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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발명’이란 이미 공지되어 있는 상위개념에서 하위개념을 선택한 발명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오리지널 의약품을 최대한 오랫동안 독점하기 위하여 에버그린 전략 중 하나로서 선택발명을 자주 활용하는 편인데, 원칙적으로 20년이 주어지는 특허권의 존속기간을 실질적으로 연장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반면, 하위개념에 속하는 발명이라 하더라도 이질적인 효과를 새롭게 나타내는 경우, 또는 동질적인 효과라도 양적으로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는 경우에는 신규성 및 진보성 특허요건을 충족시키는 선택발명으로 보아 특허권을 부여할 가치가 있다.

이와 같이 선택발명에 특허권을 부여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선택발명의 특허등록에 대해 엄격한 편이라고 사료된다.

화합물이 동일하고 염(salt)이 다른 선택발명

화이자의 정신분열증 치료제 ‘지프라시돈’은 2001 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판매 허가를 승인 받은 후 ‘지오돈’이라는 상품명으로 판매되고 있다.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는 ‘젤독스’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그 후 2009년 FDA에서 추가 적응증으로 양극성 장애에 대해 판매 허가를 승인받았다.

화이자는 우리나라에서 특허출원 ‘제10-1998- 0708959호’를 통해 ‘지프라시돈 에실레이트, 지프라시돈 메실레이트 또는 지프라시돈 타르트레이트’ 의 특정 염 형태를 등록받고자 하였다. 특정 염 형태는 지프라시돈의 다른 염들에 비해 수용해도가 유의적으로 높으므로, 이에 따라 투여용량을 줄일 수 있어 주사 투여 시 환자의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특허청, 특허심판원, 특허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진보성이 인정되지 않아 특허등록에 실패하였다.

특허법원 ‘2001허5664 판결(2002. 11. 21. 선고)’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당업자라면 인용발명의 아릴피페라지닐-(C2 또는 C4)알킬렌 헤테로사이클릭 화합물로부터 그 하위개념에 속하는 화합물의 일종인 지프라시돈을 선택한 후, 여기에 산을 부가하여 지프라시돈의 산부가염을 만들 수 있는데, 이때 사용 되는 산의 종류로서 위에 나열된 것 중 하나인 타르타르산을 선택하여 지프라시돈과 조합함으로써 지프라시돈 타르트레이트염을 용이하게 채택할 수 있다.

제37항 발명은 그 효과와 관련하여 보정명세서의 표 1(갑 3 의 제19면)에서 지프라시돈염의 수용해도에 관하여 ‘타르트레이트염, 에실레이트염, 메실레이트염의 수용해도는 각각 180, 360, 1000㎍A/㎖’라고 개시하고 있는데, 인용발명에도 개시되어 있는 산부가염인 염산염의 수용해도가 80㎍ A/㎖로서 이를 타르트레이트염의 수용해도인 180㎍A/㎖와 비교하여 볼 때 이러한 정도의 수용해도 차이는 화합물의 수용해도가 염의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당업자의 기술상식으로부터 용이하게 예상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고, 이 사건 출원발명에서 청구하고 있지 않은 지프라시돈 아스파테이트염의 수용해도가 170㎍A/㎖로서 위 타르트레이트염의 수용해도인 180㎍A/㎖에 필적하는 값을 가지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위에서 본 이 사건 제37항 발명의 타르트레이트염, 에실레이트염, 메실레이트염의 수용해도는 당업자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정도이다.

인용발명의 ‘염산염’의 수용해도 80㎍A/㎖와 본원발명의 ‘타르트레이트염’의 수용해도 180㎍A/㎖는 2배 이상 차이가 나지만, 이러한 정도의 수용해도 차이는 제제 분야에서 용이하게 예상할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판단됐다.

여기서 궁금해할 수 있는 사항은 정량적으로 어느 정도의 효과상 차이가 있어야 진보성이 인정될 수 있느냐이다. 수치상으로 정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며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판단되는데, 해결하고자 하는 미충족수요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비슷한 예로, 사노피 아벤티스의 항혈전제 ‘클로피도그렐’에 대한 무효심결취소소송에서, ‘대법원 2008후736,743 판결(2009. 10. 15. 선고)’은 “우선성 광학이성질체와 좌선성 광학이성질체가 같은 양으로 혼합되어 있는 라세미체와 약리활성을 가지는 그 광학이성질체를 동일한 양으로 투여하여 실험하면 광학이성질체의 약리효과가 라세미체에 비하여 2배 정도 우수하게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한편, 화이자의 상기 특허는 우리나라에서 특허청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진보성이 인정되지 않은 반면, 미국, 유럽, 일본, 호주 등에서는 진보성이 인정되어 특허 등록되었다. 선택발명의 특허등록 여부는 개별 사건마다 독립적으로 판단되고 있으나 사견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선택발명이 특허 등록받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질적인 효과를 갖는 선택발명

일라이 릴리의 ‘올란자핀’은 앞서 살펴본 화이자의 지프라시돈처럼 정신분열증과 양극성 장애에 대한 치료제다. 제품명 ‘자이프렉사’로 판매되고 있으며, 2010년 미국 1년 매출액이 약 3조 원에 달했다. 일라이 릴리의 특허 ‘제10-0195566호’는 1999년에 등록된 후 2011년에 존속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국내 제약사가 2008년에 무효심판을 청구했다. 흥미롭게도 특허청과 특허심판원(1심)은 진보성을 인정했으나, 그 후 특허법원(2심)은 진보성을 부정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대법원(3심)은 진보성을 인정했다.

대법원 ‘2010후3424 판결(2012. 08. 23. 선고)’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정신병은 병리학적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특성을 가지는 질병이므로 정신병 치료 활성을 측정하는 여러 가지 지표들 중 특정 항목만이 아니라 그 모두를 종합적으로 비교하여 치료 효과의 우수성을 판단해야 할 것인데, 올란자핀이 에틸올란자핀에 비하여 현저히 우수한 정신병 치료 효과를 갖는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인용발명에는 에틸올란자핀이 콜레스테롤 증가 부작용 감소의 효과를 갖는다는 점에 관한 기재나 암시가 통상의 기술자가 에틸올란자핀이 당연히 그러한 효과를 가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므로, 콜레스테롤이 증가되지 않는다는 올란자핀의 효과는 에틸올란자핀이 갖는 효과와는 다른 이질적인 것이고…


일라이 릴리의 상기 특허는 선택발명으로서 에버그린 전략을 구사한 대표적인 케이스인데, 선행발명의 ‘에틸올란자핀’에서 나타나는 콜레스테롤 증가 부작용이 ‘올란자핀’에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질적인 효과로 인정되어, 최종적으로 진보성을 인정받는 데 성공하였다. 즉 선행발명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은 이질적인 효과로 받아들여지며, 실무 경험상 동질적인 효과의 양적인 우수성에 비해 이질적인 효과가 진보성을 인정받는 데 더 수월한 편이기에, 이는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나가는 좋은 시사점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실은 일라이 릴리의 특허는 존속기간이 2011년에 만료되었으나, 그 이후에도 특허법원의 항소심 절차와 대법원의 상고심 절차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특허가 소멸된 이후에도 특허의 무효를 다투는 이유는, 특허가 무효되면 소급하여 그 효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특허가 유효했던 상태에서의 로열티, 침해, 손해배상 등의 다툼이 문제될 수 있다.

[김정현 변리사의 특허법률백서] 선택발명의 활용
김정현

고려대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했다. 2007년부터 제약·바이오·화장품·건강기능식품 분야 전문 변리사로 활동 중이다. 특허법인 코리아나, 특허법인 오리진, 미리어드IP를 거쳐 현재 특허법인 아이피센트 대표로 재직 중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