 '마이데이'는 '진득해'라는 표현을 사랑하다란 의미로 이용하고 있다.

세븐틴 팬클럽 '캐럿'은 세븐틴 멤버 이름과 사랑해, 좋아해를 합성한 '호랑해', '우아해' 등을 사용한다.

팬들에게 해당 표현은 소속감과 친밀감을 강화해주는 효과도 있다.

[SNS세상] 보라해·진득해·호랑해…아이돌 팬덤 유행어, 소유권은 누구?
하지만 연예인과 팬덤 사이에서 암호처럼 사용하는 각종 표현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서 소유권을 두고 갈등이 생길 조짐도 보인다.

연예인이나 소속사, 팬덤이 '보라해' 등 표현을 상표 출원하거나 정식 등록하지 않아 법적으로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색상 명인 보라에 '~하다'라는 어미를 붙인 '보라해'는 BTS 관련 프로모션이나 행사에 주로 사용됐고 일반적으로는 활용되지 않는 점에서 BTS와 아미의 권리가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을 뿐이다.

[SNS세상] 보라해·진득해·호랑해…아이돌 팬덤 유행어, 소유권은 누구?
온라인 커뮤니티 아이디 'I******'은 "솔직히 팬이 아니면 (그 표현을) 모를 수 있지 않냐"며 "법적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것까지 양보해줘야 하냐"고 반문했다.

정식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단순 표현이 일부 연예인과 팬 사이에서 사용된다는 것만으로 다른 이들의 활용을 막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팬덤 내에서 자신들만의 표현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은 다른 집단과 구분해 '우리'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라며 "팬덤이라는 공동체의 응집력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이 자신들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지만 건강한 팬덤 문화를 위해 지나친 갈등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팬들 표현, 정당한 존중과 동의 필요"
전문가들은 보라해 상표권 등록 시도와 같은 일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해당 표현에 대해 대중이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도 조언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팬덤에서 사용되는 표현은 연예인과 팬 사이에 특정한 스토리나 이유를 바탕으로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다"며 "문화적 관점에서 이들이 소중하게 공유하는 표현을 동의나 협의 없이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평론가는 "이런 표현들이 법적 권리는 없더라도 그들에게는 가치와 말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맥락에 따라 해당 표현에 대한 권리를 존중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예인 등 당사자가 팬들을 위해 상표권을 선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왔다.

지킴특허법률사무소 김지환 변리사는 "특정 유행어가 저명한 연예인의 예명에 해당하거나 식별력이 없고 공익상 독점이 부적당하다면 타인의 상표 출원이 거절된다"며 "하지만 어느 유행어가 과연 예명에 해당할지 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소속사나 연예인이 상품마다 상표 등록을 해두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당부했다.

펭수부터 BTS까지…꽃길 막는 상표권 분쟁/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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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