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회장 / 사진=김병언 기자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회장 / 사진=김병언 기자
‘거화취실(去華就實·겉치레를 삼가고 실질을 추구한다)’. 지난해 작고한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의 좌우명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경구를 지키는 데 신 회장은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돈 벌었다고 폼을 잡거나, 외형 경쟁을 하느라 내실을 버리는 건 그의 사전에 없었다. ‘재계 서열 5위 그룹’은 거화취실을 실천한 데 따른 결과물이었다.

신 회장과 비슷한 경영자를 제약·바이오업계에서 찾는다면, 강덕영 한국유나이티드제약 회장이 첫손에 꼽힐 만하다. 강 회장도 신 회장만큼이나 겉모습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본사 사옥만 봐도 알 수 있다. 서울 논현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이 회사 본사를 처음 방문한 사람 중 상당수는 ‘제대로 찾아온 게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소를 다시 찾아본다고 한다. 연매출 2000억 원이 넘는 코스피 상장사의 사옥치고는 너무나도 아담하기 때문이다.

강 회장은 “1987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세울 때 사무실이 마땅치 않아 당시 내가 살던 집을 사옥으로 삼았다”며 “이후 주변 집을 몇 채 더 매입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했다. 그는 ‘번듯한 사옥 하나 마련할 때가 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폼 잡는데 돈 쓸 생각 없다”고 받아쳤다.

강 회장은 “유나이티드제약에는 ‘돈 쓰는 순서’가 있다”고 했다. 투자 1순위는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 본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사안인 만큼 여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 회사의 R&D 투자비는 매출의 12~13%에 달한다. 오는 11월 세종시에 ‘선진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cGMP)에 맞는 항암제 공장을 완공하는 등 생산시설 확충에도 큰돈을 쓴다. 2순위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유나이티드 갤러리와 경기도 곤지암 역사박물관이 태어난 배경이다.

강 회장은 “R&D와 공장 투자, 사회공헌활동을 하고도 돈이 남으면 사옥을 짓는 데 쓸 계획”이라며 “돈을 쓸려면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본사를 지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활동에 목돈을 쓰는 이유에 대해선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목표 중 하나는 ‘거목과 같은 회사’가 되는 것”이라며 “주변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커다란 나무처럼 이웃에 도움을 주는 회사가 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거화취실로 강 회장이 거둔 결과물은 ‘수익성 높은 제약사’란 타이틀이다. 지난해 매출 2160억 원, 영업이익 401억 원으로 영업이익률이 18.6%에 달했다. 높은 수익을 안겨준 일등공신은 개량신약이다. 강 회장은 개량신약 투자를 꾸준히 늘려 현재 38%인 개량신약 매출 비중을 2023년까지 50%로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개량신약 명가’는 그가 설계한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중간 정거장일 뿐이다. 궁극의 목표는 ‘신약 명가’다. 강 회장은 “현재 진행 중인 3개 신약 프로젝트가 순항하고 있다”며 “‘신약 명가’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투자를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강 회장과의 일문일답.


멕시코 대형계약 추진… 중남미 진출 교두보 마련

Q. 올해 경영 목표는.
A. 높게 잡지는 않았다. 매출은 2300억 원을 넘기는 걸 목표로 잡았다. 두 자릿수 성장은 쉽지 않다고 봤다. 영업이익도 작년보다 2~3% 늘리는 정도로 설정했다. 올해 내수시장이 만만치 않을 걸로 보기 때문이다. 6월 이후 경기가 꺾일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고 인플레이션이 올 것 같다. 그러면 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게 된다. 제약산업도 의외로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지갑이 얇아지면 병원도 덜 찾는다. 웬만큼 아픈 건 참기 때문이다. 그러면 전문의약품 매출도 줄어들게 된다. 건강기능식품이나 일반의약품은 말할 것도 없겠지.

Q. 불경기를 예상한다면 대응 전략이 있나.
A. 길이 막히면 돌아가야 한다. 내수가 쪼그라들면 수출로 만회해야 한다. 올해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해외무대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해가 될 것이다.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멕시코 정부 고위인사들이 회사를 방문해 의약품 공급을 협의했는데, 항암제 19개 품목을 구매하겠다고 하더라. 성사되면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매년 수백억 원의 매출을 추가로 거두게 된다. 멕시코 정부가 일단 6월까지 20만 달러 규모 의약품을 먼저 공급해달라고 해서 비상 생산계획을 세웠다. 오는 11월 세종시에 짓고 있는 항암제 공장이 완공되면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이 수출길에 오르게 된다.

Q. 멕시코 정부가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점찍은 이유는.
A. 멕시코 의약품 시장은 마피아가 휘어잡고 있다고 한다. 멕시코 정부는 이런 구조를 깨기 위해 해외 제약사들로부터 의약품을 직접 구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멕시코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이를 위해 인도, 프랑스, 독일을 거쳐 한국을 찾았다. 코트라(KOTRA)가 중간에 다리를 놔줬다. 멕시코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유나이티드제약 제품에 대해 만족한다고 했다. 다른 나라 제품과 비교할 때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란다. 좋은 품질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는 얘기다. 멕시코는 중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연매출 15조 원에 연평균 성장률이 10%가 넘는다. 멕시코를 통해 항암제 수출이 본격화되면 다른 중남미 국가로 확장하기도 수월해진다.

Q. 다른 국가 수출 상황은.
A. 미국에도 항암제를 수출할 계획이다. 미국 제약사인 아보메드를 통해 판매한다. 관련 계약은 이미 맺었다. cGMP에 맞게 짓고 있는 항암제 공장이 올 11월 완공된다. 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이 내년부터 미국에 수출된다. 동남아시아 수출도 늘릴 계획이다. 지난해 필리핀에서 378만 달러, 베트남에서 322만 달러어치를 판매했다. ‘미얀마 사태’가 변수이긴 하다. 전체적으로 지난해 수출액이 2000만 달러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50% 이상 늘리는 게 목표다. 수출로 내수 부진을 메우겠다는 의미다.

개량신약 매출 비중 38→50% 목표

Q. 2016년 이후 영업이익률이 15%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A. 개량신약에 집중한 덕분이다. 개량신약의 수익성은 제네릭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제네릭은 경쟁제품만 수십 개에 달한다. 개량신약은 경쟁이 훨씬 덜하다. 제형이나 복용 편의성을 개선한 만큼 수요도 많다. 겉치레 없이 실속 위주로 경영하는 것도 높은 영업이익률을 내는 데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미팅이 줄어들면서 각종 비용이 줄어든 게 높은 영업이익률을 내는 데 도움이 됐다.

Q. 높일 생각인가.
A. 올해 목표는 40%다. 2023년에는 5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나머지 절반은 제네릭(40%)과 신약(10%)이 맡게 될 것이다. 2010년 내놓은 소염진통제 ‘클란자CR’을 시작으로 13개 개량신약을 차례로 내놓았다. 현재 10개 개량신약을 추가로 개발하고 있다. 5년 안에 개량신약 수가 20개로 늘어날 것이다. 개량신약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신약을 개발할 생각이다. 개량신약은 순환기계 질환으로, 신약은 항암제로 각각 초점을 맞췄다. 신약의 포커스를 항암제로 맞춘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주력 품목이기 때문이다. 항암제는 현재 회사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Q. 개량신약에 집중하게 된 이유가 있나.
A. 2005년 이스라엘 제약사인 테바를 방문했던 게 계기가 됐다. 테바는 개량신약 분야의 글로벌 최강자다. 테바 본사를 둘러보니, 특허 관련 사무실이 건물 2개 층을 차지하더라. 개량신약도 특허로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제네릭은 끝났다’는 걸 실감했다. 개량신약은 복제약보다 개발하기는 어렵지만 수익성이 좋고, 신약보다 수익성이 낮지만 개발하기가 쉽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규모의 제약사가 집중하기에 딱 좋은 분야다. 앞으로도 개량신약을 강화해나갈 계획이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2005년 방문했을 때 테바 측 고위 인사가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사겠다”고 제안했었다. 우리가 중동에 수출한다는 게 탐났던 것 같다. 물론 단칼에 거절했다. ‘산업보국’을 하려면 갈 길이 먼데, 어떻게 팔 수 있겠나.

Q. 해외 오리지널 의약품을 하나도 판매하지 않고 있는데.
A. 해외 오리지널 의약품을 들여와 국내에서 판매하는 ‘도입 의약품’은 없다. 이건 ‘남의 약’이다. ‘우리 약’이 아니다. 아무리 번듯해도 이건 남의 집에 전세로 들어가는 꼴이다. 글로벌 제약사가 ‘내가 입주할 테니 나가달라’고 하면 언제든 나가야 한다. 실제 그런 사례도 많지 않았나. 게다가 단순 판매대행이기 때문에 수익성도 낮다. 앞으로도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보유의약품 리스트에 도입 제품은 없을 것이다.

“별도 법인으로 4세대 항암제 개발”

Q. 신약 개발은 어떻게 하고 있나.
A. 항암제 ‘UN04’를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개발 중이다. 단백질의 일종인 폴로유사인산화효소1(PLK-1)을 억제해 암세포의 증식과 전이를 막아주는 치료제다. PLK-1은 증식 중인 성체 조직이나 분열 중인 세포에서만 발현되는 단백질이다. 동물실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유방암을 적응증으로 임상 1상 시험을 하고 있다.

다른 신약 후보물질인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 치료제 ‘UN03’은 연구자 임상 중이다. 간경화를 막아 간암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약이다. 이건 직접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허가를 받아 직접 판매하면서 외국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화학연구원과 함께 새로운 4세대 항암제도 개발하고 있다. 이르면 4월 별도 법인을 세운 뒤 외부투자를 유치해 글로벌 임상을 진행할 계획이다.

Q. 코로나19 치료제도 개발 중인데.
A. 흡입제 형태로 만든 코로나19 치료제 ‘UI030’이 임상 2상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임상 2상을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했는데 현재 동물실험 및 임상 1상 등의 실험 자료를 보완 중이다. 올 6월이면 임상 2상 IND 허가가 나올 것이다. 내년 초 임상 2상을 마치고 조건부 허가를 거쳐 상용화하는 게 목표다.

Q. 기존 코로나19 치료제와 차별화되는 경쟁력은.
A. 일단 UI030은 경증부터 중증 환자에게까지 사용할 수 있다. 치료제를 쓸 수 있는 대상자가 많다는 얘기다. 코로나19 항체치료제는 1회 투여 비용이 100만 원이 넘는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이 개발하는 치료제는 5만 원 정도가 될거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개인부담금은 1만~2만 원에 불과하다. 일단 가격경쟁력은 충분하다. 유나이티드제약이 쌓은 개량신약 노하우를 적용해 두 가지 물질을 섞어 흡입제로 만들고 있다. 6년 동안 특허를 보호받는 만큼 다른 제약사가 카피하지 못한다.

안정적인 재무구조로 신약 개발 외길

Q. 생산시설은 어디에 있나.
A. 세종에 1공장과 2공장이 있다. 1공장은 주사제, 태블릿, 캡슐 등의 제형으로 된 의약품을 만든다. 11월 중 완공되는 2공장은 흡입제와 항암제 생산을 담당한다. 해외에는 베트남에 공장을 두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주요 수출국에 생산공장을 둘 계획이다.

Q. 건강기능식품 등 신사업 투자 계획은 없나.
A.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본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어느 순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재무적으로 탄탄하다고 자부한다. 대출액보다 예금액이 600억 원가량 더 많다. 외화예금만 7000만 달러가 넘는다. 부채비율은 27%에 불과하다. ‘외환 위기’가 다시 와도 문제없다.
건강기능식품이나 의료기기 등으로 다각화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건기식은 매출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이익 확대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다른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대신 R&D에 집중하겠다. 다만, 바이오벤처 투자는 검토하고 있다.

Q. 요즘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화두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문화 사업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을 잘하는 제약사로 알려져 있다.
A.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의 경영목표 가운데 하나가 ‘거목과 같은 회사’다. 큰 나무가 돼 사회를 위한 그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회공헌에 대한 개념조차 희미했던 1970~1980년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은 ESG 가운데 사회공헌에 집중할 계획이다. 경기도 곤지암에 세운 박물관은 본사보다 크다. 2009년 유나이티드문화재단을 설립하고 2018년엔 역사자료 전시관인 ‘히스토리 캠퍼스’를 개관했다. ‘사업보국’의 마음으로 한국유나이티드제약을 이끌겠다.
[기업 대해부 - 인터뷰] 개량신약 넘어 ‘신약 명가’ 꿈꾸는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강덕영 회장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