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에 의존하던 배지·레진
코로나백신 만드는데 쓴다고
美·유럽서 수출 막아 공급 '뚝'

원료 못구한 바이오벤처 큰 타격
대형사는 1~2년치 재고 쌓아
백신·치료제 핵심 원료인 배지와 레진 부족으로 국내 바이오 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한 바이오 업체 연구원들이 공정기술 실험을 하고 있다.  /한경DB

백신·치료제 핵심 원료인 배지와 레진 부족으로 국내 바이오 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한 바이오 업체 연구원들이 공정기술 실험을 하고 있다. /한경DB

최근 한 국내 바이오 의약품 위탁생산(CMO) 업체는 미국 GE헬스케어와 독일 머크에 SOS를 보냈다. 바이오 의약품의 핵심 원료인 ‘배지’(세포 먹이)와 ‘레진’(불순물 정제액) 재고가 바닥을 보여서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쓸 물량도 부족하다. 보내줄 물량이 없다”였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바이오 의약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원료를 구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코로나19 백신이란 새로운 수요처에 원료가 대거 투입되다보니, 바이오 의약품을 소량 생산하는 국내 기업에는 차례가 오지 않아서다.
대형사보다 바이오 벤처 타격
"백신·치료제 주원료 동났다"…K바이오 '초비상'

5일 관세청에 따르면 배지 등 동물 세포 성장을 위한 배양제 등의 수입액은 작년 12월 2208만달러에서 지난 1월 1593만달러로 27.8% 감소했다. 전년 동기(657만달러)보단 두 배 이상 늘었지만, 수입 물량의 대부분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 쓰였다. 이로 인해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쓸 물량은 오히려 작년 초보다 크게 줄었다고 바이오 업계는 하소연한다.

피해는 이제 막 임상 시료를 만들기 시작한 바이오 벤처에 집중되고 있다.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 등 대형 회사는 1~2년치 재고를 확보해둔 덕분에 아직 문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의약품은 세포주 개발·생산→배양→정제→완제 등의 생산 과정을 거친다. 배지는 세포주에서 세포를 뽑아낸 뒤 배양 과정에서 쓰이는 세포 먹이다.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소재로 GE헬스케어와 머크 등으로부터 전량 수입한다. CMO 업체 관계자는 “주문 후 3~4개월이면 구할 수 있었던 배지와 레진 공급이 사실상 멈췄다”며 “임상 시료 원료가 부족한 바이오 벤처들의 임상이 수개월씩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배양된 세포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세척하는 데 쓰이는 레진도 공급부족 상태다.
원료 수출 막는 미국
바이오 의약품 원료 부족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독일 등 원료 의약품 생산 강국들이 원료 수출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코로나19 백신 제조사인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미국 노바백스 백신 공급이 지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지와 레진은 어떤 코로나 백신을 만드느냐에 따라 쓰이기도 하고, 안 쓰이기도 한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은 동물세포 배양 방식이 아닌 만큼 이런 원료가 필요 없다. 반면 세포를 키워 백신을 만드는 바이러스 벡터(전달체)와 단백질 재조합 방식엔 필수 요소다. 아스트라제네카, 미국 존슨앤드존슨, 노바백스 백신이 대표적이다. 미국 일라이릴리와 리제네론 등 항체 의약품 기반 코로나19 치료제를 생산하는 회사들도 배지와 레진을 사용한다.

백신·치료제 생산이 본격화한 올해부터 미국발(發) 수출은 사실상 막혔다고 바이오 업계는 한목소리를 낸다. 한 바이오 벤처 대표는 “통상 석 달이면 받을 수 있던 배지를 8개월 뒤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며 “셀트리온 등 ‘바잉파워’(구매협상력)가 있는 회사를 빼면 사실상 배지를 구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토로했다.

바이오의약품 원료 부족이 장기화하면 대형 CMO 업체도 휘청거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계 최대 CMO 국가인 한국의 바이오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선 바이오 의약품 원료를 하루빨리 국산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미코젠 등이 정부 지원으로 소재 국산화를 진행하고 있지만 2023년 이후에나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증권가에선 보고 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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