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경기 성남시 판교 IT밸리 전경. 판교역 인근을 거점으로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유수의 IT 기업이 밀집해 있다. 사진=한경DB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경기 성남시 판교 IT밸리 전경. 판교역 인근을 거점으로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유수의 IT 기업이 밀집해 있다. 사진=한경DB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까지 받으니 당장 이직 생각은 없습니다. 다른 기업에서 연봉을 많이 올려주는 거 아니면 그냥 이곳에 남을 계획입니다."
판교에 위치한 한 정보기술(IT) 대기업에 근무하는 A씨는 최근 기자에게 이같이 털어놨다. 경력 6년차인 그는 거쳐간 회사만 두 곳. 평균 2년에 한 번씩 이직을 했는데 이번에는 눌러앉기로 결정했다. A씨는 "회사 분위기도 좋고 이전 직장보다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며 만족한다고 했다.

판교 '빅5', 근속연수 4.7년→5.1년→5.4년 증가 추세

통상 근속연수가 짧다고 알려진 IT 업계 인력들의 근속 기간이 최근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사 등 판교 IT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연봉을 인상하고 복지를 향상하면서 그간 업계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꼽혀왔던 짧은 근속연수가 점차 길어지는 분위기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IT업계에 따르면 네이버카카오, 넥슨, 넷마블게임즈, 엔씨소프트 등 판교 '빅5'의 평균 근속 연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년4개월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평균 근속년수는 2018년 4년7개월, 2019년 5년1개월로 2년 사이에 평균 9개월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의 평균 근속연수는 5년3개월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말 4년9개월 대비 6개월 늘어난 것으로, 2018년 4년7개월과 비교해서는 2년 만에 근속기간이 8개월 늘었다. IT 업계 연봉 인상 신호탄을 쏜 넥슨은 지난해 말 평균 근속연수가 5년7개월로 나타났다. 2018년 4년5개월, 2019년 5년2개월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넷마블도 2018년 4년1개월, 2019년 4년2개월, 지난해 4년6개월로 매년 늘고 있다. 엔씨소프트도 2018년 5년2개월, 2019년 5년4개월, 지난해 5년6개월로 꾸준히 늘었다. 네이버 역시 평균 근속연수가 2019년 5년9개월을 기록해 1년전 5년2개월 대비 7개월 늘었다. 600여명의 대규모 채용 영향으로 지난해 말 5년8개월로 소폭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 근속연수가 점차 길어지는 추세다.

이외에 엠게임이 2019년말 7년1개월에서 지난해말 8년으로, 같은 기간 웹젠이 4년9개월에서 5년4개월, 게임빌이 2년6개월에서 3년4개월, 선데이토즈가 2년10개월에서 3년6개월로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호황으로 연봉·복지 높아진 영향…근속연수 늘어날 전망

그간 게임사 등을 포함한 IT 기업은 퇴사율이 높고 근속연수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역사 자체가 짧을뿐더러 적지 않은 종사자들이 프리랜서 식으로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거나 창업으로 빠지는 등 이직이 잦았기 때문이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게임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2년여에 불과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국내 게임산업 종사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약 2년10개월(34.5개월)로 길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월 한국콘텐츠진흥원 조사 결과 최근 평균 근속연수는 약 3년6개월로 늘어났다. 업계에서는 최근 1~2년 사이에 연봉과 복지가 향상되면서 업계 종사자들이 점차 이직 대신 장기 근무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진 영향으로 풀이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업계가 비대면 산업의 호황을 맞으면서 이같은 경향이 가속화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미 2019년부터 전 직원 대상으로 매년 1000만원 상당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총 15만4230주(2919명), 올 2월에는 총 111만4143주(3253명)를 직원들에게 각각 지급했다. 카카오 역시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주고 있으며, 올 초 창사이래 처음으로 전 직원에 455만원 상당의 자사주 상여금을 지급했다.

넥슨은 지난해 근속기간 20년이 된 직원에게 '20주년 기념 트로피'와 1000만원의 휴가지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올 2월에는 신입사원 초임 연봉을 5000만원(개발직)으로 올리고, 재직 직원들의 연봉을 일괄 800만원씩 인상했다. 넷마블 역시 전 임직원의 연봉을 800만원 인상하고 기존 식대 지원금과 별개로 월 10만원 상당의 포인트를 지급하기로 했다. 엔씨소프트도 개발직군과 비개발직군의 연봉을 각각 1300만원, 1000만원씩 상향 조정하고,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 정책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IT 업계의 연봉 릴레이 인상 및 스톡옵션 제공 등으로 앞으로도 임직원들의 근속연수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는 "다른 업종보다 여전히 근속연수가 짧은 편에 속하지만 업계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분위기"라며 "기업들이 복지에 많이 신경 쓴 영향도 있겠지만, 게임·IT 산업이 성숙하면서 회사들이 설립 초기와 달리 점차 안정을 찾은 것도 또 다른 요인"이라고 말했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