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언트와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한국에선 보기 드문 NRDO 회사다. NRDO란 자체 연구를 통해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대신 유망 물질을 외부에서 가져다 임상 등 개발에 집중하는 사업 방식이다. NRDO 사업 방식을 처음 도입한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에게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궁금한 점은 뭘까. 이들의 대화를 글로 담았다.

이정규 대표(이하 이) 창업 14년째를 맞았습니다. 7년 동안 다녔던 미국 머크(msd)를 그만두고 공공기관인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스핀오프 기업 대표로 온 게 첫 시작이었습니다. (파스퇴르연구소는 2004년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협력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남기연 대표(이하 남) 관료화된 msd의 의사결정 방식이나 결정 속도에 조금씩 실망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회사가 커지다보니 나타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었죠. 그러던 중 회사를 창업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큐리언트를 선택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올 때 보통 큰 제약회사로 오는 연구자가 많잖아요. 스타트업으로 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 스스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회사에 가고 싶었습니다. 후보물질 등을 가져올 수 있는 기관(모기업인 파스퇴르연구소)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연락이 먼저 왔죠. 하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회사인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전 세계 가장 큰 회사 중 한 곳에서, 가장 작은 회사로 간 것이네요.

후보물질조차 없는 회사였습니다. 법인 등록증과 자본금 5000만 원만 있었죠. 처음엔 조금 놀랐습니다.(웃음)
(큐리언트는 설립 당시 파스퇴르연구소가 지분 100%를 가졌다. 현재는 약 12%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왼쪽)와 이정규 바이오 브릿지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왼쪽)와 이정규 바이오 브릿지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NRDO를 도입하기까지
자금 모금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창업을 한 2008년엔 미국발(發) 금융위기 때문에 자금 모금이 쉽지 않았습니다. 후보물질이 없으니 더욱 어려웠죠. 생존을 위해선 NRDO 방식의 사업모델을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NRDO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죠?

그렇죠. 처음엔 네트워크 연구개발(R&D)이라고 불렀습니다. 대부분 임상 2상 정도의 후보물질을 가져와 전문가 3~4명이 상업화를 한 뒤에 되파는 게 많았습니다.

큐리언트는 전임상이나 후보물질 발견 단계에서 기술도입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희도 그렇고요.

맞습니다. 다들 이런 사업모델에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전통의 바이오 기업과도 사업모델이 달랐죠. 하지만 해외에서도 조금씩 비슷한 사업모델을 채택하는 사례가 나타났습니다. 미국 일라이릴리가 대표적입니다. 신약 후보물질 개발 및 초기 임상만을 위한 독립 연구기관인 코러스(chorus)를 운영하고, 여기서 나온 물질을 일라이릴리가 가져와 임상을 진행하는 겁니다.

공공기관의 스핀오프, 장점도 존재해
공공기관에서 스핀오프한 회사라는 점도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습니다.

공공기관의 자회사라는 점 때문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바이오업계에서 좋은 직원을 데려오려면 스톡옵션 등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주요 이사진이 공무원 중심이다 보니 스톡옵션 주는 걸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스톡옵션 부여를 설득하는 데에만 1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이 바뀌고, 이런 과정을 반복했죠.

바이오벤처가 피할 수 없는 영업 적자에 대해선 어떻게 보던가요.

다행히 그 부분에 대해선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연구기관은 비용을 쓰는 부서이고, 그 밑에 있는 자회사인 큐리언트에도 큰 압박을 가하진 않았습니다.

공공기관의 자회사라는 게 도움이 된 사례도 있나요.

물론이죠. 급하게 처리하는 실험 등은 연구소에 부탁할 수 있고, 다른 회사에 비해 신뢰감도 높은 편입니다. 큐리언트가 큰 문제를 일으키는 등의 사고를 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연결된 것도 공공기관 소속 자회사란 위치 때문이었죠?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와 함께 독일의 양대 기초학문 연구소로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네, 맞습니다. 태생적 특이성 때문에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연구소 역시 공공기관 연구소에서 스핀오프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일년 넘게 큐리언트에 자문을 구하다가 결국 현지 법상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왔죠.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남기연 큐리언트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제휴, 후보물질 기술 도입
어떤 기회인가요.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스핀오프한 회사에 넘기려던 후보물질을 우리 회사에 넘겨준다는 것이었죠. 2013년이었습니다. 스핀오프 문제로 2년 이상 지켜보고, 신뢰를 쌓은 덕분이었습니다.

NRDO 회사로서 상당히 부럽습니다.

현재 전략적 제휴를 맺은 상황입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요청을 하면 언제든지 연구 중인 후보물질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독점까지는 아니어도 우선협상자 지위를 가진 것이죠. 또 표준 계약서를 이미 작성해서 물질 도입 기간 역시 짧습니다.

얼마나 짧은 가요?

보통 1~2년 걸리는 물질 도입 과정이 막스플랑크 연구소와는 2~3개월 안에 끝납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만들 첫 작품이 궁금해지네요.

현재 경구용 면역항암제 파이프라인인 ‘Q702’를 미국에서 임상 진행 중입니다. 올해에는 또다른 항암제 하나가 임상에 들어갑니다. 신뢰를 잘 쌓다보니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Q702는 종양미세환경에서 선천면역 체계의 면역관문으로 작용하는 CSF-1 수용체, Mer, Axl 등 3개 인자를 저해하는 면역항암제다. M2 대식세포를 늘리고 M1 대식세포를 억제하는 실험 결과를 미국암학회에서 발표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와 독일에 자회사도 세웠더군요.

프로테아좀 구조를 푼 노벨상 수상자 로베르트 후버 교수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세운 곳입니다. 독일에 공공연구소 관계자들이 만나는 모임에 매년 나가면서 친분을 쌓았습니다. 여기서도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도움을 받았네요.
(프로테아좀은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폐기하거나 재활용하는 기능을 한다. 다케다는 이 기술을 활용해 다발성골수종 치료제 벨케이드를 출시한 바 있다. 이 회사가 보유한 QLi5 기술은 일반 프로테아좀과 면역 프로테아좀을 선택적으로 저해할 수 있다. 부작용이 적고 암뿐만 아니라 자가면역질환까지 적용이 가능한 3세대 프로테아좀 저해 기술이라는 게 큐리언트의 설명이다.)

저도 후버 교수와 인연이 있습니다.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분이었는데, 상업적인 것엔 관심이 없는 것 같았거든요.

맞습니다. 지분을 많이 요구하는 등의 모습도 없었습니다. 독일 자회사인 큐엘아이파이브 테라퓨틱스의 지분은 큐리언트가 72%로 가장 많습니다. 후버 교수도 투자를 해서 지분을 일부 갖고 있죠. 미국, 독일 등은 한국과 달리 학교에서 연구한 후보물질에 대한 지분을 연구 교수가 갖지 못합니다. 학교 소유입니다.
(큐엘아이파이브 테라퓨틱스는 막스플랑크연구소, 리드 디스커버리 센터(LDC)와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는 면역 프로테아좀 저해 기술을 초기 계약금 없는 조건으로 확보했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 사진=김영우 기자
자금 회수 창구 다양화 고민,
오직 상장만이 방법 아냐

독일에 자회사를 세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큐리언트 밑에 여러 자회사들을 둘 예정입니다. 각각의 회사 대표가 그 회사를 끌고 나가면서 인수합병(M&A) 등을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죠. 독일 자회사는 그 첫 번째 케이스입니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대표가 거의 창업자이고, 상장할 경우 대표를 교체하기가 사실상 어렵죠. 그러다 보니 M&A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상장이 거의 유일한 자금회수 창구이죠. 현재는.

맞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바이오 기업이 상장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자동 옵션처럼 상장을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큐리언트가 하나의 후보물질만 가진 회사를 여럿 만들어 M&A를 하고, 다시 키우는 형태로 가려고 하는 이유입니다. 굳이 상장까지 가지 않아도 되죠.

상장하지 않으면 M&A를 위한 걸림돌이 적긴 합니다.

맞아요. 상장 후 지분 관계가 복잡해진 상황에서 M&A를 하기보다는 그 전에 하려는 이유입니다. 이해관계자를 최소화하면 좀 더 쉽거든요.

올해 계획이 어떻게 될까요.

올해는 그동안 임상을 진행한 물질에 대해서 기술수출하는 걸 추진할 겁니다. 또 신규 프로젝트도 보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 중 하나를 가진 회사를 스핀오프할 생각도 있습니다. 이런 회사를 스핀오프하는 과정에서 외국계 벤처캐피탈(VC)의 투자를 받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이런 케이스가 많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자금 회수의 창구가 다양해지는 게 생태계를 만드는데 도움될 것 같습니다. 임상도 끝까지 할 필요도 없고요.

고유 기술은 반드시 필요해
맞습니다. 저는 고유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약·바이오 회사가 같은 매출에도 더 높은 주가수익비율(PER)을 받는 이유는 규제 산업의 특성 때문입니다. 특허로 묶어 두면 수십 년 동안 독점권을 인정받죠. 다른 제조업은 이런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매출이 같다고 다른 산업과 비슷하게 보면 안 됩니다. 기술수출 몇 천억 원의 문제가 아니라 신약이 됐을 때 어떤 가치를 가질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고유의 기술이 꼭 필요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보통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시나요.

제가 좀 특이한 취미가 있는데, 레이싱을 좋아합니다. 아마추어 대회에도 나갔습니다. 잡념을 없애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무 생각이 없어지거든요.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