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경 빅씽크 테라퓨틱스 부사장./사진=서범세 기자
한미경 빅씽크 테라퓨틱스 부사장./사진=서범세 기자
빅씽크테라퓨틱스가 오는 4월 강박증 관련 디지털치료제 ‘오씨프리’(OC FREE)에 대한 미국 임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이 디지털치료제에 대해 미국 임상을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빅씽크는 항암 치료제와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이다. 코스닥 상장사 케이피에스의 자회사다. 케이피에스는 빅씽크 지분 45.3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지난 3일 서울 도곡동 본사에서 만난 한미경 빅씽크 부사장은 “빅씽크의 임직원들은 그동안 19개국 150개 병원이 참여한 블라인드 방식의 임상시험을 경험하면서 뛰어난 역량을 입증했다”며 “이 같은 글로벌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디지털치료제 임상에서도 충분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치료제 오씨프리, 4월 임상 돌입…2025년 제품 출시 목표

빅씽크가 개발 중인 오씨프리는 게임요소를 결합한 소프트웨어 디지털치료제다. 강박장애(OCD)를 가진 환자들의 인지행동치료(CBT)를 위해 쓰일 예정이다.

빅씽크는 지난달 3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오씨프리의 임상시험계획 제출 전 사전회의(Pre-Submission 미팅)에 대한 공식 답변을 받았다. Pre-Submission 미팅을 신청한 지 3개월 만이다. FDA는 답변을 통해 오씨프리의 임상 효과 증대를 위한 방법, 환자 모집 방법 등을 제안했다.

한미경 부사장은 “FDA로부터 받은 제안을 반영해 오씨프리의 임상에서 더욱 명확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디지털치료제의 임상은 탐색임상과 본 임상으로 진행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FDA의 승인 절차를 거쳐 ‘510(k)’를 획득한 후 제품에 대한 처방이 가능하다. 510(k)는 FDA의 의료기기 판매 승인 제도다. FDA가 기존에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의료기기와 거의 동등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510(k)를 인정받으면 미국에서 판매가 가능하다.

빅씽크는 임상에서 오씨프리가 미국 페어테라퓨틱스의 ‘리셋(reSET)’과 동등하다는 것을 입증할 예정이다. 리셋은 2017년 FDA로부터 최초로 승인 받은 디지털치료제다. 약물중독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오씨프리는 리셋과 같이 정신질환 치료 목적의 디지털치료제로, 동일한 의료기기 코드로 분류된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빅씽크는 미국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인 아이큐비아와 임상 디자인을 논의한 후, 내달 임상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승인을 거쳐 오는 4월부터 탐색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탐색임상에서는 OCD 환자 30명을 대상으로 오씨프리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평가한다. 한 부사장은 “내년 1분기에 탐색 임상을 완료하고 본 임상에 착수해, 2024년 제품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라며 “2025년 오씨프리를 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오씨프리’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빅씽크 디지털치료제(DTx)팀 직원들./사진=서범세 기자
‘오씨프리’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빅씽크 디지털치료제(DTx)팀 직원들./사진=서범세 기자

“오씨프리, ERP치료 중도포기율 낮출 것”

OCD는 원하지 않는 생각(강박사고)과 행동(강박행동)을 반복하는 불안장애의 일종이다. OCD 환자들은 강박사고에 대해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잊기 위해 강박행동을 한다. 반복적으로 손을 씻는 행동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정도가 심한 OCD 환자는 하루 최대 8시간까지 강박 행동 증상을 나타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CD 치료에는 ‘노출 및 반응방지법(ERP)’이라는 심리치료 기법이 활용된다. 강박 환자가 불안을 느끼는 상황을 마주하도록 하고, 불안을 줄이기 위해 보이는 강박행동을 막는 치료법이다.

오씨프리는 이 치료기법을 앱(응용 프로그램)에 접목시켜 디지털화한 치료제다. 오씨프리는 OCD 환자들의 증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 기능과 ERP 치료 기능 등을 담고 있다. 앱을 실행하면 환자가 두려움을 느끼는 강박 사물을 보여주고, 환자가 이를 직접 터치하며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치료에는 환자들의 불안감을 낮춰주는 이완요법 등도 포함돼 있다는 설명이다.

빅씽크는 오씨프리를 ERP 치료의 보조치료제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 부사장은 “ERP는 가장 효과가 좋은 OCD 치료법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강박증이 있는 사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환자의 치료 중도포기율이 높은 편”이라며 “오씨프리를 활용하면 직접적인 사물이 아닌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환자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완화해 치료 중도포기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는 높은 접근성도 디지털치료제의 장점”이라며 “비대면으로 환자가 주기적으로 치료과정을 잘 지키도록 돕고, 치료의 효과에 대한 데이터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간 3조원 규모 美 OCD 시장…최초 디지털치료제 될까

디지털치료제는 약이나 주사제가 아닌 스마트폰 앱, 게임, 가상현실(VR) 등을 사용한 소프트웨어 방식의 치료제다. 다이어트 앱이나 혈당 관리 프로그램 등 기존의 건강관리 소프트웨어와 유사하지만, 임상을 진행해 효능·효과와 안정성을 검증받고 의료기기 인·허가를 거쳐야 한다는 데서 차이가 있다. 이에 게임과 앱이 회사의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이 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오씨프리가 적응증으로 하는 OCD 치료를 목적으로 허가받은 디지털치료제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사장은 “세계적으로도 OCD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는 기업은 손에 꼽힐 정도”라며 “빅씽크는 오씨프리를 통해 연간 30억 달러(약 3조원)에 달하는 미국 OCD 시장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안 및 우울증협회(ADAA) 등에 따르면 현재 미국내 CBT 치료에는 환자당 평균 2100달러(약 240만원)의 치료비용이 든다. 온라인 CBT(iCBT)의 평균 치료비용은 환자당 760달러다. 약물중독 프로그램인 리셋을 처방받는 환자는 12주 치료를 받는 데 평균 1200달러의 치료비를 지출한다.

한 부사장은 “미국 내 OCD 환자는 약 220만명”이라며 “오씨프리는 전체 OCD 시장 중 1억5000만 달러 규모의 심리치료 시장에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김성태 제약사업본부 DTx팀 부장, 한미경 부사장, 이창희 대리, 안광우 대리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서범세 기자
(사진 왼쪽부터)김성태 제약사업본부 DTx팀 부장, 한미경 부사장, 이창희 대리, 안광우 대리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서범세 기자

불안장애·ADHD 등 파이프라인 확장

빅씽크는 첫 번째 디지털치료제 파이프라인인 오씨프리의 미국 임상을 시작으로, 다양한 적응증에 대해 파이프라인을 확장할 계획이다. 미국 등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다.

회사는 현재 오씨프리를 비롯해 불안장애, 소아·청소년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유방암 환자 증상관리 등의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설계와 기획은 빅씽크 자체 연구·개발 인력이, 의학적 자문과 감수는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이 맡는다.

내달 22일에는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증상관리 앱 ‘위피치(WePeach)’를 출시한다. 위피치는 건강관리 목적의 소프트웨어다. 오는 10월 허가를 앞두고 있는 항암 치료제 네라티닙과 병행해 사용할 계획이다.

네라티닙은 ‘HER2’ 양성 조기 유방암 환자에 쓸 수 있는 표적항암제다. 2017년 FDA의 승인을 받았다. 빅씽크는 지난해 5월 네라티닙의 개발사인 푸마 테크놀로지와 계약을 맺고, 한국 내 상용화 독점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약 허가를 신청한 상태다.

한 부사장은 “전이가 잘 되는 유방암은 완치 후에도 사후관리가 중요해 위피치를 개발하게 됐다”며 “위피치를 통해 유방암 환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완치 후에도 사후관리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빅씽크는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지난해 5월 미국 디지털치료제 개발 스타트업 림빅스에 1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림빅스는 소아청소년 우울증치료제를 포함해 여러 정신질환 증상을 개선하는 디지털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한 부사장은 “5년 안에 제품수를 더욱 늘려 항암 치료제와 디지털치료제 두 개의 사업 부문에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며 “정보통신기술(IT)과 생명공학기술(BT)을 결합한 국내 첫 번째 제약사가 되겠다”고 포부를 전했다.

김예나 기자 yena@hankyung.com