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풍렬 삼성서울병원 데이터혁신추진단장
이풍렬 삼성서울병원 데이터혁신추진단장
50대 중반 남성인 A씨. 그는 건강검진 결과 폐에 직경 1 cm 미만 크기의 결절이 보여 대학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별일 아니겠지’라고 스스로 위로해봤지만 한 편은 걱정도 많이 됐다. 이후 A씨는 폐 결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디서 진료를 받아야 할지 알아보느라 많이 고생했다. 주변에서 걱정할까 봐 여기저기 묻기도 어려웠다. 결국 초기 폐암으로 진단 받은 이후 수술을 받고 경과를 지켜보는 A씨가 요즘 가장 힘들어 하는 일은 병원을 방문하는 것이다. 검사, 외래 일정을 끝내고 나면 진이 빠지고, 관련된 행정 절차는 너무 복잡하다. 검사 결과 확인을 위해 병원을 다시 방문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위에서 보듯 환자가 경험하는 ‘질병의 시간’은 길고 험하다. 보통 본인의 증상과 관련된 진단명, 그리고 이를 잘 치료할 수 있는 의료진을 찾을 때부터 맞춤형 정보의 부재를 절감하게 된다. 여러 경로를 통해 진료예약을 한 이후, 검사, 수술, 처치를 받고 나서는 귀가해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린다. 이 중 검사, 진단, 처치와 같은 의료 행위는 의료진이 주도적으로 결정하지만 그 전·후 사이의 모든 순간에 도움이 필요하다. AI와 디지털헬스의 도움이 간절한 순간이다.
삼성서울병원은 환자의 경험을 향상시키고, 질병을 이겨내는 과정을 돕는 차세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환자 스스로 증상에 기반해 진단을 찾아보고 좋은 의사와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능형 챗봇은 환자들이 가장 먼저 필요로 하는 AI서비스다. 뿐만 아니라 잘못된 예약을 통해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다. 환자가 내원할 때에는 주차장에서 빈 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도록 실시간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안내한다. 안정적인 모바일 PHR (Patient Health Record) 시스템은 환자들 스스로 의료 정보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처방전 출력, 병원비 결제, 나아가 환자들에게 무척 중요한 보험 신청까지 한 자리에서 가능도록 돕는다. 삼성서울병원이 추구하는 AI는 환자들이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병원이 추구하는 AI는 의료진이 환자의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중증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환자의 중등도를 복합적으로 판단해 알람 피로도를 줄이고, 낙상 등의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알고리즘 역시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많은 시간을 쓰는 물품 및 재료 관리는 AI와 로봇을 활용한 지능형 물류체계를 구현해 획기적으로 줄여나가고 있다. 의료진이 본업에 충실할 수 있도록 AI가 돕는 것이다. 그러나 AI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은 역시 질환의 진단과 처치 관련 분야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에서부터, 암, 패혈증, 퇴행성 신경계질환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의 질환영역에서 AI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데이터로는 PGHD (Patient Generated Health Data)에서, 영상, 시그널, 유전체, EMR 데이터, 나아가 음성, 보행과 같은 특수 데이터 등이 활용되고 있다. 새로운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도 역시 활발하다. 삼성서울병원 AI연구센터 (정명진 교수)를 필두로, 의학통계연구센터 (김경아 교수), 삼성융합의과학원의 디지털헬스학과 (장동경 교수), 의료인공지능연구소 (서성욱 교수) 등 여러 부서가 의료 AI 연구를 하고 있다.
AI 연구는 다양성을 보일 수 있다. 반면 데이터 관리 거버넌스 및 임상적용은 일관성이 중요하다. 삼성서울병원은 체계적인 준비를 거쳐 지난 1일 데이터혁신추진단을 구성했다. 이를 통해 추진단 산하의 디지털혁신센터로 데이터 관련 부서를 모두 통합했다. 전략·운영·서비스팀으로 데이터 활용 프로세스를 반영한 화학적 융합도 이끌어 냈다. 의료데이터가 입력되는 표준, 용어 전문가는 물론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전문가, AI 구축 및 현장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임으로써 병원이 지향하는 데이터 생태계인 클리니컬 데이터 레이크(CDL)를 구축할 원동력이 마련됐다. CDL이 제공하는 고품질 데이터 위에 세계적 수준의 AI들이 탄생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첨단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