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선 서울아산병원 빅데이터연구센터 소장
오지선 서울아산병원 빅데이터연구센터 소장
서울아산병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세계 최고 병원’에서 3년 연속 국내 1위 병원으로 선정됐다. 이에 걸맞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정밀의료 분야에서도 앞서 나가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내원 환자들의 중증도가 높고 고난도 수술과 처치가 활발한 만큼 환자 안전과 진료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각도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노력은 1989년 개원 이래 자체 구축된 본원의 병원정보시스템(Asan Medical Information System, AMIS)에도 반영돼 있다. 요즘처럼 인공지능 진료지원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던 시기였음에도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고 진료의 질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는 시스템(Clinical Decision Support System)을 AMIS 도입 초기부터 개발해 운영해 온 것이다. 항생제 처방시 임상적인 상황에 맞는 최적의 항생제 추천과 더불어 항생제의 특성을 고려하고 환자의 신기능을 반영해 적절한 용량을 제시해 주는 항생제 처방지원시스템, 그리고 항암제와 같은 고위험 약물 처방 입력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하도록 환자별 상황에 맞는 적절한 항암제를 선택하고 용량, 용법을 정확히 입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항암제 처방관리시스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상의 진료를 위한 서울아산병원의 끝없는 도전

2018년엔 국내 최초로 연구용 클라우드 시스템(Asan Cloud Environment, ACE)을 구축했다. 보안성이 높은 폐쇄 환경에서 여러 연구진이 원활하게 협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외부 상용 클라우드까지 확장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이브리드형으로 설계된 게 강점이다.
최근에는 암 환자 40만여 명의 데이터를 정제하고 암유전체 변이정보와 다양한 임상 기록을 통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밀의료 통합 플랫폼'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실제 암 환자 진료와 연구에 적용하고 있다. 의료 현장 데이터 범위가 유전체까지 확대되고 암 정밀의료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변화상을 반영한 것이다. 이 플랫폼은 진료 중인 의료진이 개별 환자의 복잡한 임상 정보 및 경과를 그래프 등을 통해 빠르고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최적의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바이오뱅크와의 연계를 통해 정밀의료를 위한 바이오마커와 신약 개발 연구에도 사용되고 있다.

빅데이터연구센터 개소…오픈이노베이션 첫발

병원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의료진과 양질의 의료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분석하고 활용할 전문 인력과 시간, 시스템이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반면 기업, 대학, 연구소 등 외부 기관은 충분한 기술력과 전문 인력, 사업화 능력 등을 갖추고 있지만 의료 데이터 접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를 활용하기 위한 전문 의료 지식이나 현장 경험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서울안산병원은 2017년 헬스이노베이션 빅데이터센터 (현 빅데이터연구센터)를 설립해 해법 찾기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빅데이터연구센터는 병원 내 빅데이터와 관련된 여러 분야별 전문 인력과 인프라들이 유기적으로 융합된 체계를 마련해 빅데이터 활용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의료 빅데이터 활용이 필요한 원내⋅외 연구자와 기업, 기관 간의 연계와 협력을 지원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로서 두 가지 자문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첫 번째가 빅데이터 연구사업화를 지원하는 BIRD 서비스 (Bigdata Innovation Research & Development)이고, 두 번째가 데이터 활용 관련 정책 및 규정에 대해 자문하는 TREE 서비스 (Technology & Research rEgulatory guidance)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300여 건의 원내⋅외 개인 및 기업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기술, 교육, 창업, 공동 연구를 지원하고 상호 협력하게 해주는 가교 역할을 해오고 있다.
본 센터는 또 의료 빅데이터 인재양성과 인재발굴의 장을 마련해 오고 있다. 2018년부터 운영해온 의료정보분석전문가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 과정은 다양한 분야 전공자들이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대한 접근성 및 이해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자의무기록 데이터, 의료영상 데이터, 공공보건의료 데이터, 생체신호 데이터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과 팀프로젝트를 통한 실제 의료데이터 분석기회를 제공한다.
2017년도부터 개최해온 의료 빅데이터 분석경진대회는 의료 빅데이터를 통해 진료현장의 난제를 해결하고 빅데이터 전문가를 발굴하기 위해 마련됐다. 개인, 대학, 스타트업 등의 적극적인 참여하게 다양한 종류의 의료데이터 활용 기회를 제공하고 공동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장이 돼왔다는 평가다. 실제로 2017년 경진대회입상 팀은 성공적인 창업으로까지 연결되기도 했다.
의료 데이터 활용을 위해 해결해야 할 대표적 과제 중 하나가 의료기관 간 데이터의 이질성 해소와 데이터의 품질 향상이다. 빅데이터연구센터의 표준의료데이터 추진단은 의료데이터 활용에 중요한 기반이 되는 의료용어들을 국제 표준용어로 매핑하고, 데이터를 공통데이터모델에 따라 표준 변환하는 역할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분석에 바로 활용하기 어려운 비정형데이터를 정형화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데이터 품질을 관리함으로써 데이터 활용도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본격적인 의료인공지능 시대 열다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초·최대의 병원·기업 연합 컨소시엄인 ‘닥터앤서’ 사업의 총괄 주관 기관이다. 전국 25개 상급 종합병원과 ICT · SW 기업 21개가 참여하는 이 사업을 통해 8개 중점질환 (심뇌혈관질환, 심장질환,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암, 치매, 뇌전증, 소아의 희귀난치성 유전질환)에 관한 21개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진행했다. 이 사업을 통해 개발된 의료인공지능 소프트웨어들은 실제로 전국 여러 의료기관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본원에서는 흉부촬영, 유방촬영, 관상동맥 석회화, 대장내시경, 그리고 발달장애와 난청과 같은 희귀질환의 유전자 진단영역에 도입했다. 건강증진센터와 소아청소년과에서도 활용 중이거나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건강증진센터에서는 흉부 X-선 검사의 이상 가능성을 조기에 탐지해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우선적으로 실시간 판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건강검진을 모두 마친 이후에 검사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건강검진을 받고 있는 동안에도 호흡기 감염 가능성을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대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아울러 요즘과 같은 시기에 감염병의 확산을 막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 의료 환경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
입원 환자 중 일부는 임상경과의 악화로 인해 중환자실 치료를 받거나 심정지, 사망 등의 위해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 의료진이 임상경과의 악화를 조기에 인지하고 치료한다면, 위해사건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2008년 국내 최초로 신속대응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입원 환자의 임상경과 악화를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있다. 임상경과 악화 및 위해사건 발생을 예측하기 위해 조기경고점수(early warning score)가 활용되고 있는데, 이 점수체계는 예측력이 높지 않아 임상 현장 활용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흡기내과 홍상범, 오동규 교수 연구팀과 빅데이터연구센터 오지선, 심우현 교수 연구팀은 지난 수 년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의무기록을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예측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예측 알고리즘이 기존 조기경고점수보다 훨씬 우수한 예측력을 가지는 것으로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 사례는 최근 대한중환자학회에서도 발표됐다.
특히 인공지능 기반 예측 알고리즘은 거짓 알람(false alarm)의 비율을 유의하게 줄임으로써 의료진의 피로도를 경감시키고 의료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팀은 현재의 예측 알고리즘을 고도화해 수년 내 임상 현장에 적용할 계획이다.
한편 서울아산병원 3층에 있는 70여 개의 수술실 한가운데에 있는 커맨드센터에서는 각 수술방에서 전송되는 수천 가지의 생체신호를 모니터링하고 이들 중 위험 신호를 골라낸다. 서울아산병원은 2007년 국내 최초로 수술실에 고해상도 생체신호 수집 환경을 구축했으며, 최근 김성훈 교수 연구팀은 이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그동안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생체신호 데이터는 40여 종의 웨이브 데이터와 169종의 수치데이터를 포함한 90만 시간 분량이다. 특히 환자 상태나 치료에 대한 60여 종류의 레이블링 데이터를 포함하고 있어 양적인 측면 뿐 아니라 데이터의 품질 또한 매우 높다고 자부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의료서비스 수준을 크게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