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동일본크로스 스테이션은 AI 자판기 도입으로 매출 증대 효과를  내고 있다.
JR동일본크로스 스테이션은 AI 자판기 도입으로 매출 증대 효과를 내고 있다.
일본 도쿄역. 하루 4000여 편의 열차가 오가고 일일 유동인구만 140만 명에 이르는 명실상부한 도쿄의 현관입니다. 도쿄역의 7, 8번 게이트는 유동인구가 많은 출입구로 유명합니다. 이곳의 자판기를 운영하는 JR 동일본 크로스스테이션(구 JR동일본 워터비즈니스)에 깜짝 놀랄 일이 생겼습니다. 게이트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월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무려 39.5%(지난해 12월~올해 1월 기준)나 늘었기 때문입니다. 크로스스테이션은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으로 AI를 활용한 자판기를 도입했습니다. 3월 현재 1600대의 자사 브랜드 '에큐러' 자판기를 AI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7, 8번 게이트의 자판기도 이런 AI를 기반으로 한 자판기였습니다. 자판기 운영자는 고객들이 찾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맞춘 순서로 자판기 진열을 바꿨습니다. 겨울철 따뜻한 음료수와 된장국 캔을 전략적으로 넣었습니다. 그 결과 대박을 터트린 것입니다.

운영 자판기 60%에서 흑자

크로스스테이션이 운영하는 자판기는 주로 역내에 있는 자판기입니다. 도쿄 거리에 있는 자판기 매출은 월 6~7만 엔(61~71만원)이지만 역내 자판기 매출은 월 60만엔~70만엔이나 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자판기 하나에 최대 42개의 제품을 넣을 수 있습니다. 이 중 70%를 회사가 지정한 상품을 배치하고 30%를 운영자들이 재량으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 회사는 이 30%의 종류에 따라 각 자판기의 매출이 크게 달라지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숙련된 운영자들은 흡연실이 근처에 있으면 커피를 많이 배치했습니다. 흡연 소비자들이 커피를 많이 마신다는 점을 파악한 것입니다. 여성전용 주차장 근처의 자판기에는 건강 계통의 음료를 넣습니다. 숙련자들이 담당하는 자판기 매출이 높고 초보자들이 운영하는 자판기가 잘 안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정작 크로스스테이션은 연간 2억 개 이상의 구매상품의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각 사업자와 긴밀히 연계해 상품 선정 등에 활용했지만 엑셀 수준의 분석에 한계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AI를 도입해 자판기 배치 분석을 다시 설계하기로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어떤 제품이 어떤 자판기에 적합하고 어느 시점에 교환하면 좋은지를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매일 자판기 내용물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한번 상품을 넣고 교환할 때 잘 팔리는 상품과 안 팔리는 상품을 함께 바꿀 수있도록 개수를 조정하는 최적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AI의 할 일이었습니다. AI는 기상 시스템을 활용해 계절 변화에 따라 따뜻한 음료와 찬 음료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포트폴리오 구성도 제시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숙련 운영자들과 겨뤄보자는 계산도 있었습니다.

AI 자판기로 매출 증가한 사례
AI 자판기로 매출 증가한 사례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쓰루미역 서쪽 광장에 설치돼있는 자판기는 원래 캔 커피가 잘 팔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자판기에 비해 많은 블랙 캔커피를 배치했지만, AI는 추가로 더 많은 캔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운영자가 자판기에 블랙커피를 배치한 결과 12월~1월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11.6% 증가했습니다. 무엇보다 운영자의 고정 관념을 없애는 데 AI가 기여했습니다. 구리하마 역의 자판기에선 AI의 지시대로 코코아와 라떼 등 달콤한 음료를 추가했습니다. 그 결과 이 기간 매출이 20.4%나 증가했습니다.

운영자의 고정관념 없앤 AI

이 제품들이 그렇게 증가한 이유를 운영자들은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만 AI의 추천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AI는 그저 선입견과 편견없이 데이터로만 해석하고 예측했습니다. 운영자로 봐서는 생소한 선택이지만 매출은 늘어났습니다. 이것이 AI 선택의 묘미입니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시장이 열리고 생태계가 바뀌는 것입니다.

AI를 선택한 자판기의 60%가량에서 매출 증가가 발생했지만, AI 도입으로 판매가 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든 곳도 있다고 합니다. 이 회사는 그 이유로 AI의 지시대로 운영자가 자판기 내용을 바꾸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운영자의 오랜 습관과 경험을 바꾸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AI는 결국 운영자를 보완하는 도구입니다. 동일본 크로스스테이션은 지난달 앱으로 주문하면 지정된 시각에 스페셜 커피를 지하철 역내 보관함에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고객이 커피숍에서 기다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원두커피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앱에서 자신이 선호하는 커피를 고르면 됩니다. 물론 AI가 자동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도록 커피를 설계하는 게 특징입니다. 회사 측은 앞으로 역내 고객의 동선을 파악해 그 속에서 매출을 최대화하는 AI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오춘호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