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AI 혁명가들
(5) 이재준 엔씨소프트 AI센터장

게임사가 왜 AI 연구하냐고?
이용자 몰입감 높이려 전폭 투자
최종 목표는 '즐거움 주는 AI'

데이터 야구로 엔씨 창단 첫 우승
AI는 실전 문제 해결하는 기술
이재준 엔씨소프트 AI센터장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AI가 엔씨소프트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이재준 엔씨소프트 AI센터장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AI가 엔씨소프트의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동반자를 아슬아슬하게 이기게 해줄 줄 아는 사람이 정말 골프를 잘 치는 골퍼죠. 엔씨소프트의 게임 인공지능(AI)이 추구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게이머에게 아슬아슬하게 져주는, 한마디로 재밌는 AI인 거죠.”

이재준 엔씨소프트 AI센터장(51)은 “아슬아슬하게 지는 게 실력이고, 그게 기술”이라고 말했다. “상대가 잘하는 분야에서 져줘 상대가 이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접대골프에 빗댄다면 이런 식이다. “쇼트게임을 잘하는 상대방 앞에서 퍼팅 실수를 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성취감이 최고조가 되는 거죠.”

엔씨소프트는 서비스 중인 ‘블레이드앤소울’ 게임 ‘무한의 탑’ 콘텐츠에 AI 기능을 적용했다. 딥러닝을 적용한 AI와 대결하며 이용자들은 마치 플레이어와 전투를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져주기만 해선 안 된다. 승률은 영업비밀. 이 센터장은 “AI 도입 초반엔 다른 게임회사로부터 왜 AI를 하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었다”며 “지금은 모두 부러워한다”고 했다.
“돈 안 벌어도 된다”…AI빙하기 뚫은 결단
엔씨소프트는 ‘AI빙하기’로 불리던 10년 전 AI연구조직을 처음 꾸린 ‘AI 얼리어답터’다. 계기는 김택진 대표와 윤송이 사장.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2011년 2월 AI 태스크포스(TF)를 띄운 것이다. 김 대표는 서울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윤 사장은 KAIST(전기공학)를 나와 미국 MIT에서 신경과학·뇌인지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두 사람은 2007년 11월 결혼했다. 이 센터장은 “AI 연구개발과 선제 투자의 필요성을 아는 톱매니지먼트는 실무단 입장에선 엄청난 힘이 된다”고 했다.

“당시 의사결정권자(김 대표·윤 사장)는 일단 가보자고 했습니다. 돈 벌어올 필요 없다고요. 구글도 오랜 기간 투자해 겨우 AI를 개발했다면서요.”

엔씨소프트는 게임회사에서는 드물게 ‘전문 연구개발 인력’으로만 200명이 넘은 인공지능 연구조직을 꾸렸다. 이 센터장은 “AI 연구조직을 처음 만들고 다른 회사에 있던 개발자들을 ‘납치’해오는 데는 연구 환경이 정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사람들을 만나서 ‘엔씨소프트는 AI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다’고 하면 톱클래스 개발자들이 대개 마음을 돌렸다”고 했다.
한정된 메모리로 AI 구동하는 게 기술
스마트폰의 극히 적은 리소스만으로도 AI를 구현하는 건 엔씨소프트 AI 기술의 강점 중 하나다. 일종의 ‘에지 AI’ 기술이다.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중이라면 대부분의 메모리는 게임을 구동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 빡빡한 상황에서 게임 캐릭터가 전투에 휘말렸다면, 이용자가 ‘집으로 가’라고 말해야 할 텐데 이걸 AI가 음성인식해야 합니다. 중앙 클라우드 서버에 해당 명령을 보내고 계산해서 다시 스마트폰으로 구현하면 지연 시간이 발생하죠. 스마트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음성인식 AI를 게임과 자연스럽게 녹여 구현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습니다.”

구글, 아마존 등 빅테크기업이 대용량 컴퓨팅 파워를 활용해서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를 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경쟁력이라는 것이 이 센터장의 말이다.
보폭 넓히는 엔씨소프트 AI
엔씨소프트의 AI는 이제 야구, 엔터테인먼트, 금융 등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그는 창단 9년 만에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달성한 NC다이노스의 핵심 경쟁력으로 AI 전력 분석 시스템 ‘D-라커’를 꼽았다. “NC다이노스의 복습은 빠르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하나를 AI로 분석한다”는 게 이 센터장의 말이다. NC다이노스의 2019년 시즌 땅볼 아웃 비율은 전체 10개 구단 중 가장 높았다. 구단은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고 빠른 공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훈련하며 약점을 극복했다.

AI의 빠른 분석은 경기를 연속으로 치르는 단기전에서 더 성과를 냈다. 이 센터장은 “경기가 끝나면 감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복습한다. 이튿날 경기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엔씨소프트는 유명 아이돌 아티스트의 음성을 학습한 뒤 개인화된 음성 합성을 제공하는 서비스 ‘유니버스’ 등으로 팬덤을 얻고 있다. 20분가량의 음성 데이터만으로 아티스트가 직접 모닝콜을 해주는 경험 등을 할 수 있다. KB증권과는 AI간편투자 증권사를 출범해 자산관리에 대한 조언을 사람이 아닌 AI가 제공하는 ‘AI PB’ 개발에 한창이다.

“AI는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입니다. 현장과 떨어지면 안 되죠. 동시에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엔씨소프트의 철학을 담아가겠습니다.”

■ 이재준 센터장은…

△1970년생
△연세대 전산과학과 졸업
△KAIST 전산학과 석·박사
△인지소프트 공동 창업
△IR52 장영실상 수상
△SK텔레콤 부장
△엔씨소프트 AI TF장
△엔씨소프트 AI Lab장
△엔씨소프트 AI센터장(전무)


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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