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의 게임인] "아이템 뽑는 맛에 한다"…이게 게임인가
몇 년 전 일본 오사카에 여행 갔을 때 파친코에 구경 간 적이 있다.

재미로 1만∼2만 원어치만 해보겠다는 친구 뒤에서 구경했는데, 슬롯머신 종류가 수십 종으로 다양해 신기했다.

게임 '메탈 기어 솔리드'나 유명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꾸민 슬롯머신도 있었다.

종류가 많아 슬롯머신을 고르기 어렵겠다고 말하자,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온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야, 종류가 뭐가 중요해. 그냥 (레버) 당기는 재미로 하는 거지."
친구는 아무 데나 앉더니 30분도 채 안 돼 돈을 다 잃었다.

파친코 인근 쿠시카츠(일본식 꼬치 튀김) 집에서 생맥주는 내가 샀다.

같은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게임 취재를 담당하고 있다고 하자, 친구는 최근 하고 있다는 국산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을 보여줬다.

친구 캐릭터는 서버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최상급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친구는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해당 게임에 돈을 많이 쓴 상태였다.

원래 돈이 많은 친구다.

어떤 요소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묻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재미? 아이템 뽑고 자랑하는 게 재미지. 게임은 그냥, 그래픽 좋아."
친구의 캐릭터가 값비싼 아이템을 두르고 대기 공간에 접속하자 다른 이용자들이 "오셨습니까, 형님"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전투할 때 타격감이나 몬스터를 잡을 때 손맛은 어떠냐고 묻자 친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너 요즘 게임 안 해봤냐? 컨트롤 안 해도 돼."
친구가 캐릭터를 사냥터로 이동시키고 '자동 전투' 버튼을 누르자 캐릭터는 자동으로 몬스터 사냥을 시작했다.

알아서 검을 휘두르고 마술을 부리자 경험치가 쌓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술을 마셨다.

친구는 전투는 재미없으니 아이템 뽑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아이템 캡슐을 열자 비장한 음악과 경쾌한 마찰음이 긴장감을 높였다.

아이템 뽑기에 성공하는 순간에는 '번쩍' 하고 화면 가득 빛이 났다.

뽑기에 실패하면 현금으로만 충전할 수 있는 보석이 사라졌다.

친구는 3분도 채 안 돼 수십만 원어치 보석을 날렸다.

그래도 결국 아이템을 뽑아 기분이 좋다며 친구가 곱창에 소주까지 샀다.

친구는 작별 인사를 하며 "이제 질려서, 접고 계정 팔 거야"라고 말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친구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그 회사 만나서 쿠폰 받으면 나 줘 ㅋㅋ'
최근 국회가 확률형 아이템을 법적으로 규제할지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게임업계가 시끄럽다.

친구가 하던 게임 같은 국산 MMORPG가 연일 화제다.

취재하고 기사를 쓸수록 자꾸 의문이 든다.

이게 게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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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