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을 죽이기 위해 항생제를 써도 잘 듣지 않는 ‘항생제 내성’은 점점 심각해지는 문제다. 균이 한번 내성을 가지면 이전보다 더 강하고 고약해진다. 인간이 진화하듯 세균도 진화하기 때문이다. 2016년 영국 정부 분석에 따르면 2050년께 내성균에 의한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연간 1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코로나19 사태로 항생제 사용이 늘어나면서 내성 증가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포만큼 작은 '로봇 의사'…내성 걱정 없이 세균 잡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연구재단은 성균관대 김경규 의학과 교수·이정헌 신소재공학부 교수, 유상렬 서울대 식품공학과 공동 연구팀이 ‘활성산소’로 내성균을 골라 죽이는 나노미터(㎚·1㎚=10억분의 1m) 크기의 로봇을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항생제는 세균 내 단백질을 표적으로 한다. 항생제에 노출된 세균은 스스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표적이 된 단백질 구조를 바꾼다. 그래서 세균의 세포막을 깨뜨려 죽이는 방식의 항생제가 개발됐지만, 이 역시 내성균 발생을 막진 못했다.

김경규 교수는 “내성균 문제는 감염질환 치료를 항생제 개발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도 있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항생제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항생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화학적 방식이 아니라 물리적 힘으로 세균 세포막을 깨면 내성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래서 고안한 게 항생제 역할을 하는 나노로봇, 이른바 ‘항생나노봇’이다.

먼저 산화철 나노입자에 단백질 ‘엔도라이신’을 코팅했다. 엔도라이신은 박테리오파지(세균을 먹어치우는 바이러스)가 세균에 몰래 기생할 때 쓰는 수단이다. 우주선이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하듯 박테리오파지가 세균에 안착할 수 있어 ‘도킹 단백질’로도 불린다. 균이 있는 곳을 감지해 달려가 결합할 수 있는 로봇 근육(액추에이터)과 센서를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황색포도상구균 내성균을 쥐에 감염시킨 뒤 항생나노봇을 넣고 전기 신호를 가했다. 그때 산화철 나노입자에서 활성산소가 뿜어져나와 세균 세포막을 효과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현미경으로 확인했다.

연구팀 관계자는 “내성균이 99% 이상 사멸됐다”고 말했다. 이어 “철 나노입자를 실리콘 및 단백질로 코팅했고, 피부 미용에 사용되는 낮은 전기자극으로 항생나노봇을 구동할 수 있도록 했다”며 임상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나노로봇은 인체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아 임상에 진입하려면 생체 적합성 등 여러 단계의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 결과는 나노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스몰’에 실렸다.

박종오 전남대 교수가 이끄는 한국마이크로의료로봇연구원은 고형암 진단과 치료가 가능한 직경 100㎚ 크기 의료용 나노로봇을 개발 중이다. 암을 찾아가는 표적 물질로 엽산을 썼다. 왕성하게 영양분을 먹어치우는 암세포 대부분 표면에 엽산 수용기가 많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리고 근적외선을 쪼였을 때 열과 약물을 함께 방출하도록 금 입자와 자성 나노입자, 폴리도파민과 항생제를 넣었다.

아직 동물시험 단계로 쥐와 토끼를 대상으로 연구하고 있다. 공동 연구 중인 김규표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아직 개념 증명 단계지만 이 기술이 실현되면 암 조직으로의 약물 전달을 극대화하면서 주변 정상 조직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해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