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주의 IT카페] 3회

재수 시절 혈서 써가며 독하게 공부해 서울대 입학
삼성데이타시스템 입사 후 컴퓨터 언어 습득
카카오톡, 출시 1년 만에 가입자 1000만명 모아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위해 기부금 쓸 것"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오른쪽)이 카카오 대표 캐릭터 '라이언'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 [사진=카카오 제공]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오른쪽)이 카카오 대표 캐릭터 '라이언'과 포즈를 취하는 모습 [사진=카카오 제공]

카카오 설립자 김범수 의장이 자신의 재산 절반에 해당하는 5조원 규모를 재단 형태로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금액 자체도 역대 최대지만 '흙수저' 출신이 대기업 집단을 일궈내 수조원을 기부한 것은 전례가 없다.
한의대 진학 권유 뿌리치고 공대 진학
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연합뉴스]

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연합뉴스]

김범수 의장은 농사를 짓다 상경한 부모 밑에서 2남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막노동, 어머니는 식당 일을 한 탓에 김 의장은 할머니 손에 줄곧 자랐다. 그의 아버지는 정육 도매업으로 자리를 잡아 작은 집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이내 부도가 나 경제적 안정이 오래가지 않았다.

김 의장이 재수를 할 때 혈서까지 써가며 공부했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다. 당시 집안 사정에 비춰 보통의 노력으로는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손가락을 벴다. 돈이 없어 담배를 살 수 없자 낱개 담배 3개비를 사다 책상에 올려놓고 정말 힘들 때만 피자고 다짐했다. 시험이 다 끝난 후 책상에는 2개비가 남아 있었다.

집안 형편이 워낙 어려운 탓에 부모는 그에게 한의대 진학을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고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86학번으로 입학했다. 다섯 형제 중 대학에 간 건 그가 유일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며 학교를 졸업하고 석사까지 마친 그는 삼성데이타시스템(삼성SDS 전신)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 언어를 습득했다. 1993년 호암미술관 소장품 화상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고 1998년 정식으로 연구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PC방과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자 한양대 근처에 '미션넘버원'이라는 대형 PC방을 부업으로 개업했다. 당시로선 전국 최대 규모 PC방이었다. 그는 한 자리에서 모든 컴퓨터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효율성을 장착한 PC방 사업은 대성공을 거뒀다. PC 산업이 대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본 김 의장은 PC방 운영을 아내에게 맡기고, 1998년 9월 삼성SDS에 사표를 낸 뒤 같은해 연말 한게임을 창업했다.

김 의장은 2000년 한게임을 삼성SDS 동기였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의 네이버와 합병시키고 NHN 공동대표가 됐다. 2004년 NHN 단독대표를 거쳐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대표를 맡았다. 그러다가 2007년 8월 돌연 대표직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이폰 출시 보며 세상이 크게 변할 것이라 직감
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김범수 카카오 의장 [사진=카카오 제공]

미국에서 가족과의 생활에 지나치리만큼 충실했던 김 의장은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는 것을 보고 큰 변화가 오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PC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정보기술( IT) 생태계가 바뀔 것이라 예견했다. 그는 한창 준비하던 프로젝트까지 팽개치고 모바일 메신저 프로그램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카카오톡은 PC 메신저 일색인 시장에서 '모바일 메신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출시 1년 만에 100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끌어모았다.

김 의장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름에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주는 즐거움을 담고 싶었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초콜릿을 떠올렸고, 초콜릿 원재료인 카카오를 이름으로 낙점했다. 당초 영문명은 'Cacao'였지만 'Cacao'는 이미 등록이 된 도메인이었다. 김 의장은 한국(Korea)의 'K'를 따와 'Kakao'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김 의장 자신조차 카카오톡이 이처럼 폭발적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단기간 엄청난 이용자가 몰린 가장 큰 요인으로 '무료' 서비스였다는 점을 꼽고 있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동통신사의 문자 시스템은 건당 몇 십 원의 비용 지불은 물론 글자 수 제한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지녔다. 당시 엔누구도 이 제약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카카오톡은 인터넷 연결만 되면 글자 제한 없이 무제한으로 메시지 전송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을 탄생시켰다.

카카오는 쑥쑥 성장해나갔다. 2014년 포털 다음과 합병했고 플랫폼 기업으로의 체질 개선에 고삐를 당겼다. 엄청난 가입자 수와 편리성 덕분에 카카오는 일부 서비스에 유료 방식을 도입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수익 모델을 안착 시켰다. 카카오뱅크, 카카오모빌리티 등 야심 차게 준비한 서비스들이 연이어 성과를 냈다. 콘텐츠 수요가 높아지면서 카카오는 2019년 자산총액 10조 이상의 대기업 집단에 합류했다. 카카오톡이 탄생한지 꼭 9년 만이다.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통해 '기업가 김범수' 꿈 펼칠 듯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홈페이지 캡처

브라이언임팩트 재단 홈페이지 캡처

김 의장의 총재산은 10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난달 재단 설립을 위해 자신과 케이큐브홀딩스가 보유한 카카오 주식 432만1521주를 매각해 5000억원 상당의 현금을 마련했다.

재단 이름인 브라이언임팩트는 김 의장의 영어 이름 '브라이언'에서 따왔다. 브라이언임팩트 재단은 허가 기간까지 대략 한 달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함께 개설한 임시 홈페이지는 재단이 출범하면 공식 홈페이지로 바꿀 계획이다.

김 의장은 지난 2월 신년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3월에는 자발적 기부 운동인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의 220번째 기부자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2월 기부금 사용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사내 간담회 자리에서는 "기부금을 묵혀두는 개념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바로 써나가고 싶다"며 "1년이면 1년 등 단위를 정해 몇천 억원 수준을 쓰는 구조로 가고 싶다.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몇 가지 사회 문제라도 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운영 방식을 귀띔했다.

이어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디지털 교육 격차 등으로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인공지능(AI) 인재들에 관심이 있다"며 "엔지니어, AI 인재 양성을 하이브리드로 할 필요가 있다. 인재 양성을 위한 AI 캠퍼스도 고민 중이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으로도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회사 경영보다 회사 사람들에, 무겁고 중요한 일보다 사소하고 쓸데없는 소재에 관심을 더 보인다는 그는 이제 사회공헌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카카오가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는 '더 나은 세상'이다. 가장 좋아하는 19세기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에서 구절을 가져왔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고 떠나는 것"이 그의 새로운 도전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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