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스틱벤처스 부대표
사진=강은구 기자

사진=강은구 기자

‘닥터 둠(Dr. Doom)’. 국내 바이오업계에 낀 거품(버블)에 대한 독설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박민식 스틱벤처스 부대표에게 붙은 별명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시장을 삐딱하게 봐왔는데도 그는 여전히 국내 바이오업계에 투자를 하고 있다. 그것도 꽤나 많이. 국내 바이오 시장을 우려 섞인 눈으로 보는 투자 전문가에게 그만의 투자 비법을 물었다.

스틱인베스트먼트에서 분리된 스틱벤처스는 지난해 투자 포트폴리오의 40%를 바이오섹터로 구성했다. 2019년 바이오섹터 투자 비중인 35%와 비 교해 5%포인트 더 늘어났다. 스틱벤처스의 바이오 분야 투자 비중이 벤처업계 평균으로 알려진 30% 보다 10%포인트가량 더 높은 셈이다.

국내 바이오 시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에도 왜 이처럼 바이오기업에 열심히 투자하는지 박 부대표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어느 섹터보다 바이오섹터의 수익률이 가장 높지 않습니까.”

지난해 말 기준 스틱벤처스의 전체 내부 수익률 (IRR)은 12.5%인 반면, 바이오섹터(바이오·헬스 케어)의 내부 수익률은 32.5%였다.

남들은 투자 안 하는 의료기기 업체에 투자

수익이 높기 때문에 바이오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 ‘닥터 둠’ 박 부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 산업의 버블을 걱정하는 그가 다른 벤처캐피털(VC) 심사역들과 마찬가지로 이 업계에 꾸준히 투자한다는 게 모순처럼 느껴졌다. 시장의 위험(리스크)을 회피하기 위한 그만의 전략이 있지 않을까.

그는 “바이오기업에 투자한다고 하면 신약 개발 벤처에만 투자하는 VC들이 상당수”라며 “고위험-고수익의 신약 개발 업체와 중위험-중수익의 의료기기 업체에 골고루 투자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저평가된 스타트업에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기보다는 이미 기업가치가 올랐더라도 성공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바이오기업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투자전략을 선호한다”고도 했다.

2006년 스틱벤처스(당시 스틱인베스트먼트)에 합류한 박 부대표가 지금까지 투자한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은 총 40곳. 그는 “이중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는 의료기기 및 진단업체 20곳, 하이리스크 하이리 턴의 신약 벤처 20곳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고 말했다.

스틱벤처스가 신약 벤처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턴이 적은 의료기기업체로 포트폴리오의 절반을 구성한 점은 VC업계에서도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국내 VC의 경우 6 대 4 또는 7 대 3 정도의 비율로 신약 벤처기업과 의료 및 진단기기 기업에 투자하는 게 보통이다. “돈을 버는 바이오기업(의료기기·진단기업)은 투자하는 게 아니다”라는 바이오 투자업계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투자를 한 셈이다. 박 부대표는 “공대(생물화학공학)에서 석·박사를 한 덕분에 약대 출신 심사역들과는 다른 기준으로 기업을 고르고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신약 벤처기업이 아님에도 박 부대표에게 많은 투 자수익을 안겨준 기업으론 엑세스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엑세스바이오는 말라리아 진단키트를 제조해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등을 통해 제3세계로 수출하는 기업이다. 박 부대표는 이 회사에 2013년 125억 원을 투자해 2016년 500억 원 이상의 투자수익을 올렸다.

초고속 PCR 기술을 기반으로 한 분자진단 전문기업 진시스템에는 30억 원을 투자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대표적인 코로나19 수혜주로 성장했다. 진시스템은 지난해 12월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에 상장 예비심사를 신청하고 증시 입성을 기다리고 있다.

다른 VC 심사역에 비해 의료진단기기에 관심이 많은 박 부대표이지만 신약 벤처기업에도 꾸준한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희귀질환 및 항암 신약 개발기업 티움바이오에는 30억 원을 투자해 85억 원을 회수했다. 면역세포치료제를 만드는 셀리드에도 15억 원을 투자해 129억 원을 회수했다. 올해 말 코스닥 상장을 계획 중인 키메릭 항원수용체 T세포(CAR-T) 치료제 전문업체 큐로셀에도 두 차례에 걸쳐 60억 원을 투자했다. 박 부대표는 “신약 벤처기업에 투자할 때도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초기 스타트업부터 IPO를 앞둔 기업까지 골고루 투자하고 있다” 고 말했다.

어떤 기준으로 투자하나

어떻게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지 물었으니 이젠 어떤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우는지 물을 차례다. 박 부대표는 “의료진단기기 회사나 신약 벤처기업 가릴 것 없이 기술과 시장 그리고 사람이 잘 조화된 회사에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너무 앞선 기술도 필요 없고 시장이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한 회사를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투자한다”고 덧붙였다.

기술과 시장, 사람이 잘 만난 기업의 대표적 사례로는 디지털 엑스레이 전문업체 뷰웍스를 꼽았다. 박 부대표는 “김후식 뷰웍스 대표는 물리학도 출신인 데도 기술이 아닌 시장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며 “전세계 병원에 있는 엑스레이 장비 대수부터 건강보험 및 정부 정책 등을 두루 언급하며 아날로그 장비들이 왜 디지털 장비로 교체돼야만 하는지를 투자자들에게 설명했다”고 말했다.

스틱벤처스는 뷰웍스에 2006년 8억 원을 투자해 총 48억 원을 회수했다. 뷰웍스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기업을 대상으로 정부가 선정하는 ‘월드클래스 300’ 기업에 꼽히기도 했다.

반대로 박 부대표가 투자하길 꺼려하는 기업도 있다. 특히 한 기술에 너무 매몰되는 기업이 그렇다. 그는 “정말 그렇게 우수한 기술이라면 사업을 할 게 아니라 노벨상에 도전해야 한다”며 “성과 없이 20년 동안 한 기술만 붙들고 있는 기업들에겐 솔직히 투자하기가 내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표이사나 경영진의 평판 조회 또한 투자심의위원회 보고서에 빠뜨리지 않는 항목이라고도 했다. 박 부대표는 “이전 직장의 동료 평가를 귀담아들으려고 하는 편”이라며 “앞서 투자한 VC가 있다면 이들 VC의 평가 역시 반영한다”고 말했다.

스틱벤처스 내에 바이오 관련 전공자는 박 부대표를 포함해 3명이다. 이들 심사역 간 섹터를 구분해 놓지 않았다. 투자를 논의해야 할 기업이 선별되면 의견을 낼 수 있는 직원을 모아 즉석에서 팀을 만드는 식으로 투자심사를 진행한다. 박 부대표는 “심사역간 섹터를 구분할 경우 장벽이 생겨버린다”며 “IT와 BT가 합쳐지는 등 융복합 기술이 앞으로의 트렌드인 만큼 이런 점들을 유의하고 있다”고 했다.
스틱벤처스의 바이오섹터 투자 포트폴리오는 타 VC에서는 투자 비중이 낮은 의료기기 및 진단기기 업체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 엑스레이기기를 만드는 뷰웍스에 8억 원을 투자해 48억 원을 회수했으며, 말라리아 진단키트 제조업체 엑세스바이오에는 125억 원을 투자해 500억 원 이상을 회수했다.

스틱벤처스의 바이오섹터 투자 포트폴리오는 타 VC에서는 투자 비중이 낮은 의료기기 및 진단기기 업체의 비중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 엑스레이기기를 만드는 뷰웍스에 8억 원을 투자해 48억 원을 회수했으며, 말라리아 진단키트 제조업체 엑세스바이오에는 125억 원을 투자해 500억 원 이상을 회수했다.

그가 ‘닥터 둠’이 된 이유

박 부대표는 비록 국내 바이오 시장에 투자하고 있지만 시장의 미래가 불안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 이유를 묻자 박 부대표는 “국내에서 직접 개발한 신약 중에 판매 허가가 나온 게 몇 개인 줄 아느냐”고 반문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LG화학의 팩티브나 SK바이오팜의 세노바메이트(성분명 엑스코 프리) 정도를 막연히 떠올리고 있을 때 박 부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국 식약처 승인을 받은 신약 개수가 30종류가 넘습니다.”

승인받은 신약이 30종류가 넘는다는 사실에 먼저 놀라고, 그럼에도 여전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약이 더 없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박 부대표는 “국내 신약 바이오 업계가 해외 제약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이 시장에 미래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운을 뗀 김에 쓴 소리를 몇 마디 더 덧붙였다. 박 부대표는 “삼성전자는 물론 현대자동차 등 국내 제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고 이 때문에 관련 중소벤처기업들도 시장의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며 “반면 국내 신약산업의 전방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제약사가 국내 수요에 만족하고 있어 그 후방에 있는 신약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제약업계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뒤처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결국 글로벌 제약사의 니즈를 알아야 라이선스아웃을 하지 않겠나”고도 했다.

박 부대표는 국내 신약 벤처기업들이 사업실적 없이 투자금으로만 운영되다 보니 금융위기에 취약한 점도 약점으로 꼽았다. 그는 “세계 금융위기 당시 확인했던 것처럼 유동성이 흡수되는 것은 한순간”이라며 “장에 충격이 오면 자금 조달이 힘들어진 바이오 기업은 줄도산을 할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을 당시 미국 내 370개 소형 바이오테크 회사 중 38%는 1년 이하 운영비만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 상장사 100여 곳 중 절반은 6개월도 버티기 힘든 수준의 현금을 보유한 상태였다. 바이오기업들의 경영 상태가 어려워지자 VC의 투자도 말라버렸다.

박 부대표는 “그래도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 등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확실히 인정받은 것은 과거와 확실히 달라진 점”이라며 “국내 대형 제약사들이 전방산업을 이끌고 신약 벤처들이 따라갈 수 있는 생태계가 자리 잡을 수 있길 믿는다”고 말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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