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신 업계 "우선 상황 예의주시해야"…'신중론'이 지배적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지재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국내 백신 생산 증가 기대가 커지고 있으나 업계는 "당장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6일 국내 백신 업계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코로나19 백신 지재권 면제를 지지한다고 발표한 데 대해 우선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지재권 면제가 언제 시행될지, 특허에 대한 보호를 일시 유예한다면 그 기간은 얼마나 될지 등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화이자, 모더나 등 제약사가 미국 정부의 이런 방침에 동의할지, 동의한다면 어느 수준까지 특허 내용을 공개할지도 불투명하다.

특히 '지재권 면제'가 곧 '기술이전'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업계는 강조했다.

코로나19 백신의 특허 등 지재권을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건 쉽게 말해 다른 제약사의 복제약 생산을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오리지널 의약품을 개발한 제약사가 특허권 행사를 포기한다고 해서 이 제품을 개발하는 기술과 설비 노하우를 경쟁사에 모두 공개하거나 알려주지는 않는다.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특허를 보호해주지 않겠다는 의미가 곧 다른 제약사에 대한 기술 이전을 뜻하지 않지 않느냐"며 "지재권을 면제해준다고 해도 같은 백신을 단기간에 생산하기는 어렵다"고 일축했다.

서울 시내 상급 종합병원의 한 교수 역시 "명품 가방에 쓰는 가죽과 도안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며 "제조 공정과 기술, 생산설비가 갖춰져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화이자, 모더나 등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기업이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지재권 면제 협상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 입장에서는 협상을 지연할 여지가 다분하다"며 "단기적으로 봤을 때 국내 백신 업계에 미치는 직접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조치는 코로나19 백신이 인류가 공유해야 하는 기술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상징적' 의미가 더 크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화이자, 모더나 백신을 개발, 생산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설비를 완벽히 갖추고 있는 기업이 없는 것도 한계다.

백신 지재권 면제가 신속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모더나와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플랫폼으로 개발된 제품이어서 관련 기술과 생산 설비를 보유한 기업만 생산할 수 있다.

전세계에서 mRNA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백신은 코로나19 백신이 유일하며, 국내에서는 mRNA 백신을 개발하거나 생산해온 기업이 없다.

더욱이 지재권 면제가 '일시적'일 가능성이 있어 국내 기업에서 mRNA 백신 개발과 생산설비를 준비하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효용을 내지 못할 수 있다.

만약 mRNA 백신 개발과 생산을 준비하고 완료한 시점에 지재권 면제 기간이 종료되면 그동안의 개발이 수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합성항원 방식인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은 지재권이 면제되면 국내에서 생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는 주장도 나오지만, 이때는 '경제적 득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합성항원 방식의 백신은 개발과 생산에 성공한 기업이 다수이기 때문에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생산에 뛰어들 수도 있어서다.

의약품의 특허가 풀려 복제약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면 개별 기업이 가져가는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므로 기업에서는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에서 노바백스의 코로나19 백신을 위탁생산(CMO)하는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우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이 나온 후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재권 면제' 국내 백신 생산 호재 되나…업계 "영향 제한적"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