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기능에 맞는 물건을 생산해 내는 건 인간의 특기다. 최근에는 물건뿐만 아니라 단백질까지 기능에 맞게 설계해 활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자동차를 만들어낸 것처럼 단백질까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새로 창조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가 사이토카인 폭풍을 막는 인공 단백질을 제조한 게 대표적이다.

레고처럼 조립하는 단백질로 간염·코로나 1시간 안에 진단
최근 국내 연구진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질병 진단, 치료 경과 추적, 병원 미생물 감지 등의 역할을 하는 인공 단백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KAIST는 오병하 생명과학과 교수가 미국 워싱턴주립대와 고감도의 단백질 센서 플랫폼을 개발했다고 5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종합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달 27일자로 게재됐다.

단백질 센서는 혈액검사를 통한 진단 등의 영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단백질 센서는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단백질이거나 이를 약간 변형한 형태다. 진단에 딱 맞는 단백질을 개발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다. 개발된 단백질의 적용 범위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단백질은 구조에 따라 기능이 결정된다. 연구팀은 표적 단백질을 추적하는 아미노산 서열을 계산을 통해 구조화했다. 설계된 구조를 토대로 대장균을 활용해 골격 단백질을 창출해 냈다. 이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심해 새우가 생성하는 발광 단백질과 재조합해 다른 단백질을 감지하는 기능을 적용했다. 자연계에 없는 단백질 구조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단백질 시스템은 그 자체로 발광하지 않는다. 감지하려는 표적 단백질과 결합할 경우 발광하도록 디자인됐다. 발광 정도는 표적 단백질의 농도에 비례한다. 특정 단백질이 있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농도까지 이 시스템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단백질 시스템은 ‘레고 블록’처럼 갈아 끼울 수 있다. 결합 부위만 바꾸면 다른 표적 단백질을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 연구팀은 B형 간염 바이러스 단백질 센서, 코로나19 단백질 센서 등 8개의 고감도 단백질 센서를 이 시스템을 통해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결과의 응용성이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개발된 단백질 시스템은 기존 방식보다 측정이 쉽다는 것도 장점이다. 기존 방식은 시료 전처리 과정이 필요하고, 측정 과정에도 시간이 걸렸다. 이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빛은 전처리 없이도 감지할 수 있다. 발광 반응이 즉각적으로 이뤄지고 1시간 안에 끝나 빠르게 측정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제조해 유용한 기능을 부여했다는 데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오 교수는 “인공 단백질을 창출해 유용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는 과거부터 있었지만 성공적인 결과는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하는 단계”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인공 단백질로 센서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연구는 LG연암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오 교수가 데이비드 베이커 워싱턴주립대 교수 실험실에 1년간 방문해 진행했다. 이한솔 KAIST 생명과학과 연구원과 홍효정 강원대 교수가 참여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