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 국회 의견서에 '변동 확률' 꺼냈다가 급히 철회
자율규제 미준수 의혹…게이머들 "불공정 시장 바로잡아달라"
[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정부가 조사 나서야 한다

게임업계가 말을 바꿨다.

한국게임산업협회 명의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다.

문체위는 사상 첫 확률형 아이템 법제화를 검토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이 조만간 문체위에 상정된다.

게임업계는 이를 저지하기 위해 상당한 고수위의 의견서를 냈다.

'행정 편의주의',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 '위헌' 등의 표현이 난무했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난도질하려고 칼날을 너무 벼린 탓일까.

서툴게 칼을 다루다 제 손을 벤 모양새다.

몇 시간 만에 의견서를 수정한다고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재전송했다.

[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정부가 조사 나서야 한다

논란을 낳은 표현은 '변동 확률'이다.

게임산업협회는 원래 의견서에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마다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일 뿐만 아니라 '변동 확률'의 구조로 돼 있어, 그 확률이 이용자의 게임 진행 상황에 따라 항상 변동된다"며 "개발자나 사업자도 확률의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같은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진행하느냐에 따라 아이템의 공급 확률이 불가피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수십만∼수백만 명에게 유저별 경험치·진행에 맞춰 확률을 제공하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강조했다.

의견서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게임계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게임업계가 '사실 아이템 뽑기 확률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인정한 꼴이기 때문이다.

아이템 뽑기 확률이 유저마다, 상황마다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2000년대 중반부터 계속 제기돼왔다.

수백만 원을 써도, 수백 번을 뽑아도 원하는 아이템이 나오지 않으면 게이머들은 게시판에서 "변동 확률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변동 확률은 과거 카지노에서 쓰던 수법이다.

슬롯머신에서 잭팟이 터질 확률을 이용자가 쓴 금액에 따라 달라지도록 설계하곤 했다.

수십 대 슬롯머신을 네트워크로 연결해 전체 도박장에서 일정 금액 이상 잭팟이 터지지 않도록 확률을 계속 바꾸는 수법도 있었다.

아이템 뽑기가 '변동 확률'이라면 확률형 아이템은 도박이다.

[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정부가 조사 나서야 한다

게임산업협회는 약 7시간 만에 보도자료를 재전송하면서 문장을 고쳤다.

해당 부분은 "현재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마다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일 뿐만 아니라 '일부 해외 게임에서' 이용자의 진척도나 이미 획득한 아이템에 의해 다음 아이템 확률이 영향을 받는 '변동 확률'의 구조를 가진 게임이 있다"로 수정됐다.

변동 확률을 쓰는 게임사는 '일부 해외 게임사'라는 수정이었다.

게임 개발자·사업자도 뽑기 확률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부분은 삭제됐다.

게임산업협회는 보도자료를 재전송하면서 "기존 자료에 오타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게임산업협회 변명이 궁색하다는 말이 나왔다.

한 게임 개발자는 "수정된 의견서는 해외 게임이 변동 확률을 쓰니까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처럼 읽히지 않느냐"며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다"며 웃었다.

게임업계가 게임산업협회 명의 의견서에서 "확률형 아이템의 종류와 종류별 확률 정보는 영업 비밀"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부분도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게임업계는 현재 자율 규제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고 있다.

게임산업협회 '건강한 게임 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은 확률형 아이템의 모든 확률과 명칭, 등급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국회 문체위에 상정되는 게임법 개정안은 이런 자율규제를 그대로 법에 옮기는 수준일 뿐이다.

그런데 법제화가 추진되자 돌연 "영업 비밀"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니, 게임업계가 그동안 자율규제를 제대로 지킨 게 맞냐고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다.

[이효석의 게임인] 확률형 아이템, 정부가 조사 나서야 한다

정부 차원의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현 정부는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이 불거지고 대학 입시 전형의 투명성에 문제가 제기되자 13개 주요 대학의 입시 실태를 조사한 적 있다.

약 2개월간의 조사 결과 일부 학교가 어학성적·소논문 등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가 금지된 스펙을 간접 제출하고,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를 우대하는 등의 정황이 확인됐다.

이후 교육부는 입시 제도를 전면 손질했다.

물론 대학을 감사하는 것과 사기업을 조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일부 게임사의 확률형 아이템 운영 실태를 조사해 과징금을 물린 바 있다.

공정위는 최근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불거지자 소비자 기만행위가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게임업계가 "변동 확률을 운용하고 있다"고 밝혔다가 서둘러 말을 주워 담은 것은 업계 전반의 실태를 확인할 필요성을 충분히 더한다.

게임 규제라면 손사래를 치는 게이머들조차 "확률형 아이템의 실체를 밝힐 때"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게임사 앞에서 광고판 트럭을 동원한 '트럭 시위'도 벌인다.

대부분 과도한 확률형 아이템 문제가 배경에 있다.

도박도 아닌데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확률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시장을 바로잡을 기회다.

[※ 편집자 주 = 게임인은 게임과 사람(人), 게임 속(in)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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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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