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AI 혁명가들 (2)
김기수 포스코 공정엔지니어링 연구소장
"철강업 생존 가를 것"…절박함이 '세계 최초 AI 용광로' 만들었다

포스코의 용광로는 365일 붉은 색채를 뿜어낸다. 흐르는 쇳물은 완전한 탈바꿈을 위해 잠시도 쉬지 않는다. 고도화된 인공지능(AI)은 이 고로(高爐)에 ‘뇌’를 심었다. 일견 무관해 보이는 AI와 철강의 만남은 연간 35만 톤에 가까운 쇳물을 더 만들어냈다. 몇 달씩 고로를 물리적으로 개보수해야만 늘어날 수 있는 생산량이 5%가량 개선되며 기대감이 커졌다. 포스코의 AI 기술을 진두 지휘하는 김기수 포스코 공정엔지니어링연구소장(56)은 “제조업의 AI는 현장의 오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며 “단순히 AI만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AI가 제조 현장의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강 역사에 처음 주입된 ‘AI DNA’
김 소장이 이끄는 공정엔지니어링연구소는 포스코의 연구개발(R&D)을 책임지는 심장이다. 200명의 인력들이 철강 제작의 시작인 고로에서부터, 출하까지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기술연구원 산하 조직 중에서도 가장 크다. 지난해 정식 출범한 ‘AI 연구그룹’이 이곳에서 탄생한 이유다. 공식적으로 소속된 인원은 25명이지만, 약 50명의 연구원들이 AI관련 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겉보기엔 크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그룹의 AI 이해도는 어느 곳보다 깊고, 현장 적용 속도가 빠르다는 설명이다. 포스코는 지난 1990년대 초에 이미 설비 시설 내 AI 도입을 검토했던 비화가 있다. AI 발전사에서 ‘제2의 붐’이라 분류되는 시기다. 김 소장은 “당시 기술적 이해는 마쳤지만, 그룹의 방대한 제조 데이터를 처리할 만한 실질적인 하드웨어가 없다 보니 결과적으로 도입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재도전 기회가 온 것은 2016년부터다. 그해 산업계를 강타한 ‘알파고 사건’이 기폭제가 됐다. 설욕에 나선 김 소장과 컴퓨터공학, 금속공학, 전자공학, 산업공학 등 서로 다른 분야를 전공한 현장형 AI 전문가들이 다시 뭉쳤다. 모두 현업에서 잔뼈가 굵은 인력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똑똑해진 사물인터넷 장비들도 힘을 보탰다.

김 소장은 “자동화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에 내부에 이미 자생적인 잠재력과 경험이 있었다”며 “외부의 소프트웨어 기반 AI 전문가보다는, 현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내부 인력들과 함께 시범 사업에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년 만에 탄생한 세계 최초 ‘AI 용광로’의 시발점이었다.
◆용광로 앞 ‘즉석 AI 연구소’ 설립
반발은 예상보다 강했다. 현장 생산직 조업자를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내부 온도가 2300℃를 넘나드는 고로는 고체와 액체가 공존하는 복잡한 설비다. 일부 자동화가 되어 있지만, 현장 조업자의 ‘감’만큼은 최고의 가치로 대우받는다. 김 소장은 “조업자들 평균 경력이 25년에서 30년에 이르다보니 AI기술에 대한 회의감이 컸다”며 “AI와 베테랑 현장 조업자와의 협력밀도를 높이고, 연구소와 현장의 거리를 좁혀야만 했다”고 말했다.

고로 앞에 ‘작은 연구소’가 들어섰다. 부족한 기술인력은 대학교를 활용하기도 했다. 성균관대, 포항공대, 서울대의 연구팀들이 참여했다. 데이터 수집 센서를 개발하는 중소기업의 역할도 컸다. “대학 교수님들과 조업자들, 연구소 인원들이 현장으로 출퇴근을 자주 하다 보니 고로 앞이 연구소처럼 변했다”는 것이 김 소장의 회고다. 그렇게 지난 2018년 재탄생한 포항제철소 2고로는 세계 첫 스마트 고로 사례가 됐다. 기존보다 연간 8만 5000톤의 용선(쇳물)을 추가로 생산하는 효율도 갖췄지만, 이보다 큰 변화는 ‘자동화’였다. 노열(내부온도)과 송풍량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마치 완성된 자율주행차와 같이 스스로 판단을 내리며 고로를 제어했다. 현재는 4기까지 숫자가 늘었는데, 내년에 광양 4고로가 5번째 스마트 고로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베테랑 현장 전문가들은 모두 AI를 운용하고 고도화하는 '하이브리드 전문가'로 다시 태어났다.

AI 적용 범위는 점차 넓어져갔다. 특히 해외 14개 공장 도금공정에 AI를 도입한 시도가 큰 효과를 냈다. 멕시코와 인도 등지의 생산 상황을 AI가 한 번에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작년 코로나 확산 사태와 맞물려 가치가 빛을 발했다. 도금공장에서는 강판 표면에 아연 등의 소재를 입히는 작업을 진행한다. 세밀한 기술력이 필요한 전문 영역이라 지금까지 본사 인력의 주기적인 현장 방문이 필수적이었다. 김 소장은 “해외 출장을 나갈 수가 없었는데, AI가 각 도금공장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도금량 수치를 개선해 내며 오히려 효율을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소결 공정(원료를 균일한 성분으로 만드는 작업)에 적용된 AI는 균일한 품질을 만들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조업자들마다 결과물이 달라 발생하던 편차치는 60%가 줄었고, 기존에 사람 손을 자주 필요로 하던 자동제어 시스템은 정확성이 90%를 넘나들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재고 분석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제철소의 방대한 작업장에 쌓인 재고는 수작업으로 관리했을 때 4시간이 소모된다. 드론과 AI가 협업하자 이 작업이 1시간으로 줄었다.
◆중국發AI굴기엔 ‘디지털트윈’으로 맞불
김 소장은 포스코의 AI 도입을 ‘절박한 시도’로 평가한다. 그는 “철강은 100년 된 전통 산업인데, 같은 방식의 생산과 공정을 유지해오며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며 “중국을 필두로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했기 때문에, AI 도입 성공 여부는 철강회사의 생존을 가르는 문제가 됐다”고 했다.

중국의 ‘철강 굴기’는 갈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2019년부터 철강생산능력이 순증가를 거듭하고 있다. 노후화된 설비를 일괄 교체하며 생산 능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중국은 이러한 새 설비투자를 통해 연간 4200만 톤의 생산 능력 개선을 이뤘다. 국내 업체들이 한 해 약 6000만 톤의 철강을 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다. 일평균 조강 생산량은 300만 톤으로 한국의 18배에 달한다.

김 소장은 “중국 철강사들은 AI마저 인해전술”이라며 “2019년 포스코의 AI 고로가 세계적 인정을 받자, 중국도 수백 명의 인력이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인수합병(M&A)를 통해 생산량 기준 글로벌 1위로 떠오른 중국 보무강철그룹 등의 AI 관심도는 높은 수준이다. 오는 2024년까지를 ‘신경쟁우위 전략 시기’로 규정하고, 철강 본업과 스마트 공장을 둘 다 달성하겠다는 ‘新 일체양익’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포스코가 올해 중점 추진과제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개념을 꺼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각 공정에서 따로 적용되고 있는 AI 시스템을 통합하는 ‘관통형 AI’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 설비 데이터가 시스템에 모여 가상환경에까지 구축된다면, 포스코는 가상세계의 공장에서 결과물을 시뮬레이션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를 더욱 크게 벌릴 수 있다.

AI를 통해 사고를 막는 것도 주요 목표다. 우선 CCTV의 스마트화를 통한 안전 감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철강 제품의 상하차 도중에서 발생하는 근로자 낙상, 밀폐공간 감지, 화재 예방까지도 가능하다. 김 소장은 “현재 AI 분야에서 가장 발달된 분야가 이미지 센싱”이라며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일터의 안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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