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K, MSD, 화이자, 사노피. 2019년 기준 세계 백신 시장의 65%를 점유한 강자들이다. 이들 중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한 곳은 화이자 뿐이다. 전통적 백신 강호들이 코로나19라는 신종 감염병 유행에서는 큰 힘을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 승인을 받은 곳은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존슨앤드존슨), 아스트라제네카 등이다. 이들이 개발한 백신은 메신저리보핵산(mRNA)과 바이러스벡터 방식으로, 기존에 폭넓게 활용되지 않았던 기술을 이용했다. 기존 백신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포기는 이르다. GSK, MSD, 사노피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코로나19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유행 상황에 전통적 백신 회사들이 속도를 내지 못했던 이유와 백신 후발주자로 꼽히는 백신 강자들의 대응 전략에 대해 알아봤다.

코로나가 기회된 세계 백신 시장

코로나19는 움츠렸던 백신 시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공교롭게도 백신 사업 축소에 들어갔던 회사들이 잇따라 코로나19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을 전했다.

화이자는 백신 수익을 대부분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에 의존하고 있다. 이 백신은 와이어스에서 개발한 것으로, 화이자는 2009년 와이어스를 인수하면서 백신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을 보강했다. 이후 독감 백신 등의 파이프라인을 정리하고 선택과 집중을 했다. 코로나19가 저물어가던 화이자 백신 사업부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은 셈이다.

화이자에서 출시한 코로나19 백신 플랫폼은 독일 바이오회사 바이오엔테크에서 들여온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영국 옥스포드대와 협업한 것과 유사한 형태다.

얀센은 2011년 네덜란드 바이오회사 큐로셀(Crucell)을 인수하면서 B형간염, 광견병 백신 등의 파이프라인을 확보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B형간염 백신 가격이 떨어지면서 백신 사업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업계 관계자는 "비지니스 조정을 해야 하던 시기에 코로나19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게 됐다"며 "운과 기회가 잘 맞아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필수접종 장악한 사노피·GSK, 변화 쉽지 않았을 것"

이들에 반해 사노피 GSK MSD 등은 아직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필수 예방접종 시장을 장악한 이들이 조직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시장에서 절대 강자는 사노피와 GSK다. 시장의 60%를 사노피가, 40%를 GSK가 점유하고 있다. 이들이 필수 백신 생산을 중단하고 코로나19 백신을 만들려면 윤리적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당장 영유아 백신 등의 수급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필수 백신 생산을 그대로 유지하고 추가로 백신을 개발하려면 성인 백신인 프라이빗 시장을 축소해야 한다. 해외 여행을 할 때 맞는 황열 백신 등이다. 공공성이 높은 필수백신에 비해 수익성이 높은 분야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의 성공 가능성은 아무도 전망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수익성이 좋은 시장을 포기하면서 뛰어들 정도로 백신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백신 회사 내부의 조직 경직성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백신을 주력 제품으로 하는 회사는 장기 계획을 토대로 움직인다. 개발되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변화나 의사결정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백신 개발 실패로 인한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데다, 코로나 바이러스 특성상 변이가 많다는 것도 선택을 주저하는 데 영향을 줬을 것이란 평가다. 하지만 코로나19는 감염병 확산 후 백신 개발까지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세계 각국 및 국제기구의 전폭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백신기업 특성상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대응 속도가 늦어진 원인으로 꼽힌다. 프랑스 회사 사노피는 자국 내 백신 공급을 위해 얀센과 화이자 백신의 위탁생산을 맡았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최근 MSD가 미국 내 백신 수급량을 확대하기 위해 얀센 백신을 위탁생산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미 개발된 백신을 자국에 공급하기 위해 생산시설의 일부를 내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치료제 집중 MSD, 손잡은 사노피·GSK

전통 백신 회사들의 코로나 대응 전략은 갈리고 있다. MSD는 올 1월 말 백신 개발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백신 파이프라인인 'V590'과 'V591'의 임상 1상시험에서 다른 코로나19 백신보다 면역반응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리지백바이오와 함께 개발하는 먹는 항바이러스제 'MK-4482(molnupiravir)'는 임상 2·3상 단계다.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MK-7110'은 면역관문을 표적으로 하는 세계 첫 단백질 재조합 치료제 후보물질이다.

MSD는 지난해 11월 온코이뮨을 인수하면서 이 파이프라인을 품에 안았다. 임상 3상 중간결과에서 입원 환자의 사망 위험을 절반 이상 줄여주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정부는 이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MSD와 공급계약을 맺었다. 올 1분기 중으로 임상 결과를 내는 게 목표다.

백신 라이벌 사노피와 GSK는 손을 잡았다. 지난달 코로나19 단백질 재조합 백신의 임상 2상 시험을 시작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 전통적인 백신 개발방식인 단백질 재조합 백신이 승산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바이러스벡터 방식의 백신은 바이러스 자체에 대한 면역반응 때문에 여러번 투여하면 효과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 코로나19가 매년 유행하는 상황에서는 바이러스벡터 백신 만으로는 대응이 쉽지 않다.

mRNA 백신은 여러 변이를 한꺼번에 차단하는 다가백신 개발이 어려운 게 한계다. 단백질 재조합 백신은 다가 백신을 만드는 게 쉬운데다 매년 접종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다.

GSK는 이와 별개로 mRNA 백신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백신도 개발하고 있다. 독일 바이오회사 큐어백과 1억5000만 유로의 계약을 맺고, 지난달부터 mRNA 다가 백신을 개발 중이다. 개발 목표 시점은 내년으로 비교적 늦지만 다가 백신 제조 및 생산 기술을 확보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백신 후발주자도 사업성 충분"

백신 업계서는 코로나19 유행 특성상 후발 주자에게도 충분히 기회가 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서도 유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염병 유행 지역이 넓다는 것은 백신 회사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큰 시장이 열린다는 의미다. 새로운 변이가 유행을 주도하면 새로운 백신 수요는 더욱 높아진다. 매년 유행이 반복되고 새 변이가 출몰하면 백신 플랫폼 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후발 백신 주자들이 개발 연구를 이어가는 또다른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엔 세계관광기구(WTO)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국제 관광산업은 2024년 이후가 돼야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코로나19 변이가 계속 이어지는데다 백신 공급 속도도 예상보다 더디기 때문이다.

브랜드에센스리서치는 지난해 3700만 달러 규모였던 세계 코로나19 백신 수요는 올해 757억5000만 달러(약 85조3000억원)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서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백신 산업 전반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이 일상까지 바꾸면서 감염병을 막는 방법은 백신 밖에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체감했기 때문이다.

사노피 관계자는 "독감 백신을 보면 필수접종분을 제외한 민간접종 시장에서 통상 시즌별 회수율이 13% 정도인데, 올해는 2월 말 기준 3%밖에 안된다"며 "민간접종 시장에서 독감 백신 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국가접종 시장이 커지면서 수익성이 떨어져 백신 전문 회사 상당수가 빅파마에 합병되던 시기였는데 코로나19 유행으로 백신 시장이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며 "백신에 대한 투자가치를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시장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